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취감 만렙이었던 추석 맞이 캠핑
마이산 풍혈냉천 캠핑장에서 일어난 캠핑 스토리
이번 캠핑은 엄마, 나, 언니 이렇게 셋이서 다녀왔다(아빠는 따로 국밥). 그 동안 가족들끼리 캠핑을 가면 언제나 그 중심에는 프로 캠핑러인 삼촌이 있어서 별로 신경쓸게 없었다. 캠핑 장비며 텐트 설치며 삼촌만 쳐다보고 있음 됐었기에 마음 편히 캠핑을 했었다.
그런데 이번에는 그런 삼촌이 합류하지 않고 우리끼리 떠나는 캠핑이라 사실 출발하기 전부터 너무 가기 싫었다. 나는 여행 자체를 그렇게 좋아하는 사람이 아나라서 '아 여행가고 싶다!' 라는 생각을 평상시 잘 하지 않는스타일.
나에게는 가족 여행도 가기 귀찮은 여행 중 하나이지만 그렇다고 진짜 안가면 뭘로 시간을 보내고 함께 추억을 쌓겠나 싶어 싫은 티 내지 않고 따라나서려고 노력하는 편이다. 그런데 이번 여행은 레벨업이 되서 우리끼리 캠핑이라니. 맙소사.
차마 입밖으로 꺼내지 못한 내 진심.
'무슨 우리끼리 캠핑이야..'
'언제 짐 챙겨서 가냐..'
'가서 짐 풀고 텐트 치고 텐트에서 자고 텐트 걷고 짐 싸고..아항ㅠㅠㅠ'
'생각만 해도 심난하다 심난해.. 아아ㅏㅏㅏ 가기귀차나죽겠따아ㅏㅏㅏㅏ'
마음이 안따라주니깐 옆에서 엄마가 왔다갔다하며 서둘러 짐을 챙기고 있어도 나는 계속 밍기적 밍기적. 결국 날아오는 엄마의 재촉.
"너 다 챙겼어?"
"가서 입을 옷이랑 챙겨야지!"
"그만 꼼지락 되고 빨리 챙기라고오오~!!!!"
엄마의 잔소리를 맛있게 한사발 들이키고나니 고장난 몸뚱이가 작동하기 시작한다.
'뭐부터 해야되지. 가만있어보자. 나 씻어야 되는데?'
나 : 엄마 나 샤워 좀 하께
엄마 : 뭐? 너 아침에 안 씻었어??
나 : 응...
엄마 : (이 자식이..)지금까지 안 씻고 뭐했어!!! 언제 가려고 이제 씻는다는 거야~ 벌써 세시 다 되가는데!! 너 또 씻으면 한 시간 동안 씻자나!!
나 : 거기가면 잘 못 씻을거 아냐. 씻고 가야돼~ 십분만에 씻고 나오께용~
엄마 : 십분만에 씻어!!!!!
늦게 씻고 나오면 엄청난 잔소리가 쏟아질 것 같아 최근들어 가장 빨리 씻고 나온 것 같다. 엄마가 문 주변에 갖다놓은 짐보따리들을 열심히 차 트렁크에 싣고 서둘러 캠핑장으로 출발했다.
우리 가족 여행 계획은 거의 언니가 주도적으로 세우는데 이번 여행지도 역시 언니가 검색하여 새롭게 발견한 여행지였다(할튼 우리 언니는 이런 여행지를 참 잘도 검색해서 찾는다). 캠핑장은 전주에서 차로 대략 40분 정도 떨어진 거리에 위치한 진안에 있는 '마이산 풍혈냉천 캠핑장'(풍혈냉천? 무슨 무협소설에서나 나올 법한 이름이..)이었다.
네비가 시키는대로 큰길에서 안쪽으로 살짝 들어가니 캠핑장에 도착했다고 뜨긴 뜨는데.. 이건 뭐 캠핑장 맞아? 할 정도로 뭔가 우리가 기대했던, 텐트들이 쫙 펼쳐진 캠핑장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여기가 맞나? 하며 조심스럽게 오른쪽 길로 좀 더 들어가다보니 드디어 텐트들이 보였다.
