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기준을 넘어선 결정을 받아들이는 힘
우리는 살아가면서 수없이 많은 결정을 맞닥뜨린다. 그 결정이 내 의도와 딱 맞아떨어질 때는 별 문제가 없다. 문제는 내가 바라던 것과 다른 방향으로 결정이 내려질 때다. 많은 사람들은 이 순간 "이해가 안 되는데요?", "도대체 왜 그런 결정이 내려진 거죠?", "납득이 되어야 받아들일 수 있어요."라고 말한다.
하지만 나는 일하면서 점점 깨닫게 되었다. 세상의 많은 결정은 나를 납득시키기 위해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모든 결정이 해명되지도 않고, 설명되지도 않으며, 기다려주지도 않는다. 때로는 그냥 받아들여야 한다. 납득이 아니라 수용이 필요한 순간이 있다.
신입사원 시절, 나는 1 지망을 신규사업부, 2 지망을 마케팅팀으로 써냈다. 그 방향이 나의 적성과 관심사라고 믿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신입사원 연수가 끝나고 나는 전혀 예상하지 못한 전략기획실에 배정됐다. 누구도 이유를 알려주지 않았고, 지금도 그 배치가 어떤 기준에서 나온 결정인지 알지 못한다. 내 기준에서는 설명되지 않는 결정이었다. 그때 선택할 수 있는 길은 두 가지였다. 납득할 때까지 문제 제기를 하거나, 이유를 몰라도 수용하는 것. 나는 후자를 택했다. "한 번 해보자, 받아들이는 것도 배움의 일부일 수 있다." 그렇게 전략기획실에서 보낸 시간은 훗날 나의 커리어 전체를 지탱하는 힘이 되었다. 구조적 사고, 분석력, 문서력 등 지금까지도 활용되는 기반 능력들은 바로 그 수용에서 시작되었다.
또 다른 경험도 있다. 수년간 함께 일하며 좋은 성과를 냈던 고객사가 있었다. 서로 신뢰가 있었고, 오랫동안 안정적으로 일을 이어갈 수 있을 거라 자연스럽게 생각했다. 그런데 어느 날 고객사의 임원이 바뀌면서 마케팅 정책이 통째로 달라졌고, 하루아침에 계약이 종료되었다. 그때 나는 항의하거나 억울함을 드러내지 않았다. 기업의 환경이 바뀌면 정책이 바뀌는 것이고, 비즈니스 관계는 언제든 종료될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저 "그동안 감사했습니다."라고 인사하고 다음을 준비했다. 그런데 그 담당자는 이후 다른 회사로 이직했고, 나는 그 회사와도 다시 일하게 되었다. 이해되지 않는 상황을 억지로 해석하려 하지 않고 담담히 수용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이 두 가지 경험은 내게 중요한 사실을 알려주었다. 삶의 많은 결정들은 설명되지 않으며, 해명되지 않으며, 나의 이해 범위를 넘어선다. 그런데도 그 결정들이 결국 좋은 방향으로 이어지는 경우가 훨씬 많다는 것이다. 이해보다 수용이 내 삶을 더 멀리 이끌었다.
우리는 종종 '내가 이해해야 받아들일 수 있다'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현실은 반대로 움직인다. 우리가 겪는 수많은 결정들은 내가 이해할 수 있는 이유들로만 이루어지지 않는다. 이해는 내 관점 안으로 들어온 것만 가능하지만, 수용은 내 관점 밖의 세계를 인정하는 힘이다. 성숙은 대부분 이 두 번째 선택에서 갈린다.
우리가 납득되지 않는 결정을 만났을 때 드러나는 것은 상대가 아니라 바로 우리의 내면이다. 조직의 리더는 개인이 보지 못하는 더 큰 그림을 본다. 여러 사람의 조합, 지속성, 분위기, 조직의 흐름, 장기적 안정까지 고려해 판단한다. 개인이 볼 수 있는 건 언제나 부분에 지나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 기준에 맞아야 받아들이겠다고 하면 삶은 억울함과 불만족으로 채워진다. 성장은 대부분 내가 이해한 것이 아니라, 내가 수용한 것에서 이루어진다.
성숙한 사람의 특징은 단 하나다. 이해되지 않아도 수용할 줄 아는 마음의 힘. 수용은 패배도 아니고, 수동적 복종도 아니다. 수용은 "나보다 더 넓은 맥락이 있을 수 있다"는 관점의 확장이다. 그리고 이 확장이 더 큰 기회를 열고, 더 깊은 성찰을 가능하게 한다.
반대로 '납득 불가 = 관계 종료'로 반응하는 사람들은 장기적으로 동일한 패턴을 반복한다. 직장에서 승진 이유가 마음에 안 들 때, 프로젝트에서 역할이 기대와 다를 때, 누군가의 피드백이 자존심을 건드릴 때, 결정의 전체 맥락을 보지 못할 때마다 관계를 끊고 떠난다. 이는 타인의 문제가 아니라 자기 내부의 납득 중심 사고 때문이다.
결국 우리는 이 질문 앞에 선다.
"내가 이해할 때만 받아들일 것인가,
아니면 이해되지 않아도 수용을 배우며 성장할 것인가."
결정을 이해하지 못해도, 그 결정을 존중하는 태도는 가능하다.
그리고 그 태도가 사람의 그릇을 결정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