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 끝으로 여는 작은 세상
또 기다리는 편지, 정호승 시인의 시를 사랑한 적이 있다. 그토록 아름다운 기다림을 할 수 있을 거라 자신한 적도 있다. 가슴이 아프기도 하겠지만 기다림을 하는 순간이 얼마나 설레는지 모르지 않기에.
스무 살 갓 넘어 세상을 푸르게만 보던 시절, 하루 종일 누군가를 기다리기도 했다. ‘오지 않는’ 누군가를 기다리면서도 행복했다. 좋아하는 음악이 흘러나오는 카페에 앉아 향기로운 차 한 잔을 시켜놓고. 사각사각 연필로 그의 이름을 수첩 한 가득 적으면서. 띠링 문이 열리는 소리에 설레다 실망하다를 반복하면서. 그렇게 몇 시간을 기다려도 행복하던 그 때.
시간은 흘러 어느덧 서른 살이 됐다. 나이를 먹어갈수록 기다림이 힘겨워지기 시작했다. 겁쟁이가 되어 버린 거다. 준만큼 되돌려 받고 싶어졌고, 기다리면 만나고 싶어졌으며, 상처받는 게 두려워졌다. 점점 기다리지 않기 시작했다. 그러다보니 감을 잃게 됐다. 어떻게 기다렸더라 잊어버리고 말았다. 기다림이 길어지면 초조해졌다. 기다림이라는 단어를 좋아하면서도 기다리는 쪽은 내가 아니길 바랄만큼 이기적이 되었다. 어른이 된다는 건 이런 거다. 완성형 어른이라면 다를 수도 있겠지만, 난 그저 보통의 어른이니까.
누군가를 간절히 기다리는 자신의 표정을 본 적이 있는가. 보통은 기다리는 마음이 애처로워 다른 걸 신경 쓸 겨를이 없다. 나도 마찬가지였다, 그러다 우연히 창에 비친 내 눈과 마주하게 됐다. 비가 올 것처럼 온 세상에 이슬이 가득한 날, 내 눈엔 기다리는 이가 자리하고 있었다. 우리가 기다리는 이가 혹 오지 않는다 하더라도 기다리는 그 순간부터 이미 그들은 만나고 있는 건지도 모른다. 허나 그를 깨닫는 건 쉽지 않고 알게 되더라도 그 순간마저 사랑한다는 건 더욱 힘든 일이다. 값진 것이든 그렇지 않은 것이든 쉽게 얻고 싶어 하는 게 사람 마음이니.
빠르게 변화하는 세상, 무엇이든 기다리지 않고 기다리는 게 어색한 세상, 그 안에서 홀로 기다린다는 게 쉽지 않다. 기다림은 오롯이 혼자 하는 사랑이기에. 그래서 더 아름답고 귀한 것이겠지.
가끔 그립다, 귀한 사랑을 위해 귀한 행동을 했던 내 모습이. 오늘처럼 바람이 부는 날이면 더욱 그리워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