오 여기야? 소나무가 가득한 그곳은 나무 사이사이 캠핑을 할 수 있는 데크들이 산 경사면따라 쪼로록 설치되어 있었다. 생각보다 나쁘지 않네? 어디가 우리 데크인지 몰라 일단 차를 세우고 내려 사무실이 어딘지 바쁘게 눈알을 굴렸는데 보이지 않았다.
우리처럼 캠핑 온 분들에게 물어보니 사무실이 어딘지는 모르겠는데 때마침 사장님을 만나서 안내받았다고 했다. "아 그래요? 사장님 어디계시지?" 하고 주변을 둘러보고 있는데 "저기 사장님 오시네요" 하는 것이다. 고개를 들어 위를 보니 남자 한 분이 우리쪽으로 내려오고 있었다.
사장님은 먼저 우리의 예약 여부를 확인(말그대로 예약했는지만 확인하심. 예약자명따윈 확인하지 않는 쿨가이 사장님)하고 나서 우리가 어디 데크를 쓸지 배정해 주었다. 남아있는 데크가 거의 없을정도로 이미 자리잡은 텐트들이 많았는데 꽤 좋은 자리를 배정받게 되었다(여기 캠핑장은 지정제가 아닌 배정제로 운영을 한다). 우리 자리는 주방과 화장실에 가까웠다. 그리고 주방에는 냉장고와 전자렌지도 있었다(이건 생각 못했다).
이제 늘 칠때마다 새롭게 느껴졌던 우리 집 텐트를 꺼내 볼 차례. 캠핑을 아주 가끔 다니다보니 텐트를 칠때마다 새롭다. 사실 우리 텐트는 설치 난이도가 '하' 중에 '하'인 원터치 텐트인데, 그동안 이 쉬운 텐트를 제대로 칠 줄 몰라서 매번 헤맸다.
원터치 텐트는 그냥 있는 그대로에서 약간만 매만져주면 끝이다. 근데 텐트 앞에서는 삼촌 빼고 다들 까막눈들이라 이거저거 만지다가 분리하지 말아야 될 것을 분리해버린 적도 있다. 그러고는 "이거 설치 쉽다고 해서 샀는데 왜 안되는거야~" 이러고ㅎㅎ(연장은 잘못이 없도다...)
나중에서야 '이거 분리하는게 아니었네!'. 뒤늦게 깨달음. 한마디로 우리가 우리 손으로 텐트를 파손한거였음. 그땐 망가트린지도 몰랐을 정도로 무지했다. 그거 다시 원상복구하느라 혼났네. 아무튼 그때 사서 고생했던 경험으로 원터치 텐트가 왜 원.터.치.인지를 확실하게 알았다.
제대로 텐트의 사용법을 알고나서 이번에 처음 텐트를 쳐보는 거라서 좀 심난하긴 했었는데, 오~ 뚝딱뚝딱, 다 설치하는데 십분도 안걸린 것 같다. 중간에 한번 막혔는데 엄마가 다급히 설명서를 가져와 '이렇게 하라는데?' 하며 보여줘서 금방 해결(귀여운 우리 엄마ㅎㅎ).
아니 이렇게 쉬운 텐트를 그동안 왜케 헤맸냐고오~. 예전에 삼촌이 우산 원리라고 설명도 해줬던 것 같은데. 이거 봐라. 아무리 쉬운 것도 누군가에게 의존만 하면 머릿 속에 남는게 없다. 앞에 의자까지 놓으니깐 뭔가 캠핑 구색을 갖춘것 같다.
저녁이 다 되서 언니도 캠핑장에 도착했다. 오면 같이 저녁 먹으려고 주린 배를 움켜쥐고 기다리고 있었는데 너무 배고팠다. 언니가 온 것보다 고기를 먹을 수 있다는 생각에 더 기뻤을지도ㅋㅋ 고기 먹을 생각에 신나서 불판에 삼겹살을 촥촥 가지런히 올렸다.
