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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라라라 Jun 05. 2023

화가 많은 아이들에게 할 수 있는 것

  화가 많은 아이들은 전 세계의 과제다. 이것은 아이들의 잘못이 아니라 어른들의 잘못이다. 마사 누스바움의 ‘타인에 대한 연민’에 따르면 분노의 시대, 두려움의 시대, 혐오와 양극화의 시대, 증오범죄의 시대에서 우리는 연대와 포용으로 세상을 만들어가야 한다고 한다. 세상을 바꾸는 건 너무나도 거대한 일이다. 한 때는 나도 당장 거리에 나가 세상을 바꿔야 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지금은 내가 할 수 있는 것의 기준을 낮췄다. 아이들과 보호자들에게 일 년간 만이라도 포용을 느낄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교실에서 혐오 표현 쓰지 않기, 성별 구별 하지 않기, 경쟁 구도 만들지 않기, 평화의 말 쓰기, 또래 중재 해보기, 무리를 넘나들게 유도하기, 권력을 가진 아이들의 힘을 최대한 분산시키기 등등.


  화가 많은 아이들의 가정에 집중해 보자. 보통 문제가 있는 가정이 많다. 아이를 방치하거나, 너무 아기처럼 대해서 원하는 것을 다 들어주는 집이거나. 일관성이 없는 훈육에 아이들이 어른에게 신뢰가 없거나, 돈으로만 애정을 베풀거나. 아이의 이야기를 눈을 맞추며 온전히 들어준 적이 별로 없는 집. 부모가 바쁜 것과는 상관이 없다. 아이는 외롭고, 소리를 지르거나 친구들을 때린다. 불안감이 높고 사람들의 말을 잘 믿지 못한다.


  교사가 할 수 있는 건 끊임없이 아이에게 안전함을 느끼게 해주는 것. 그러려면 경계를 계속 알려주고 눈을 맞추고 일관되게 혼을 내며, 내가 잘못했을 때에는 바로 사과를 하는 것. 그렇게 일 년간 하다 보면 아이의 마음에 작은 사랑의 씨앗이 심어질 거라고 믿는다. 그 씨앗은 언젠가 수십 년 후에라도 싹이 틀 수 있는 거니까. 희망을 갖자.


  나도 아직도 생각나는 몇몇의 아이들이 있다. 온몸과 온마음에 매일 진이 빠지던 나날들이었다. 내 노력들이 받아들여지지 않는 것 같아서 무력감이 들었었다. 나를 만난 다음에 그들의 삶이 좀 나아질까 걱정하고 의문했다. 그들을 지금 당장 변화시키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았다. 하지만 경력이 쌓일수록 아이들이 시간이 지나면 자연스럽게 나아지는 것이 많다는 것을 알았다. 가정이 나아지기도 하고 나이가 들면서 정신과 행동이 성숙해지기도 하고. 좋은 경험들이 쌓여서 내면의 힘이 생기기도 하고. 그래서 '지금 당장'의 조급함을 버리기로 했다. 그러자 거리를 둘 수 있게 되고 여유가 생겼다. 너는 너의 인생을 살고 나는 나의 인생을 살고. 거리감은 내 정신 건강을 지탱해주기도 하고, 우리의 관계를 지탱해주기도 한다. 


  화가 많고 외롭고 가여운 아이들, 그 곁에는 화가 많고 외롭고 가여운 어른들도 있다. 건강한 정신을 가지고 혼자 살아남기에는 힘든 세상이다. 어른들도 각자도생 하고 있다. 그래도 우리는 어른이니까 아이들보다는 더 책임감을 가지고 자기를 다스려야 한다. 그런 힘이 남아있지 않다면 옆에서 다 같이 좀 만들어주면 좋겠다. 내 주변에서부터 혐오를 하나씩 없애고 따뜻한 해님의 기운을 뿌리자. 그래서 화로 매번 인상을 찌푸리는 그들에게 미소 근육을 조금씩 선물하고 싶다. 처음에는 낯설어서 수줍은 미소가 되겠지만 웃다 보면 해맑게 웃을 수 있는 편안한 미소 근육이 생기겠지. 그런 편안한 시간들이 전 세계 아이들과 어른들에게 모두 찾아오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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