엄지 골절

일상의 멈춤

by 박규리

일상의 멈춤

어떤 변화는 결심이 아니라 사고로 시작된다.
나는 멈추려 하지 않았는데, 12월의 초입에서 뜻밖에 일상의 멈춤이 일어났다. 한 해를 마무리해야 할 시점에, 왼쪽 엄지발가락이 골절되었다.

〈이렇게 좋은 날은 흔치 않아〉라는 브런치북 제목에 엄지골절이라는 글감이 어울릴지 한참을 생각하였다. 엄지 골절은 흔치 않은 일이지만 좋은 일로는 생각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렇게 좋은 날은 흔치않아> 제목을 다 붙잡아 보기도 전에, 몸이 먼저 멈췄다. 골절은 어이없게 일어났고, 너무 하찮아 보여 남에게 말하기조차 조금은 창피했다.


그날은 30년 넘게 다니던 도선사를 대신해 처음 소개받은 작은 선원에 기도를 드리러 간 날이었다. 날씨는 차가웠고, 댓돌 위에는 신발들이 수북이 쌓여 있었다. 마당에 신발을 벗어두고 댓돌 위에 올라 여닫이문을 열고 지장전으로 들어가려는 찰나, 딛고 있던 왼발이 쪼르르 미끄러졌다. 그 순간에는 몰랐지만, 이내 발가락에 통증이 밀려왔다.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삼배를 올리고 기도를 마칠 때까지 통증을 참고 앉아 있었지만, 아픔은 점점 심해졌다. 집까지 걸어올 수 없어 신도님께 부탁해 차를 얻어 타고 돌아왔다. 지인에게 물어 오일 마사지를 두세 시간에 한 번씩 해보았지만 발은 점점 부어올랐다. 다음 날 병원에서 엑스레이를 찍었고, 엄지가 골절되었다는 말을 들었다. 심한 골절은 아니었지만, 이후의 시간들은 결코 가볍지 않았다.


그때부터 준비해 두었던 일정들이 하나씩 멈췄다. 라인댄스 수업은 전면 중단되었고, 고교 동창들과 약속한 라인댄스 동아리 회식도 취소했다. 친구들과의 단양 나들이, 인천 갈등조정 활동, 매일 만 보를 걷던 45일 챌린지까지 모두 멈췄다. 책상에 앉아 있어도 발은 계속 부었고, 걷지도 오래 앉아 있지도 못해 결국 누워 있어야 했다. 움직일 수 없는 몸보다, 갑자기 비어버린 시간 앞에서 마음이 더 갑갑했다.


그제야 스스로에게 묻게 되었다. 왜 하필 지금일까. 도선사가 아닌 다른 절에 가서일까, 아니면 그동안 너무 바쁘게 달려온 나에게 잠시 쉬라는 신호일까. 긍정적인 이유를 붙여보려 애썼지만 쉽게 답이 나오지 않았다. 못한 것들만 떠올리니 생각은 더 무거워졌다.


그러다 숨을 멈추어 보았다. 그리고 다시 숨을 쉬었다. 다음 숨은 이전보다 훨씬 깊어졌다. 그제야 보였다. 바쁘게 휘몰아치며 지나온 발걸음의 틈새가. 읽지 않은 채 쌓아둔 책들, 정리하지 못한 족문지, 미처 챙기지 못한 고객 자료들. 나는 책상 주변을 정리하고 족문지를 하나하나 분류했다. 족문지의 사진을 찍어 온라인으로도 다시 정리해 철해 두었다. 또 앞으로 무엇을 해야 할지, 무엇을 내려놓아야 할지를 적기 시작했다.


멈추지 않았다면 보지 못했을 풍경들이었다. 집에 머무는 시간이 늘면서 청소와 정리에도 더 신경을 쓰게 되었다. 그렇게 자연스럽게 지난 1년이 떠올랐다. 아들의 귀국, 병원을 오가던 시간들, 관계 가꿈 수업, 처음 겪은 사기, 어머님의 시술을 곁에서 지켜보던 날들, 주민센터에서 시작한 라인댄스, 동네 사람들과 어울리며 느낀 소속감, 요리 수업, 그리고 족부사 1급 과정과 자격 취득까지. 한 해는 쉼 없이 움직인 기록으로 가득했다.