화려한 만찬을 즐기고 있는 다른 사람들과 달리 우리는 딱 우리 먹을 만큼의 고기(사실 냉장고가 있는지 몰라서)와 삶은 양배추 그리고 몇 가지 밑반찬으로 구성된 소박한 저녁을 차렸다. 각종 쌈채소들을 안 씻어도 되고 그냥 딱 삼겹살만 구우면 되니깐 너무 편했다. 야외에서 먹는 삼겹살은 정말!! 하앜~ 말해뭐해!
텐트치고 저녁먹고 나니 하루가 끝나 있었다. 하지만 그 다음 날부터는 크게 할 일도 없고 가만히 앉아 있자니 슬슬 지루해지기 시작했다(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그냥 '가만히' 있기를 고수하고 있었지). 이번에도 역시 언니가 '진안은 뭐 볼게 있나?'하고 막 찾아봤다. 이 근처에 '용담호'라는 큰 호수가 있는데 호수 구경도 하고 그 근처 카페가서 커피도 한잔 하고 오자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차를 끌고 캠핑장을 빠져나왔다. 언니가 검색해서 찾은 카페를 네비에 찍고 출발했다. 호수 바로 앞에 카페가 위치해 있었는데 주차장에 주차할 곳이 없을정도로 이미 많은 방문객들로 붐볐다. 대기자들도 많아보여 아쉽지만 우리는 발길을 돌렸다.
이 카페는 다음에 꼭 한번 다시 가보고 싶은 카페다. 호수뷰가 정말 아름다울 것 같다. 야외 공간도 보였는데 거기서 커피 마시면 기분이 넘나 좋을 듯!
우리는 용담호를 따라 드라이브를 했다. 창문을 내리고 호수를 바라보는데, 오~ 생각보다 호수가 상당히 크고 아름다운데? 이름이 뭐라고? 요ㅇ..용담호?? 진안에 이런 멋진 호수가 있었다니. 엄마 말로는 이 물을 전주에서 사용한다고 한다. 그런 고마운 호수를 이제서야 알게되었네.
시원한 가을 바람을 맞으며 아름다운 뷰로 눈호강까지 더해주니 저 밑에 숨어있던 말캉말캉한 감성이 마구마구 차올랐다. 한마디로 기분 째짐ㅋㅋ 용담댐까지 발도장 찍고 저 멀리 마이산은 눈도장만 찍고 우리는 다시 우리의 아지트가 있는 캠핑장으로 향했다.
돌아가는 길에 괜찮은 카페가 보이길래 잠시 들리기로 했다. 이 집은 쑥.라.떼가 강추메뉴였다. 쑥?? 쑥라떼?? 쑥과 라떼의 조합이라.. 묘하게 끌리는 조합이라 의구심 반 호기심 반으로 한번 마셔보기로 했다.
언니는 복숭아라떼, 엄마는 백향과차를 시켰다. 백향과차도 여기서 처음 들어봤다. 백향과는 백가지 맛과 향이나는 과일이란다. 다른 곳에서는 보기 드문 음료들이 많아 흥미로웠다. 건물 전체가 이 카페였는데 우리는 3층 꼭대기로 올라갔다. 3층은 옥상 테라스였다.
벼가 익어 완전히 금빛으로 물든 풍경. 바람은 더 시원하고 강하게 불기 시작했다. 쑥라떼를 조심스럽게 빨아 마셔보았다. 음?? 오와아ㅏ맛있는데!!! 진짜 맛있었다. 기대했던 것보다 훨씬!!! 괜히 강추하는 시그니처 메뉴가 아니었네.
