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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사물의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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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GZ Dec 06. 2023

성장통

성장을 하고 있다. 아프고 느리게. 이렇게 심장이 녹아내릴 것과 같은 통증에 노출되다가는 죽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한 한해였다. 마음이 너무 아프면 그 고통으로 숨이 멎어 버릴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위태로움을 느끼기도 했던 한 해였다. 2023년의 끝, 2023년을 돌아보고 2024년을 넘어다보며 나에게 끝없이 말한다. 숨을 쉬라고. 이 상황에 숨까지 참고 있으면 내가 너무 불쌍해진다고. 

올해는 관계에 있어 예상하지 못한 일이 너무 많이 일어났다. 실제로 자의 자존감을 무너뜨리려는 여러 상황이 발생하기도 했고 코너에 몰리면서 내가 그 상황을 확대해석하여 나를 힘들게 하기도 했었다. 매달릴 곳이 필요했다. 이러다가는 나를 휩쓰는 물결에 떠밀려 내려가 잃을 길조차 없는 상황에 이르게 될지도 모른다는 위기감이 엄습해서였다. 

한 사람만 딱 한 사람만 내 손을 잡아 주었으면 했던 순간이 적지 않았다. 도와달라고 손을 내밀면 그들이 오히려 내 손을 붙잡고 그들 인생의 다음 단계로의 도약을 시도했다. 내 어깨를 딛고 올라서며 그들은 고맙다고 했다. 고맙다고 해서 내가 도움이 될 수 있어 다행이라고 했다. 그 말을 하는 내 어깨는 부서져 있었고 손은 헐어 있었으며 가슴은 너덜너덜해져 있었다. 

매몰차지 못한 내가 미웠다. 내 것을 챙기지 못하는 내가 한심했다. 그러다가 어느 날엔가는 그런 바보 같은 내가 무서워졌다. 남들에게 다 줘 버리며 내 차례를 기다리고 있는 동안 내 인생은 무엇하나 남겨진 것 없이 망가져 가고 있는 것 같은 데 그런데도 괜찮다며 웃고 있는 내가 이 험난한 세상에서 살아남을 수 있을지를 확신할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일어나지 않아도 될 일이 너무 많이 일어났다. 나의 친절과 예의가 배신이 되어 돌아오는가 하면 내 성실함이 누군가의 인생을 위한 도구로 사용되기도 했고 아무것도 남겨진 게 없는 것 같은 내 인생이 타인을 위한 장식품으로 소환되기도 했다. 굳이 겪지 않아도 되는 일들이 매달 나에게 닿았다. 버티는 데는 인이 박인 나였는데 더는 못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돌아나가고 싶었다. 나를 둘러싼 모든 것에서 벗어나 어디라도 도망가서 숨어 있고 싶었다. 고개를 돌려 보았다. 출구가 보이지 않았다. 그래서 울면서 걸었다. 너무 많이 울어서 눈이 아프면 눈 위에 손을 얹은 채 걸었다. 그래도 어쩐지 눈물이 멎지 않았다. 다들 그다지 큰 파고 없이 물결이 주는 다소의 일렁임을 느끼며 잘 나아가고 있는데 나만 내내 소용돌이 속에 들어 있는 것 같은 소외감과 또 어떤 일이 닥쳐 나의 인내의 바닥을 마주하게 할지 모른다는 두려움 때문이었다. 

왜일까, 어디서부터 무엇이 잘못된 것일까, 하는 생각을 할 새도 없었다. 하나가 지나가고 나면 또 다른 일이 일어나는 식으로 예측 못한 일이 도미노처럼 이어졌다. 바람인지 사람의 손인지 모를 무엇이 도미노에 닿으면 그때부터는 손을 쓸 틈도 없이, 나의 의지와 관계없이 일이 일어났다. 망연자실했다. 노력도 의지도 무용하게 해 버리는 일들 앞에 무엇을 해야 할지 몰라 멍해졌다. 그러고 있다 보면 볼이 촉촉해지는 것이 느껴졌다. 울고 있음에도 울고 있는지조차 알아채지 못할 만큼 감정도 이성도 굳어 있었다. 

세월이 약이라고 했는데 나의 세월의 약효는 아직인지 연말을 앞둔 나는 여전히 아픔에 둘러싸여 있다. 저며오는 어깨를 문지르며 일어나게 되는 아침이면 생각한다. 지독한 성장통을 앓고 있다고. 그리고 이 성장통의 끝은 성장에 닿아있다고. 거부하려 해도 거부할 수 없는 것이라는 것이지만 끝이 보이지 않는 이 성장통이 지금은 조금 버겁다고. 그러면 이제 막 눈을 뜬 내가 답한다. 죽을 만큼 힘들겠지만 죽음을 향해 가는 성장통은 없다고. 그러니까 버티라고 버티면 웃을 날이 온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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