그리고 그 모든 움직임의 끝에서, 12월 7일의 엄지 골절이 있었다. 한 해를 정리해야 할 막바지에 나는 비로소 멈췄고, 돌아보게 되었다. 이제 무엇을 붙잡고 갈 것인가. 무엇을 줄이고 무엇을 남길 것인가. 어떻게 시간을 써야 할 것인가.


머릿속에는 몇 가지가 분명하게 남았다. 라인댄스, 글쓰기, 족부사. 여기에 관계 가꿈 수업과 요리 수업도 여전히 소중하다. 하고 싶은 일이 많다는 것은 여전히 삶이 살아 있다는 증거였다. 다만 이제는 방식이 필요했다. 나는 요일을 나누어 시간을 배치하기로 했다. 움직임과 멈춤, 일과 쉼이 섞이지 않도록.

계획을 적어 내려가며 깨달았다. 생각 없이 사는 사람은 사는 대로 생각하지만, 나는 이제 생각한 대로 살고 싶어 졌다는 것을. 엄지 골절로 주어진 이 흔치 않은 시간은 나를 과거에 묶어두지도, 성급한 미래로 떠밀지도 않았다. 다만 방향을 다시 고르게 했다.


남기기로 한 것들

멈춘 자리에서 가장 먼저 한 일은 무언가를 더 하겠다고 정하는 일이 아니라, 무엇을 남길 것인가를 고르는 일이었다. 해야 할 일과 하고 싶은 일은 늘 많았지만, 그 모든 것을 같은 무게로 쥐고 가기에는 내 손이 이미 지쳐 있다는 사실을 그제야 인정하게 되었다.


라인댄스는 여전히 몸을 살리는 일이었다. 속도를 맞추고 음악에 몸을 맡기며 누군가와 같은 방향으로 움직이는 그 시간은 운동을 넘어 회복에 가까웠다. 글쓰기는 말로 꺼내지 못한 생각들을 조용히 제자리에 놓아주는 일이었고, 족부사는 내 몸의 경험이 다른 사람의 몸으로 이어지는 가장 현실적인 통로였다. 이 셋은 더 이상 경쟁하지 않게 되었다. 어느 하나가 다른 하나를 밀어내지 않도록 자리를 나누어 주었다. 요일을 나누고, 시간을 나누고, 에너지를 나누었다. 완벽한 계획이라기보다는 무너지지 않기 위한 배치에 가까웠다.


관계 가꿈 수업과 요리 수업은 삶의 가장자리로 밀어내지 않았다. 대신 숨 쉴 수 있는 틈으로 남겨 두었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 배우는 일, 먹고사는 일상 속에서 손을 움직이는 일은 내 삶에서 너무 쉽게 빠져나갈 수 없는 것들이었다. 인연이 닿는 한 억지로 잡지 않되, 그렇다고 쉽게 놓지도 않기로 했다.

하루의 기본도 다시 정했다. 매일 책을 읽고, 짧게라도 글똥을 누고, 가능한 만큼 걷는다. 만 보를 채우지 못해도 괜찮았다. 중요한 것은 숫자가 아니라 하루를 통과했다는 성취감이었다.


예전에는 “열심히 살고 있다”는 말이 나를 증명해 주는 문장이라고 믿었다. 지금은 다르다. 나는 이제 “내가 선택한 속도로 살고 있다”는 말을 조심스럽게 연습하고 있다. 엄지 골절은 내 삶을 망가뜨리지 않았다. 다만 나를 세우던 방식이 조금 거칠었다는 사실을 알려주었을 뿐이다. 그래서 나는 다시 묻고, 다시 고르고, 다시 배치한다.


이후의 시간들은 더 빠르지도, 더 대단하지도 않을 것이다. 그러나 적어도 나를 소모하지 않는 방향으로, 조금은 단정하게 흘러가기를 바란다. 이렇게 살겠다고 크게 선언하지는 않는다. 다만 오늘 하루를 내가 선택한 방식으로 조용히 살아낸다. 그것이면, 지금의 나에게는 충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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