나에게는 라떼가 너무 달아서 평소 잘 먹지 않는 메뉴였는데 이 쑥라떼는 너무 달지도 않고 또 라떼의 느끼함을 쑥향이 확 잡아줘서 진짜 맛있게 쭉쭉 마셨다. 복숭아라떼랑 백향과차도 맛보았는데 향긋하고 맛있었다. 하지만 내 쑥라떼가 갑이었음!ㅎㅎ
같이 시켰던 얼그레이 케잌도 향이 확 살아있어 맛있었다(이건 분명 크림에 레몬이 들어갔다! 아니다! 로 언니랑 실랑이 했는데 진실은 안들어갔다 였음. 언니 말이 맞았네. 머쓱타드;;). 살찌는데 이건 왜 시켰냐고 언니한테 한소리 했는데 괜히 잔소리했다 싶을정도로 너무 맛있게 잘 먹어 버렸네?ㅋㅋ 전반적으로 메뉴들이 기본 이상은 하는 곳.
해가 질 무렵이라 바람이 제법 쌀쌀해졌다. 살려고 평상시 존재감 없던 팔뚝 털들이 아주 바짝바짝 섰다. 언니가 "엄마 쟤 닭살 돋은 거봐!!! 진짜 닭.살. 같애!!!" 이러고 놀리는데 나도 미약하나마 최선을 다하는 내 털들이 웃겨서 웃음이 났다. 엄마도 춥다고 해서 우리는 후다닥 남은 음료와 케잌을 흡입하고(엄마가 한쪽에 덜어 놓은 생크림까지 싹싹 긁어 입안에 털어 넣었다) 황급히 카페를 빠져나왔다.
우리는 다시 캠핑장으로 돌아왔다. 돌아오는 길에 언니가 옆집처럼 우리도 모닥불 한번 피워보자고 해서 마트에서 장작 1키로를 사서 캠핑장으로 돌아왔다. 이번 캠핑에서 제일 좋았던 것을 하나 꼽으라면 단연코 '모닥불'이라고 말하고 싶다.
불지피는 방법도 잘 몰라서 진짜 무식하게 불을 피우긴 했는데 그래서 더 기억에 남고 뿌듯했던 것 같다. 보통은 '착화제'라는 것을 써서 손쉽게 불을 지피더라. 우린 뭐 그런게 있는지 몰랐지. 그냥 장작만 사가지고 와서 화로에다가 장작부터 막 놓았지. 세워서도 아니고 눕혀서.
엄마가 "야 먼저 종이부터 깔아야지~" 했는데 우리가 엄마 말 무시하고 장작부터 깔아놓고 종이에 불붙여서 하려고하니 이게 되겠냐고. 첫 단추부터 잘못 끼우고서 우리 둘이 아둥바둥하는 동안 엄마는 저기서 잔가지들이랑 솔잎들을 주어와 열심히 화로에 집어 넣었다.
종이는 너무 빨리타서 없어지는 반면 잔가지들은 불은 잘 붙고 종이보다 훨씬 오래탔다. 가운데 깊숙히 잔가지들을 밀어넣고 부채질하고 밀어넣고 부채질하고를 계속 반복. 부채질을 하면 불길이 활활 타오르는 듯 하다가 잠시 멈추면 다시 불길이 시름시름 사그라들었다(아오 얄미워).
그때마다 연기는 폴폴나고 괜히 옆집들에게 미안해지고. 하지만 어쩔 수 없다. 이게 은근히 승부욕을 자극시키네? 오늘 끝장을 본다!! 누가 이기나 어디 한번 해보자고오오!! 언니랑 나랑 서로 부채질하겠다며 아옹다옹. 언니도 얼굴 빨개져라 부채질. 나도 팔이 떨어져라 부채질. 엄마는 열심히 잔가지 쑤셔넣기.
진짜 셋이서 난리부르스를 치며 한시간(느낌상?) 정도 사투를 벌이고나니 장작에 불이 제대로 붙기 시작했다. 와 징짜.. 장작에 불붙이기가 이렇게 어렵다고? 정신이 어디 딴데로 도망 못감. 온니 불씨! 열이 충분히 전달되고나서야 장작이 타기 시작했다. 그래서 장작이 오래 타기도 하고 불꽃이 사라지고나서도 오랫동안 열을 머금고 있나보다.
