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은 이유 몰라도 돼."
이 말이 문제가 되는 이유는,
그 말이 틀렸기 때문이 아니라 오히려 합리적으로 들렸기 때문이다.
만약 이 말이 처음부터 거칠게 느껴졌다면, 우리는 경계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실제로 그 말은 대부분의 상황에서 꽤 현실적인 선택처럼 보였다.
교실에는 시간이 부족했다.
정해진 진도는 빠듯했고, 한 교실 안에는 이해 속도가 전혀 다른 아이들이 함께 앉아 있었다.
누군가는 이미 알고 있었고,
누군가는 처음 듣는 이야기였다.
모두를 붙잡고 이유를 설명하기에는 수업 시간은 늘 모자랐다.
설명을 길게 하면 진도가 밀렸다.
진도가 밀리면 시험 범위를 끝내지 못했다.
시험 범위를 끝내지 못하면, 아이들은 더 큰 혼란을 겪게 된다.
그 안에서 "일단 넘어가자"는 선택은
누군가를 배려하는 말처럼 들리기도 했다.
부모의 입장에서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아이의 질문에 매번 충분히 답해주기란 쉽지 않았다.
설명을 하다 보면 오히려 더 헷갈려하는 경우도 있었고,
"이건 나중에 배우는 거야"라는 말로 정리하는 편이 편할 때도 있었다.
학원에서도 상황은 비슷했다.
제한된 시간 안에 많은 문제를 풀어야 했고,
설명보다는 풀이 패턴을 익히는 쪽이 효율적이었다.
"이 유형은 이렇게 풀어"라는 말은
짧고 명확했고, 결과도 빨리 나왔다.
그러니 그 말은 자연스러웠다.
누군가의 무책임이라기보다,
모두가 선택한 가장 덜 나쁜 선택에 가까웠다.
게다가 그 말은 당장 효과가 있었다.
이유를 몰라도 문제는 풀 수 있었고,
정답을 맞히면 성취감도 생겼다.
이해하지 못했다는 불안은
정답이라는 결과로 잠시 가려졌다.
그래서 우리는 이렇게 믿게 된다.
지금은 몰라도 괜찮다.
어차피 문제는 풀 수 있다.
이 믿음은 틀린 믿음이 아니었다.
실제로 많은 아이들은 그 방식으로 꽤 오래 버텼다.
초등학교를 지나고, 중학교 초반까지도
큰 문제 없이 따라갈 수 있었다.
문제는, 이 선택이 임시방편이라는 사실을 아무도 말해주지 않았다는 데 있다.
"지금은 몰라도 된다"는 말에는
사실 뒤에 따라붙어야 할 문장이 있었다.
지금은 몰라도 되지만,
언젠가는 반드시 이해해야 한다.
하지만 그 뒷문장은 자주 생략되었다.
그리고 생략된 문장은
아이의 학습 방식 속에서 점점 사라졌다.
그 결과, 이해는 목표가 아니라 옵션이 되었다.
시간이 되면 챙기면 되는 것,
필요할 때 돌아보면 되는 것이 되었다.
지금 당장 하지 않아도 되는 일이 되었다.
이 변화는 눈에 띄지 않았다.
성적이 갑자기 떨어지지도 않았고,
문제가 갑자기 어려워지지도 않았다.
오히려 "잘 따라오고 있다"는 평가를 받는 경우도 많았다.
그래서 아무도 멈춰 서지 않았다.
아무도 이 방향이 맞는지 묻지 않았다.
모두가 같은 속도로 움직이고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수학은,
이해를 미뤄도 괜찮은 과목이 아니다.
이해는 쌓이는 것이고,
한 번 건너뛴 이유는
나중에 두 배의 무게로 돌아온다.
그때는 이미 어디서부터 빠졌는지조차 기억나지 않는다.
그럼에도 우리는 그 말을 믿었다.
그 말이 우리를 도와주는 말처럼 들렸기 때문이다.
그 말이 없었다면,
우리는 그 수업을 따라갈 수 없었을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이야기는
누군가를 탓하기 위한 이야기가 아니다.
선생님을, 부모를, 학원을 비난하려는 글도 아니다.
이건 단지,
모두가 선택했던 한 문장이
어떤 방향으로 우리를 데려왔는지에 대한 이야기다.
그리고 이제부터 중요한 건
그 선택이 잘못되었는지를 따지는 게 아니라,
그 선택이 우리의 학습 방식을 어떻게 바꿔놓았는지를 이해하는 일이다.
그 변화는 아주 조용히 시작되었고,
우리는 아직 그 결과를 끝까지 보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