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고도 경단녀 이력서 쓰기

난 괜찮은데 다른 이들이 부담스러워하는 40대 중반 아줌마의 취업준비

by 이 허

“ ‘경단녀’는 ‘경단녀’로 서의 삶을 살아가세요.”

사회복지사 자격증을 따고 장애인 기관에서 계약직으로 근무할 때 센터장에게 들은 진심 어린(?) 조언이었다.

70년대생 X세대에서 경단녀로 또 경단녀라는 말로 확인 사살되는 순간이었다.

그 자리에서 불편함을 드러내지는 않았지만 비참함과 굴욕적인 감정은 어쩔 수가 없었다.

내가 경단녀이긴 한 건가?

결혼하고 아이 낳고 직장 그만두고 나이는 30대 중 후반 정도 되어야 경단녀 소리도 들을 수 있지 않나?

나처럼 40대를 넘기고 중반을 넘어가면 더 이상 경단녀라고 하기도 그럴지 모른다. 그냥 아줌마로 남는다.

애들 중고등 학교 다니고 한 명은 고3인데 뭘 하시게요?

이왕 이렇게 된 거 애가 고3인데 뒷바라지 안 하세요? 엄마가 되가지고?


좀 전에 그 센터장의 말을 다시 한번 통역해 보면 이렇다.

“마흔 훌쩍 넘은 아줌마가 늦었지. 뭐 할거나 있겠어요? 다 한 살이라도 젊은 사람 쓰지.. 해 보려면 진작 했어야죠? 그러니 살림하시면서 잠깐잠깐 용돈이나 버는 걸로 만족하세요. ”

어쩌면 이‘경단녀’라는 말도 센터장이 꽤 예의를 갖춰서 한 말이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긴 82년생 김지영도 삼십 대 중반이니.. 82년생 김지영도 그리 갈등하고 속 끓이는데 , 하물며 나 같은 40대 중반 여성들의 사회생활의 시작은 처음부터 무리수 일지 모른다. 30대의 김지영이 경단녀 라면 나 같은 40대는 초고도 경단녀라고 말하는 게 맞을지 모른다.

마흔이 넘으면 알바를 구하는 것도 쉽지 않다. 알바 구직란에 이력서를 공개해놓으면 대부분 보험회사에서 연락이 오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어느 정도 예상은 했지만 결국에는 내 이력서를 비공개로 전환해야 했다.


구직사이트에 사무와 행정 등의 능력에 관한 이력서와 자격증 내역, 자기소개서 등을 등록하고 조건에 맞는 회사에 지원서를 보낸 게 수십 건이었다. 연락을 온 적은 몇 번 안 되고 어떨 때는 젊은 사람들 틈에 면접을 보면서 보기 좋게 낙방을 했다.


마흔이 넘은 사람은 신입사원으로 입사해서 사무직 하면 안 되는 건가? 워드에 엑셀에 PPT까지 다 할 줄 아는데 고도의 전문직은 아니더라도 기본적인 사무행정 실력을 갖췄다면? 그래도 안 되나?

하도 답답하고 억울한 생각이 들기도 해서 40대 후반인 남편에게 물어본 적이 있다.

“자기도 40대 신입사원 뽑기 싫어?”

“아이 쫌... 그렇지 않아? 연봉도 높을 테고.. 불편하지...”

“뭐가? 그렇게 불편해? 같이 일은 한 번이라도 해보기라도 했어? 처음 한두 달은 그럴 수도 있겠지만 그것도 잠깐 일 거란 생각은 안 해? 그리고 난 연봉도 더 달라고 한 적 없다고!”

“..............” 남편도 대답은 못했다.

“그러면서 왜 구직란에 연령 무관이라고 써 놓는 거야?”

“그건 나이를 특정지어서 쓰면 걸리게 돼있어. 그리고 말이 연령 무관이지 대부분은 미리 연령대는 정해놓고 뽑는 게 현실이라고....”

“말이 나왔으니 생각 좀 해 봐. 신입사원이 면접관이랑 나이 대 비슷하면... 불편하고 부담스럽지...”

난 한숨만 나왔다. 모순되기도 하고 당연하기도 하고 뭔가 부조리한 것 같아 보이기도 하고 뭔가가 복잡하고 착잡해졌다.

그 와중에 남편은 날 위로한다.

“뭐 지금처럼 계속 열심히 하다 보면 되지 않을까? 희망을 가지고 기다려봐. 너 잘할 거라는 거 알아.” 물론 전혀 위로가 되지는 않는다.


난 다 알면서도 불구하고 45세에 처음으로 다시 이력서와 자기소개서를 쓰기 시작했다.

도전이나 해보자는 치기 어린 객기는 아니다. 진심이다.