불피우기의 일등 공신은 엄마였다. 알고보니 엄마는 어릴 때부터 불을 피웠던 경험이 많이 있었드라. 처음부터 엄마 말을 잘 들었어야 됐는데. 여튼 뭐, 불피우는 과정이 다소 어수선하고 어설프긴했지만 그래서 더 재밌었던 것 같다. 불씨의 성장과정을 관찰하는 것도 신기했고. 어찌됐건 우리 힘으로 모닥불도 피워보고. 우리는 매우 흡족했자나?!!하하하
우리가 익히 알고있는 모닥불 모양으로 잡히고나니 상자 속에 남아있는 장작은 단 3개였다. 1키로가 얼마 안되는 양이었구나. 금방 태우네. 불멍을 좀 더 즐기려면 최소 2키로는 있어야 될 것 같다. 저녁이라 기온이 많이 내려갔지만 화로가 있어 진짜 따뜻했다. 차가운 공기 속에 따뜻한 온기를 느끼며 불멍 때리기. 좋네~
우리는 불멍을 하며 이 좋은 불에 고구마를 굽지 못하는 걸 너무나 아쉬워했다(갑자기 하기로 한 모닥불이라서 미쳐 준비를 못했다).
여기에 고구마를 구웠으면 얼마나 맛있었을까.
여기에 감자를 구웠다면
여기에 삼겹살을 구웠다면
여기에 소시지를 구웠다며어어어언~~~~
아 이 숯불이 너무 아깝도다아아ㅏㅏㅏㅏ
우리가 저녁으로 사온 김밥 두줄을 먹으며(진안 시내 밥집이 거의 문닫아 버렸다ㅠㅠ 김밥도 겨우 사옴) 연신 고구마와 감자, 삼겹살 소시지를 외쳤다.
옆집도 모닥불을 피우기 시작했다. 시작한 지 얼마 되지도 않은 것 같은데 갑자기 불꽃이 화르륵! 손쉽게 불피우고나서 자리에 앉아 영화를 감상하기 시작하는 그들. (우리둥절) 뭐지? 저긴 뭔데 저렇게 빨리 불이 붙냐?? 이때까지만 해도 착화제의 존재를 몰랐음.
모닥불이 사그라들자 엄마랑 언니는 슬슬 텐트로 들어가 잘 준비를 했다. 나는 좀 더 있기로 했다. 아직도 잿더미 안에는 마그마처럼 보이는 잠열이 살아 숨쉬고 있었다. 느낌 충만한 음악을 틀어 놓고 브런치에 글을 쓰다보니 자정이 넘어갔다.
꽤 만족스러웠던 우리의 캠핑서사는 곧 들이닥칠 위기의 순간을 전혀 눈치채지 못했다. 어쩐지 산 너머 들려오던 바람 소리가 심상치 않더라니.
새벽 5시쯤인가? 자고 있는데 갑자기 빗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일기예보에서 알려준 비소식보다 하루 더 빨리 비가 내리기 시작한 것이다. 우리끼리 텐트 잘 설치했다고 삼촌한테 자랑했을 때 삼촌이 "뚜껑이 있어야 되는데~" 혹시 모르니깐 텐트 위에 타프쳐야 된다고 말해줬었는데~~ 그 말을 안들었더니 이런 사단이...!!!! 텐트 안으로 빗물이 뚝뚝 떨어지고 난리나버렸네ㅠㅠ 아직도 졸려 죽겠는데 잠자기 글렀네ㅠㅠ
우리가 캠핑하는 2박3일 동안 비소식이 없길래 그냥 텐트만 치고 자도 충분하겠지 생각한게 실수였다. 모든지 변.수.라는 것이 있는데! 어떻게 버텨볼까 했지만 그러기엔 빗줄기가 너무 굵었다. 원터치 텐트라서 텐트 꼭대기에서 빗물이 뚝뚝 떨어졌다. 언니가 임시방편으로 손으로 막고 있다가 우리를 보더니 "이거 도저히 안되겠는데?"
