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서로 다른 학교를 다녔고, 서로 다른 교실에 앉아 있었다.
그럼에도 이상하게 비슷한 말을 들으며 자랐다.
수학 시간만 되면, 거의 예외 없이 등장하던 문장이 있다.
"지금은 이유 몰라도 돼"
그 말은 대개 친절하게 건네졌다.
아이를 다그치기보다는 진도를 맞추기 위해, 혹은 혼란을 줄이기 위해 선택된 말이었다.
"일단 이렇게 하면 돼."
"지금은 그냥 넘어가자."
"나중에 가면 다 연결돼."
그때 우리는 고개를 끄덕였다.
이유를 묻지 않아도 된다는 말은, 사실 꽤, 안심이 되는 말이었기 때문이다.
모르는 상태로 남아 있어도 괜찮다고, 지금은 이해하지 못해도 된다고 허락받는 느낌.
질문하지 않아도 된다는 말은, 질문하지 못하는 나를 감싸주는 말처럼 들렸다.
교실의 풍경도 늘 비슷했다.
칠판에는 이미 정답에 가까운 풀이가 적혀 있었고,
선생님은 그 풀이를 빠르게 따라가며 설명을 이어갔다.
설명은 흘러가고, 우리는 받아 적었다.
이해가 됐는지는 묻지 않았고, 묻더라도 대답할 시간은 많지 않았다.
"이건 이렇게 외우면 돼."
"지금 단계에서는 깊게 생각 안 해도 돼."
그 말들은 틀린 말이 아니었다.
실제로 어떤 개념은 나중에야 비로소 제자리를 찾기도 한다.
모든 걸 한 번에 이해할 수 없다는 것도 사실이다.
문제는, 그 말을 한 번이 아니라 반복해서 들었다는 데 있다.
처음에는 잠깐이었다.
그 다음에도 잠깐이었고,
어느 순간부터는 설명이 생략되는 쪽이 기본이 되었다.
우리는 그 차이를 느끼지 못한 채 받아들였다.
수학에서는 이유를 물어보는 사람이 유난스러운 사람처럼 보였고,
설명을 끝까지 듣고 싶어 하는 태도는 진도를 방해하는 것처럼 여겨졌다.
질문은 줄어들었고, 따라 하는 능력이 중요해졌다.
그 순간, 아주 조용히 하나의 신호가 전달된다.
말로 선언되지는 않았지만, 분위기와 반복을 통해 학습된 신호였다.
수학에서는 이해하지 않아도 된다.
지금은 따라오기만 하면 된다.
이 신호는 작고 사소해 보였다.
누군가를 좌절시키지도 않았고, 당장 성적이 떨어지지도 않았다.
오히려 많은 경우, 그 덕분에 문제를 더 빨리 풀 수 있었다.
외운 방식대로 계산하면 답은 나왔고,
정답이 맞으면 다음 단계로 넘어갈 수 있었다.
그래서 우리는 이 신호를 의심하지 않았다.
이해하지 못한 채 넘어가는 경험이 몇 번 반복되어도,
"원래 그런 거겠지"라고 생각했다.
이해는 언전가 따라오는 것이고,
지금은 속도를 맞추는 게 중요하다고 믿었다.
하지만 이 믿음은 아주 중요한 변화를 만들어낸다.
그때부터 수학은,
이해하는 과목이 아니라 수행하는 과목이 되기 시작한다.
왜 그렇게 되는지는 나중 문제였다.
지금 중요한 건, 주어진 규칙을 얼마나 정확히 실행하느냐였다.
생각은 줄고, 절차는 늘었다.
설명은 사라지고, 방법만 남았다.
이 변화는 너무 자연스러워서 거의 기억에 남지 않는다.
우리는 "수학이 어려워졌다"는 말을 훨씬 나중에 꺼낸다.
분수를 만나고, 문자를 만나고, 함수와 그래프 앞에서 멈춰 섰을 때
비로소 그때를 떠올린다.
하지만 정말 그때부터였을까.
어쩌면 수학이 어려워지기 시작한 순간은,
우리가 처음으로 이해하지 않아도 괜찮다고 믿어버린 바로 그때였을지도 모른다.
그 믿음은 우리를 보호해주는 말처럼 시작됐지만,
조금씩 다른 선택을 하게 만들었다.
이해하려 애쓰기보다 외우는 쪽으로, 묻기보다 넘기는 쪽으로,
그리고 우리는 그 선택이
얼마나 오래 따라오게 될지 알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