20대 이후로 처음 써보는 이력서와 자기소개서는 강산이 바뀌었다는 것을 실감할 정도로 양식과 주제가 많이 변해 있었다. 난 소위 말하는 요즘식의 이력서 특히 자기소개서를 쓰기 위해 도서관에서 자기소개서 쓰는 책까지 몇 권을 빌려보고 쓰고 또 쓰는 연습을 하고 그것도 모자라 취준생 카페까지 가입해서 자기소개서, 직무기술서 등등 쓰는 법 까지 연습하고 공부해야 했다. 뭐가 이렇게 까다롭고 복잡한지 학원이라도 다닐 수만 있다면 한 번 다녀보고 싶을 정도였다.

취업은 단 1승만이 필요하다고들 말한다. 여성 취업을 위한 인터넷 강의도 들었다. 연령을 떠나 수많은 이들이 그 1승을 위해 수십 번의 서류를 넣고 떨어지기를 반복하는 사례들이 나온다. 나 같은 40대 중반을 훌쩍 넘은 초고도 경단녀는 도대체 얼마나 더 떨어져야 하나? 자존감을 잃지 말도 집념을 가지라고 말하지만 취업을 준비하고 경험하는 과정에서 느낀 것이 하나 있다. 40대는 누군가를 불편하게 만드는 나이일지 모른다는 것이다. 나 스스로가 남을 불편하게 할 생각은 없지만 말이다.


앞에서도 언급했지만 난 서너 번의 면접을 본 적이 있다. 모든 곳이 전부 그랬었다고 말할 수 없다. 하지만 결국엔 끝에 가서 공통적으로 물어본 것은 질문이 있었다.

“왜 취업할 려고 하세요?” 당연히 물어볼 수 있는 질문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내가 말하고 싶은 건 질문의 뉘앙스다. 한 번은 그 질문에 대한 답을 난 진지하게 답했다.

“ 정부나 기관에서는 실업률과 취업률을 통계내고 뉴스를 통해 전달하면서 꼭 빼먹지 않는 것이 있습니다. 그건 40대 고용률과 취업률입니다. 그리고 40대는 우리 경제의 허리라고 까지 표현합니다. 40대의 사회생활과 경제생활은 우리 사회의 생산성과 연결됩니다. 특히 이 지점에서 40대 여성의 취업률은 중요하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저 같은 경우도 거기에 해당한다고 생각합니다. 젊은 사람들과 똑같이 4년제 정규대학을 졸업했으며, 비록 경단녀이긴 하지만 주부로 있으면서 다시 공부를 했고 업무에 맞는 자격증도 취득했습니다. 한마디로 제 나름 재사회화 과정을 충분히 거쳤으며 충분히 사회에 기여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반응은 나의 대답만큼 진지하지 못했다. 너 댓 명의 면접관 사이에서 픽! 하고 웃음이 터졌다. 그리고 한두 명은 가벼운 농담이라도 들은 듯 웃고 넘겼다. 결과도 당연히 낙방이었다.

어떤 곳은 아예 첨부터 내지는 중간에 물어보는 경우도 있었다.

“꼭 취업 반드시 해야 하는 이유라도 있으신 건가요?”

또는 “이런 거 면접할 때 물어보면 안 되는 거 아는데요. 혹시 남편 분 뭐하세요? 내지는 남편 분 같이 사시는 거죠?” 난감하기 그지없다.

한 번은 블라인드 채용에 지원한 적도 있었다. 생년월일과 사진 등을 붙이지 않았다. 서류전형에 합격하고 필기시험 또한 합격했다. 난 어느정도 고무되었던 것도 시실이었다. 면접장에 갔더니 면접을 보기전에 신분증을 일괄적으로 걷었다. 차라리 블라인드 면접이면 끝까지 얼굴도 보지 말던가.


나도 일련의 과정을 겪으면서 나에게 끊임없이 질문한다. 도대체 왜 취직하려고 하는가? 아님 도대체 뭐가 아쉬워서? 아님 도전을 하려는 의지를 보여주기 위해서? 어쩔 땐 하루에도 몇 번씩 묻고 혼자 속으로 대답하기도 한다. 그리고 면접하는 사람의 입장에서 나를 면접하는 상황을 떠올려 보기도 한다.

난 남편이 벌이가 고정적이지 않아서도 아니고 별거의 상태도 아니다. 그냥 누가 봐도 평범한 40대 중반의 여성이다. 다른 건 없다. 결혼하고 출산과 동시에 직장은 그만뒀다. 전업주부로 18년을 살았다. 전업주부 노릇은 할 만큼 했다고 생각한다. 그냥 일이 하고 싶을 뿐이다. 상황과 처지가 절박해야 직장을 잡고 일을 하는 건 아니다. 나도 다시 사회생활하고 일을 하고 싶은 욕구가 생겼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욕구에 맞게 난 다시 공부를 하고 책을 읽고 재사회화를 위한 개인적 노력을 난 아끼지 않고 나름 최선을 다했다. 내가 마음먹은 대로 기다렸다는 듯이 될 거라는 생각은 물론 안 한다. 하지만 누군가를 불편하게 할 생각도 없고 불편한 눈치 또한 받고 싶지 않은 게 내 심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