언니의 빠른 판단력으로 우리는 텐트 안에 있는 짐들을 모두 차에 실어놓기 시작했다. 그 빗속에서 "빨리 빨리"를 외치며 차로 짐을 나르는데 주변 텐트들을 보니 아무도 나오는 이 없이 다들 평화롭게 자더라. 와아~ 우리만 피난민(아 뚜껑칠걸ㅠ). 짐 다 싣고 차 속으로 들어가고 나서야 한바탕 소동이 일단락됐다. 아 살겠다 이제. 잠이 덜 깬 상태인데도 잠이 오지 않았다.
나뿐만 아니라 다들 그래 보였다. 이 상황이 어이가 없어서 우리 모두 너털 웃음이 나왔다. 언니가 차 속에서 이러고 있느니 차라리 집에가서 짐을 좀 빼놓고 재정비한 후 다시 오자고 했다. 오그래 그거 좋은 생각이다!! 역시 위기에 강한 여자!! 우리는 황급히 캠핑장을 빠져 나왔다. 캠핑장이 집이랑 멀지 않아 왔다갔다하는게 별로 부담스럽지 않았다.
부리나케 집에 도착해서 짐 내리고 비에 쫄딱 젖은 옷 갈아 입고 이불 속에 들어가니, 와아ㅠ 너무 좋아ㅠㅠ 몸이 노곤노곤. 한숨 푹 자고 일어나서 다같이 아침 밥을 먹었다. 창밖을 보니 비가 그쳤다!
와! 해 나왔다! 다시 비오기 전에 빨리가서 텐트 걷자!! 우리는 다시 캠핑장으로 돌아가 서둘러 텐트를 걷고 나머지 짐도 몽땅 챙겼다. 그런데 쉽사리 다시 비가 오지 않을 것 같아 우리는 어젯밤 캠핑장 사장님이 알려주신 장소에서 꾸지뽕을 따가기로 했다.
어제 사장님이 말하기를 캠핑장 바로 밑에 있는 도로따라 사장님이 심어 놓은 꾸지뽕 나무가 있다는 것이다. 꾸지뽕이 당뇨에도 매우 좋다고 한다(엄마가 당뇨가 있는데 너무 잘됐다 싶었다). 이렇게 캠핑장 오는 방문객들에게 또 하나의 재미로 꾸지뽕 따는 체험을 제공해주려고 일부러 꾸지뽕 나무를 심어 놓으셨단다. 뭔가 섬세하심. 봄에는 표고버섯도 수확할 수 있다고 한다.
말 나온 김에 사장님 얘기를 잠깐 하자면(궁금증 많은 우리 언니가 사장님에게 이거저거 캐물어봄) 8년 전 캠핑장 만들 장소를 찾고 있던 중 유독 소나무가 많았던 이곳이 너무 맘에 들어 이 땅 주인을 3년 동안 쫓아다닌 끝에 이 땅을 매입할 수 있었다고 한다.
땅 다지고 소나무 외 다른 나무들을 베어내어 확보한 공간에 데크와 글램핑 시설을 갖춰 준공을 받기까지 삼사년 정도 걸렸다고 한다. 그리고 본격적으로 캠핑장을 운영하기 시작한 지는 사년정도 됐다고. 부지가 넓다보니 아직도 공사해야 될 부분들이 꽤 있어보였다.
