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통주 만들기 체험

노원 문화예술회관 다완재

by 박규리


전통주를 빚으며


여러분도 막걸리를 좋아하시나요?


어릴 적 아버지는 일하시다 힘이 부치면 막걸리를 한 사발씩 마시고는 다시 일터로 나가셨다. 그 고단한 하루를 견디게 해주는 힘이 그 하얀 술잔 안에 들어 있는 것처럼 보였다. 소 먹일 꼴을 베고, 쟁기질과 써레질을 하고, 밭을 일구어 수확하고, 벼를 베어 탈곡하고, 농한기에는 산판과 양잠까지—칠 남매를 키우기 위해 아버지는 몸이 허락하는 한 모든 일을 하셨다. 나는 그 곁에서 아버지를 버티게 해 주던 그 신기한 명약, 막걸리를 동경하게 되었다.


막걸리 가게는 집에서 1.2킬로미터쯤 떨어져 있었고, 막걸리 심부름은 가끔 내 차지였다. 뜨거운 뙤약볕 아래에서 어린 내가 2리터 주전자를 들고 다녀오는 막걸리 심부름은 쉽지 않았다. 지금 생각하면 별것 아닌 거리지만, 어린 시절 여름의 그 길은 유난히 멀고 길었다. 효심 가득한 심부름이 아니었던 탓에 막걸리를 흘리기도 하고, 호기심에 주전자 뚜껑에 한 모금 따라 맛을 보기도 하며 해찰을 부리다 돌아오던 기억이 아직도 선명하다.


아버지와의 추억이 얽힌 막걸리는 자연스레 나의 애주가 되었다. 술을 잘 마시지는 못하지만, 맥주와 소주, 막걸리 중에서 하나를 고르라면 늘 막걸리를 택했다.

다만 마시고 나면 뒤끝이 좋지 않았다. 머리가 아프기도 했고, 생막걸리는 내 장을 온통 흔들어 놓아 부대끼게 했다. 옛날 그 막걸리가 아니라서 그런가? 그런데 이는 당을 이용해서 만들어진 에탄올 즉 술이라고 불리는 알코올 때문이란다. 술을 마신 다음 날 머리가 아픈 것은 체내에서 에탄올이 산화되어 아세트알데 하이드라는 물질이 생기기 때문이다.


그 무렵 지인에게서 노원문화예술회관 다완재에서 전통주 만들기 체험을 한다는 소식을 들었다. 호기심 70퍼센트, 지인의 추천 20퍼센트, 그리고 아버지에 대한 그리움 10퍼센트가 나를 그 자리로 이끌었다.


전통주는 곧 우리 막걸리를 일컫는 말이다. 술의 어원 또한 흥미롭다. 쌀을 쪄 식힌 뒤 누룩을 넣어 버무리고 물을 부어 발효시키면 어느 순간 부글부글 끓어오른다. 물에서 불이 나는 것처럼 보여 ‘수불(水火)’이라 불렸고, 이것이 수블, 수울을 거쳐 술로 변했다는 설명을 들었다. 강의실에서 듣는 이 이야기는 막걸리의 뿌리를 발견한 것처럼 나의 배움에 한 숟갈 더한 충만함이 올라왔다.


술의 기원은 『제왕운기』에 기록되어 있고, 우리 술은 삼국시대에 누룩을 사용하며 본격적으로 발전했다고 한다. 조선시대를 거치며 양조 기술은 고급화되었으나, 1909년 주세법으로 술 빚기가 통제되면서 그 전통은 점차 사라졌다. 해방 이후 식량 부족은 전통주를 더욱 멀어지게 만들었다. 지금은 쌀 소비 촉진의 일환으로 다시 다양한 술이 빚어지고 있다.


누룩 고두밥 물을 넣고 손으로 골로루 섞기

술을 빚는 과정은 단순하면서도 정직하다. 쌀을 깨끗이 씻어 세 시간 이상 불리고 물을 뺀다. 고두밥을 지어 식히는데, 여전히 그 고두밥은 맛있다. 한 주먹 떼어 입에 물고 씹다 보면 고소함이 입안 가득 퍼진다. 법제한 누룩과 고두밥을 섞어 항아리에 담고, 정량의 물을 부어 골고루 저으며 발효를 준비한다. 시간이 흐르면 고두밥과 효모가 물과 함께 알코올과 이산화탄소를 만들어내고, 술은 스스로 살아 움직이기 시작한다. 용수체로 찌꺼기를 걸러내는 순간, 비로소 술은 잔에 담길 준비를 마친다.


체험을 통해 나는 막걸리뿐 아니라 사과 막걸리, 이양주, 신선주, 복분자주, 나만의 술을 빚었다. 마지막에는 술지게미 활용도 배웠다. 오종주 지게미로 모주를 끓여 마셨는데, 대추와 생강, 통계피, 후추, 잣 다섯 가지 재료의 풍미가 살아 있어 의외로 깊은 맛을 냈다.


나만의 술 빚기에서 여름에 만든 술은 신맛이 강해 채주 후 사이다를 타 마셨다. 온도 변화가 심해서 일어난 현상이란다. 반면 겨울에 빚은 인삼주는 단맛으로 시작해, 발효가 거의 끝난 지금은 술맛이 제대로 올라왔다. 이 술은 올해를 마무리하는 친구들과의 송년 모임에 가져갈 생각이다. 지난번에 빚은 이양주는 회복적 생활교육 커뮤니티 모임이 끝난 뒤 회식 자리에서 한 모금씩 나누었다. 함께 나눈 술 한 잔은 수요일마다 전통주 체험하기를 붙들고 공들여온 시간의 보상처럼 돌아왔다.


술을 빚으며 나는 자연스레 사람과의 관계를 떠올리게 된다. 이제 나는 술을 많이 마시지 못한다. 대신 이렇게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는 자리에서, 내가 만든 술이 그들의 말동무가 되어주는 순간을 바라본다.
그것으로 충분하다.


그래서 바쁜 중에 내가 술을 빚는 것은, 사람과 다시 어울릴 이유를 만드는 일인지도 모른다.


거른 막걸리와 지게미. 그리고 술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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