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모두 사장님이 되었다
8월, 고작 두 달 언저리쯤. 어느 날 내게 번아웃이 왔다.
마흔이 지나니 시간은 어찌나 손쓸 새 없이 빨리 흐르는지..
정신없던 썸머 브레이크가 끝나고, 아이가 새 학년에 올라갔다. 그런데 갑자기 엄청난 우울감이 밀려왔다.
‘왜 나는 이룬 것이 없을까.’
뭔가 희미하게 아른거리던 무언가가 자꾸 아쉽게 눈앞을 알짱거렸다. 시원하게 내다보고 싶은데, 활기차게 앞으로 돌진하고 싶은데, 무언가 내 발을 붙잡고 머뭇거리게 만들었다.
일주일쯤 지났을까. 더 이상 이런 감정에 잠식되고 싶지 않았다.
핸드폰을 켜고 릴스를 만들었다. 어찌 보면 나를 향한 정신 차리라는 경고이자, 하고 싶은 게 있으면 그냥 시도하라는 격려였다.
내가 나에게 하고 싶었던 진실된 말을 써내려갔다. 그러자 갑자기 용기가 생겼다.
‘그냥 해보자.’
그 마음이 들었다.
힘들어하던 내게 남편이 지난번 아이랑 Future CEO 플리마켓에서 판매하고 남은 물건들을 팔아보면 어떻겠냐고 제안했다.
사실 그날의 경험은 우리 가족에게 큰 인사이트를 주었다.
돈을 벌었다는 것보다, 내 안의 두려움을 이겨내고 새로운 도전을 해냈다는 자신감과 성취감이 훨씬 큰 만족감을 주었다.
그때 깨달았다. 지금 내게 필요한 건 바로 그것은, 성취감과 자신감의 회복이었다.
한참을 또 고민했다.
아이와 도서관을 다니며 기록하는 ‘LibraryLovingMom’ 인스타그램에서 무언가를 판매하고 싶지는 않았다.
그래서 플리마켓에서 아이가 만든 브랜드 이름인 Fluffy Market이라는 이름으로 @fluffly_market_us 인스타그램 계정을 새로 열었다.
우선은 남은 물건을 올렸다. 그리고 이 계정을 만든 목적과 규율을 정리해 공유했다.
이건 ‘판매와 수익의 목적’이 아닌, 아이와 함께하는 경제교육 실전 프로젝트임을 알렸다.
수익 상한선
한 달 총 수익은 100불을 넘지 않도록 조절한다.
지나친 수익을 목표로 하지 않고, 배움과 경험에 집중하기 위함이다.
목적의 우선순위
수익화가 목적이 아니라 교육이 목적임을 항상 기억한다.
돈을 버는 과정보다, 올바른 돈 관리와 가치관을 배우는 것이 더 중요하다.
나이에 맞는 경험
나이에 걸맞은 규모와 방식으로만 돈을 번다.
어린 나이에 과도한 부담을 지우지 않고, 작은 성공 경험을 통해 성취감을 느끼도록 한다.
분배의 원칙
벌어들인 수익은 기부, 소비, 저축으로 나누어 기록하고 실천한다.
단순히 돈을 모으는 것이 아니라, 나눔과 사용, 저축의 균형을 배운다.
원가와 투자 이해
원가는 실제보다 단순화해 기록하고, 부족한 부분은 부모가 투자자 역할로 보조한다.
아이는 경영자처럼 수익 구조를 경험하고, 부모는 안정적인 학습 환경을 제공한다.
이 규칙은 아이가 돈을 통해 단순히 ‘버는 법’을 배우는 것이 아니라,
노동의 가치, 나눔의 의미, 건전한 경제 습관을 배우도록 하는 데 목적이 있다.
첫 게시물에 이 카드뉴스를 고정해두었다.
그리고 제품들을 올리자 많은 분들이 구매를 하기 시작했다.
아이는 직접 포장을 하고, 고객을 만나 응대했다.
그렇게 판매한 수익금을 나는 매일 장부에 기록했고,
월말에는 아이와 함께 프린트해 장부를 작성했다.
장부는 두 파트로 나눴다.
첫 번째는 판매 내역(날짜, 구매자 이름, 구매 목록, 수익금, 결제 방식),
두 번째는 정산 내역(원가 및 분배)이었다.
정산 내역에는 총 수익, 원가 20%, 남은 금액, 인건비(내 몫), 손이익이 포함되었다.
그리고 손이익에서 **기부 20%, 소비 40%, 저축 40%**로 나눴다.
원가를 20%로 설정한 이유는, 나와 남편이 아이에게 ‘투자자’처럼 부담을 나눴기 때문이다.
아이에게 자본의 부담 없이 안정적으로 배울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주고 싶었다.
그렇게 8월, 꼬마 사장님은 총 수익 81불, 손이익 52불을 벌었다.
나름 비즈니스 시작 첫 달 수익치고는 낫 배드(NOT BAD)
그런데 다음 달이 문제였다.
앞으로 어떤 제품을 팔 것인가가 새로운 고민거리였다.
이렇게 소소한 팬시 용품을 계속 팔기보다는,
아이가 직접 참여해 만들고 판매할 수 있는 아이템을 찾기 시작했다.
그러다 우연히 알파벳 닉네임 키링을 발견했다.
아이에게 딱 맞는 아이템이었다.
직접 만들 수도 있고, 미국에서는 자신의 이름이 새겨진 제품을 좋아하니
큼직하고 알록달록한 알파벳 키링을 싫어할 리가 없었다.
그날 밤부터 나는 인터넷 사이트를 뒤져가며 제품에 대해 시장조사를 하고, 물건을 구입했다.
그런데 그렇게 시장조사를 하고 공장에 소싱하며 일을 진행하다 보니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나도 해야겠다. 내 사업. 왜 못하지?’
그리고 스스로에게 물었다.
‘나는 아이에게 경제 공부를 시키면서, 과연 제대로 알고 있나?
비즈니스에 대해 얼마나 경험하고 배웠을까?’
그러면서 또 하나의 욕망이 생겼다.
아이에게 가장 신뢰할 만하고 가까운 롤모델이 되고 싶다는 마음.
그래서 어떻게 됐을까?
나도 지금, 왕초보 사장이 되었다.
불과 이 모든 게 두 달 만에 이뤄진 일이다.
(다음 편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