요즘 세대들의 감성을 자극시키는 스타일의 글램핑들도 곧 오픈을 앞두고 있었다. 사장님도 예전에 사진작가였고 아내와 딸도 의상디자이너여서 그런지 글램핑을 감각적으로 잘 꾸미시는 것 같다. 사장님 스토리를 들으니 어떻게 개인이 이런 캠핑장을 만들어 이렇게 운영을 할까! 참 의지가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무튼 우리는 각자 바구니 하나씩 들고 꾸지뽕을 따러 갔다. 가는 길에 오골계도 보이고 그 옆에 엄청 귀여운 어린 백구도 있었다! 어찌나 사람을 반기던지(언니가 다가가니깐 꼬리 흔들면서 점프점프). 너무 귀여워 혼났네. 꾸지뽕(이번에 처음 들어 봄), 생긴게 뭔가 그닥 맛있어 보이는 비주얼은 아니었지만 일단 한번 조심스럽게 톡! 따보았다.
톡하고 따인 구멍에서 요거트 같은 액체가 쯔읔~ 하고 나왔다. 비호감 추가.
"엄마, 이거 이 하얀거 뭐야??"
"아 그거, 그게 몸에 좋은 거야~~"
아 이게 몸에 좋은 거구나~ 그 다음부터는 별 의심없이 톡톡 따기 시작했다. 벌레 있나 없나만 살펴보고 열심히 따다보니 손이 점점 끈적거려졌다. 위쪽으로 갈수록 열매가 크고 좋은데 손이 닿지 않아 아래쪽에 있는 것만 집중 공략. 그래도 셋이 따니깐 짧은 시간에 제법 땄다.
돌아오는 차안에서 엄마가 "꾸지뽕 하나 먹어봐~" 하고 건네주는데 "난 안 먹을래. 언니 먼저 먹어봐"하고 언니에게 토스했다. 언니도 꾸지뽕을 바라보는 표정이 영~ 밝진 않았는데 조심스럽게 한입 베어먹더라(나보다 용기있어. 인정).
근데 잠시 후 놀라는 표정. 이것은 분명 의외로 맛있다는 시그널. 그제서야 나도 한입. 음.. 맛있는데??ㅋㅋㅋㅋ 머야 이거ㅋㅋ 그 뒤로 엄마한테 계속 리필 요청. 아 이럴 줄 알았으면 더 딸 걸. 너무 달지도 않고 맛있네. 꾸지뽕과 함께 돌아오는 길이 즐거웠다
(후일담이지만 전주 다다라서 밥먹으려고 식당에 들렸는데 그 식당 정원에 꾸지뽕 나무 한그루가 있었다. 이제 꾸지뽕 나무가 눈에 잘 들어옴ㅋ. 그런데 꾸지뽕 크기가 우리가 땄던 꾸지뽕 크기보다 훨씬 큰거다. 거의 3배정도? 머야 여기 꾸지뽕은 왜케 커엌?? 우리가 딴 건 애기였네. 엄마 말로는 거름을 잘 줘서 그런 것 같다고 한다. 근데 우리 언니, 그 맛이 궁금하다고 식당 주인에게 먹어도 되냐고 물어본다길래, 그걸 왜 물어봐아!! 했지만 결국 물어봄. 나도 하나 줘서 먹어 봤는데 맛은 비슷한 것 같다. 크기가 크다고 더 맛있거나 하진 않았음)
이번 캠핑은 한마디로 성취감 만렙이었던 갓캠핑이었다. 새벽에 피난민 신세가 되긴 했지만 마지막 미션인 꾸지뽕 수확까지 완수하고. 나름 완벽했다고 본다. 우리 손으로 텐트도 치고 모닥불도 피우고 꾸지뽕도 따고(흡족). 그동안 해보지 않았던 새로운 것들을 많이해서 훨씬 더 다이나믹했던 여행이었다.
언니가 뭐하자고 하면 '뭘 자꾸 일을 벌리냐~' 하며 짜증부터 났는데 또 막상해보면 새롭고 재밌는 것들이 많긴했다. 그래서 지나고나면 미안하고 고맙고 그랬네. 하지만 이렇게 반성하다가도 또 언니가 나중에 뭐하자고 하면 분명 또 툴툴거리겠지. 아무튼 많은 사람들이 올 추석에 가족들과 행복한 추억 많이 만들었길 바란다.
추석 맞이 캠핑 리뷰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