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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장, 성실.. 다 좋지만
그 중심을 잡는 건 성숙이다

'성장, 성실'이 절대 선은 아니다

나는 어린 시절부터 성취욕이 높은 편이다 보니 성장, 성실이라는 가치를 절대 선처럼 여기며 어리석게 행동했던 경험이 많다. 초등학생 때는 '학생의 본분은 공부'라는 말에 꽂혀 공부를 열심히 하면서 신경이 예민해져 부모님께 짜증을 낸다든지 등 무례하게 행동하기도 했다. 나의 성실함이 최우선 가치가 되어 부모님을 존중하지 못한 것이다. 고등학생 때는 잠을 줄여가며 쉬는 시간도 거의 없다시피 하며 성실하게 공부했지만 그에 걸맞은 결과가 따라주지 않았을 때 노력에 대한 배신감을 느낀 적이 있다. 하지만 하나님을 믿는 사람으로서, 내 힘으로 결과를 낼 수 있다고 착각했던 교만을 반성하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약 15년 전 전략기획실에 근무할 당시 한국대학생인재협회에서 대학생들을 이끌 때, 그들의 실력적으로 성장시키면 이들이 조직에 대한 확신을 가질 거라 생각했다. 기획, 스피치, 회의 등 다방면에서 가르치고 프로젝트 피드백을 해주며 취업 준비도 도와줬다. 하지만 대기업, 외국계 기업에 취업하는 등 눈에 띄는 성장과 성과가 있었어도 그들은 조직에 남아 헌신하려는 의지를 보이지 않았다. 대부분 조직이 제공하는 혜택만 누리려 했을 뿐, 비전에 동참하려는 사람은 찾아보기 어려웠다. 리더십 서적에서는 구성원이 성장하면 조직에 확신을 가진다고 하지만, 내 경험에서는 이들이 성장을 이룬다 해도 조직에 대한 로열티로 이어지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았다. 성장은 '일부'일뿐, 절대 '전부'가 아닌 것이다.


이 사진은 dlnny 님의 작품입니다. Freeimages.com에서 가져왔습니다. 


성장과 성실은 분명히 좋은 가치지만, 무조건적인 선으로 여길 때 많은 문제를 일으킨다. 개인의 멘털에도, 인간관계에도 문제가 생긴다. 성장부터 생각해 보자. 성장을 지나치게 지향하면, 매 순간 성장해야 한다며 스스로 압박을 가하며 산다. 이들은 성장이 정체되는 시기를 굉장히 불안해하고 조급해한다. '계단식으로 성장한다, 성장에는 정체기가 있다'는 것을 머리로는 알지만 실제로는 매우 인내하기 힘들어한다. 또한 타인에게도 ‘성장’의 기준을 적용해 문제가 발생한다. 성장 환경, 기질이나 성향, 정신적 어려움으로 지금 당장 성장보다 '생존'이 우선인 사람들이 있는데, 이들을 이해하지 못하며 오만하게 평가할 수도 있다.


성실 또한 마찬가지다. '성실'을 최우선 가치로 삼다 보면 마음 편히 쉴 틈 없이 강박적으로 생활하고, 노력한 만큼의 성과가 없을 때 쉽게 번아웃에 빠지기도 한다. 질병, 사고, 가족 문제 등으로 이전보다 상황이 악화될 때 회복력이 떨어진다. 또한 성실함의 기준을 타인에게 강요해 갈등이 생기기도 한다. 그 타인이 가까운 사람일 때 그들을 성실하게 살게 돕겠다며 통제하려 하기도 한다. 


결론이다. 성장, 성실 모두 좋은 가치지만 내면에 올바른 중심이 없으면 삶을 오히려 불행하게 만든다. 이 가치들을 오롯이 삶을 행복하게 살아가게 하는 재료로 만들 수 있는 힘은 내면의 성숙함이다.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나와 타인을 동일하게 존중하는 마음, 긍정적인 세계관, 성장과 휴식의 밸런스, 완벽함보다 꾸준함을 추구하는 것, 타인의 삶에 깊게 관여하고 통제하려 하지 않고 적정한 거리를 지킬 줄 아는 마음 등이 있어야 한다. 그럴 때 우리는 성장하면서도 행복하고, 성실하면서도 행복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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