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 끝으로 여는 작은 세상
지나는 길에 수족관을 본 적이 있다. 이십 년 전만 해도 시내에 수족관이 꽤 있었던 걸로 기억하는데 요즘은 눈에 잘 띄지 않는다(내가 찾지 못하는 건가, 싶기도 하고.). 수족관을 언제 보았는지, 내가 그날 어딜 가고 있는 중이었고 무얼 하러 가는 중이었는지는 생각나지 않지만 수족관만은 기억이 남는다. 그리 눈에 띄는 가게가 아니었지만 수족관 자체를 오랜만에 보게 된 거라 그런가 보다.
허름한 가게 안엔 다양한 모양의 어항이 주욱 진열돼 있었다. 그닥 예쁘진 않았지만 어항이라는 게 투명한 거니 그 안에 놀고 있는 크고 작은 물고기에게 시선이 가기 마련이지. 검은 색부터 흰 색, 주황 색, 청 색 등등 색도 다양하고 크기도 다양했다. 배불뚝이, 날씬한 녀석, 툭눈붕어 등등 모양도 다양하고. 좁은 어항 속에서도 금붕어들은 잘도 놀고 있었다. 수초와 돌이 있는 어항도 있었고, 아무것도 없이 공기방울만 보글보글 올라가고 있는 어항도 있었다. 물고기들은 그런 환경은 상관없다는 듯 어항 안을 자유롭게 돌아다니고 있었다.
가만, 발걸음을 세우고 한참 들여다보았다. 어항 안의 물고기들은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좁은 어항 안에서 자유를 느끼고 있을까?
몇 년 전에 보라카이에 간 적이 있었다. 그 곳에서 본 바다는 말로 표현할 수도 없는, 아름다움 그 자체였다. 한 번도 본 적 없는 색을 갖고 있었다. 하늘빛 보다는 진하지만 내가 보아오던 물빛 보다는 연한. 그러면서도 하늘과의 경계가 구분되지 않을 만큼 조화로운 색이었다. 하늘빛을 담아내면서도 바다 고유의 색을 버리지 않고 있었다. 사진을 찍는 걸로는 부족했다. 사진 안에 그 자연의 빛깔을 담는 건 불가능했으니까. 그저 눈과 마음에 담아두는 것으로 만족해야 했다.
배를 몰고 바다 한 가운데로 나가 스킨스쿠버를 하게 됐다. 간단한 교육을 마치고 두려운 사람은 하지 않아도 된다고 했다. 수영도 할 줄 몰랐지만 전혀 무섭지 않았다. 하늘을 마주 보며 그 빛을 담아내는 아름다운 바다와 만나는 건 내게, 두려움이 아니라 설렘이었다. 불편한 다이버 복을 입고 등엔 산소통까지 매달고 코로 숨을 쉴 수도 없었지만 마음은 이미 바다 속을 헤젓고 있었다.
바다 안에는 새로운 세상이 있었다. 그리고 그 새로운 세상에 살고 있는 물고기들이 있었다. '니모를 찾아서'와 같은 만화영화에서나 보아오던 그런 물고기들. 그곳엔 정말 니모와 그 친구들이 살고 있었다. 그야말로 하늘 빛, 바다 빛을 보고 사는 녀석들이라 그런지 그들의 색도 자연의 색이었다. 꽃잎 색, 풀빛 색, 무지개 색과 같은 자연의 색 그대로였다.
녀석들은 생기가 있었다. 자신의 공간에 들어간 낯선 침입자를 경계하면서도 전혀 두려워하지 않았다. 보드라운 지느러미를 흔들며 내 코앞을 스쳐 달아나기도 했다. 손을 뻗으면 잡을 수 있을 것처럼 나를 약 올리며 돌아다니고 있었다. 내 손가락들 사이사이로 물과 함께 빠져나가는 녀석들을 보면서 행복했던 것 같다. 어떻게 알았느냐고? 그렇게 신나게 웃어본 적이 없으니까. 수중 마스크가 있어서 입을 벌리지도 못하면서 진심으로 '하하' 웃었다. 즐거워서, 행복해서. 그들이 가진 생기 있는 에너지가 내게도 전해졌다. 한 번도 구속받지 않고 드넓은 바다를 집을 삼아 뛰노는 그 자유로운 녀석들이 가진 맑은 에너지가 나까지 행복하게 했다.
어항 속의 물고기들과, 바다 안의 물고기들은 서로 다른 생각들을 하고 있을까? 어항 안의 물고기들은 자신들이 어딘가에 갇혀 양어되고 있다는 점을 알고 있을까, 바다 속의 그것들은 자신들이 얼마나 아름답고 싱그러운 곳에서 살고 있는지 알고 있을까.
바다 속의 물고기들은 자신들이 누리는 게 자유라는 걸 알고 있을까, 어항 속 물고기들도 갇혀있다는 걸 모르고 그저 딱 그만큼 주어진 그대로의 자유를 나름대로 누리고 있는 게 아닐까.
나는, 어떤가! 내가 누리는 자유는, 어떤 종류일까. 인식하지 못할 만큼 충분히 자유로운 자유일까, 갇혀있으나 알지 못하고 딱 그만큼만 누리고 있는 걸까. 물고기들이야 어떤 자유를 갖고 있든 빼앗겼든 선택권이 없지만, 나는? 난 충분히 어떤 자유를 누릴 것인지, 날 스스로 가둘 것인지 선택할 수 있다.
나는 지금 제대로 된 선택을 하고 있는 것일까. 발길을 돌리면서도 눈길은 그대로 거둘 수가 없어, 동그란 어항을 다시 한 번 바라보았다. 자그맣고 동그란 어항 속에 갇혀서 그 안의 세상만이 내 삶이라고 여기고 돌아다니는 주황색 금붕어가 어딘지 모르게 날 닮은 듯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