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들은 아빠가 돌아가신 이후로 친가에서도, 외가에서도 '짐'이었다.
미안하지만, 아니 미안하지않아.
아직도 난 기억해.
설날, 다들 아이들에게 세배해보라고 하면서 어린 우리들에겐 세배해보라고 권하지도 않던 그 어른들을.
그저 구석에서 하하호호 웃던 그들을 텔레비전같이 우린 바라보기만 할 뿐이였지.
여기서 엄마가 있는데 도대체 왜 그랬냐? 할 수 있겠는데,
남편도 없던 엄마도 그 집에서 찬밥덩이 신세 였기에 뭐 말할 필요 없겠다.
그러니까 우리도 찬밥신세였겠지.
친가의 우릴 짐덩어리 보듯 하는 눈칫밥은 그동안 계속 써왔으니 더 쓰고 싶지도 않다.
그렇게 상처받고 폭력받은 어린 우리들은 그 어디에도 하소연할 곳이 없었다.
그리고.
이제, 어른이 된지 십몇년만에
친가와는 완전히 끊어졌다.
가늘게 이어오던 폭력적인 말이 오가던 그 연락의 실마저 동생은 버티기 힘들었나보다.
친가에게 "마지막연락"이라 말을 고했다.
아. 얼마나 달콤한 이별의 말인가.
폭력적인 관계를 끊는 아름다운 말이었다.
슬프고 아픈 감정보다는
나는 외려 홀가분하고 시원했다!!!!
조카들을 괴롭힌 업보.
핏줄을 괴롭힌 업보!
그게 이렇게 돌아가는구나 라고 느꼈다.
그런일이 또 하나 더 있다.
내가 퇴사한 이유는 온갖 폭언과 갑질을 해대는 대표 때문에 퇴사를 했는데,
얼마전 또 동료 하나가 연락이 왔다. 자기도 퇴사했다고 ㅎ
심지어 그 동료는 거기 기둥이었다. 하하
고작 인생의 삼분의 일을 살면서 업보가 있다고 느끼게 되었다 ㅎ
아, 그리고 단기 알바를 하게 되면서 전에 일하던 동료를 만나기도 하고,,,
인생,, 잘 살아야 한다.
업보... 존재한다. 분명 존재한다.
그래서 스스로에게 위로를 해본다.
내가 갚지 않아도 다 알아서 파멸의 길을 걷고 있을거라고.
그게 큰일이든, 작은일이든 말이다.
특히, 내 작품의 외형과 내형을 따라한 모 작가도 언젠가 파멸의 길을 걷게 되길 간절히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