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의 관계를 가꾸다
2025년 2월, 매일 만나던 아이들과 비로소 작별했다. 지난 12월 20일, 방학을 이틀 앞두고 입원했다. 2년 만에 다시 찾아온 빈맥 때문이었다. 그대로 방학에 들어갔고, 회복을 위해 등교하지 못한 채 시간이 흘렀다. 방학이 끝나갈 무렵, 방치된 교실에 겨우 출근했다. 나는 2월을 마무리하며 아이들과 아쉬운 이별을 했다.
정확히 38년 하고도 6개월이었다.
지금은 10년간 꾸준히 공부해 온 회복적 생활교육, 그중에서도 서클 수업으로 아이들을 가끔 만나러 다닌다. 이 학교, 저 학교를 찾아다니며 강의하는 프리랜서 교사가 되었다. 학교폭력 예방, 관계를 잘 가꾸는 서클 대화 수업으로 탄탄한 공동체를 세우는 것이 지금 내가 맡은 수업의 핵심 역할이다. 아이들과 만나는 시간은 두세 시간 남짓이다. 그러나 이제껏 경험하지 못한 방식으로 수업을 이끈다.
서클 수업은 아메리카 원주민 문화에서 그 뿌리를 찾는다. 인디언 부족에게 문제가 생기면 모닥불을 피우고 마을 사람들이 동그랗게 둘러앉아 대화를 시작했다. 모닥불과의 거리는 모두 같았다. 지금은 센터피스가 그 역할을 한다. 같은 거리에 앉은 각각은 1/n의 책임을 진다.
즉 그 안에서 사람들은 동등한 자격으로 차례차례 자신의 생각을 내어놓았다. 이야기는 핑퐁처럼 오가지 않는다. 각자의 말은 센터피스에 내려놓고, 그 이야기는 모두에게 들려진다. 나와 다름을 마주한 그 공간에서 새로운 지성이 싹트고, 때로는 문제 자체가 스스로 풀리기도 한다.
또 어떤 날은 각자가 가져가야 할 태도와 진심을 나눈다. 뿌연 안개가 걷히고 맺힌 감정이 풀린 뒤
사람들은 단단한 공동체의 뒷배를 안고 다시 일상으로 돌아간다. 이 오래된 전통은 ‘회복적 생활교육’이라는 이름으로 지금의 학교에 들어왔다. 오래된 미래라는 말이 떠오른다.
서클 수업은 대체로 가운데 센터피스를 놓고 같은 거리에 의자를 배치하며 시작한다. 교실의 상황과 요구에 맞게 프로그램을 세팅해 서클 대화 수업으로 들어간다.
먼저 서로를 환영한다. 환영 인사를 나눈 뒤 서클 대화 방식에 대해 간단히 소개하고 침묵을 초대한다. 지금 이 자리에 내 몸과 마음이 함께 와 있는지 호흡으로 점검하는 시간이다.
연결하기 순서가 돌아오면 이름과 지금의 느낌을 말한다. 오늘의 주제에 맞는 질문을 던지고 30초 정도 생각할 시간을 가진다. 진행자가 시범을 보인 뒤 돌아가며 이야기를 내어놓는다. 원 안에는 불편함을 가진 친구,
기대하는 친구, 설레는 친구, 피곤한 친구의 말이 차곡차곡 쌓인다. 그 이야기들은 서로를 이해하는 재료가 되어 관계의 콘크리트를 만들어간다.
이야기가 끝나면 그 말들이 이 자리에 온전히 머물 수 있도록 함께 침묵한다.
오늘 이 시간이 평안하고 안전하기 위해 어떤 약속이 필요할지 묻는다. 제안된 약속은 엄지 투표로 동의 여부를 확인한다. 진심을 말하기, 잘 들어주기, 비밀 지켜주기, 실수해도 괜찮아, 등의 약속을 한 번 소리 내어 읽고 함께 확인한다.
다음으로 환영과 연결, 약속을 정하는 동안 긴장된 몸과 마음을 충전놀이로 풀어낸다. 몸을 움직이고 목표를 향해 함께 매진하며 교실의 공기가 따뜻한 분위기로 달라진다.
관계를 지탱하는 가장 밑바탕은 감정을 아는 일이다. 나는 아이들을 만나 시 한 편을 읽어준다.
깃털처럼 가볍만
때론 바위처럼 무겁고
시냇물처럼 즐겁지만
얼음처럼 차갑기도 한 것.
(중략)
“이 시의 제목이 무엇일까요?”
아이들은 ‘마음’이라고 말한다. 관계를 헤치는 많은 이유는 감정을 잘 알지 못해서, 친구의 감정을 알아채지 못해서, 내 감정을 돌보지 못해서 생긴다. 그래서 감정 알아맞히기 게임을 하고 어려웠던 감정과 그 이유를 나눈다. 감정이 우리에게 무엇을 알려주는지도 함께 탐구한다.
또갈등 유형을 탐색하거나 경계선을 지키는 이유를 질문한다. 아이들은 자신의 이야기를 동그라미 안에 내려놓는다. 서로의 목소리를 들으며 각자는 필요한 만큼만 가져간다. 친구의 이야기 속에서 배우고,
내가 내어놓은 이야기도 누군가에게는 도움이 된다.
말하고 듣는 가운데 지혜가 싹튼다. 동그라미 안은 더 단단한 공동체의 콘크리트가 된다.
마지막으로 평화로운 우리 반을 위해 내가 노력할 것, 친구에게 부탁할 것을 적어 발표하고 전지에 붙인다.
그리고 오늘 함께하며 배운 것, 느낀 것, 실천할 것을 나눈다. 아이들의 말속에는 서클 수업의 보람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교실을 돌아서 나오는 내 마음이 늘 뿌듯하다.
학기 초에는 공동체 세우기 활동에 집중한다. 체크인과 연결하기, 약속 정하기와 공동체 놀이, 그리고 체크아웃. 아이들을 다시 만날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좋은 일인지 서클 수업을 하며 새삼 느낀다. 지식을 주입하는 공부는 이제 매력이 없다. 아이들은 말하며 배우고 들으며 깊어진다. 그래서 지금 이 시간이 흔치 않음에도 내게 더욱 소중하다.
생활교육뿐 아니라 교과 수업에서도 조용히 서클이 시도되고 있다.
2025년 2월, 나는 교단을 떠났지만 아이들 곁을 떠난 적은 한 번도 없었다. 이제 나는 가르치는 사람이 아니라,
함께 앉아 듣는 사람으로 아이들을 다시 만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