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봤자 죽기 밖에 더 하겠어?"

죽는 것보다 두려울 게 없다는, 그 효과

by 레이지썬데이

설거지를 하면서 오만가지 생각이 들었다. DMN가 활성화된 걸까. 생각을 따라가다가, 갑자기 이런 생각이 들었다.

*Default Mode Network : 사람이 멍하게 있거나, 휴식, 백일몽, 과거 회상, 미래 계획 등 외부 자극에 집중하지 않을 때 활성화되는 뇌의 특정 영역 네트워크. 자아 성찰과 창의적 아이디어 생성에 기여하지만 과도하면 우울증이나 잡념을 유발할 수 있음


"그래, 뭐 그래봤자 죽기밖에 더해? 죽으면 끝인데 이 걱정을 죽기 전에 해서 뭐 하누."


웃음이 났다. 영화 중간에 갑자기 엔딩 크레딧를 올려버리는 이 생각은 뭐람. 근데 그냥 상황을 무마하거나 넘겨버리려는 말이 아니라, 정말로 그런 생각까지 도달해서 나온 말이었다.




10대, 20대 때 철없고 겁 없던 시절 내가 자주 하던 말이었다. 그때의 나와 마주했다.

친구들의 걱정이나 고민을 들어주는 편에 속했던 나는, 상황 정리를 해주거나 대담하게 결론을 내주는 역할을 잘했다. 너무 걱정이 커서 친구를 집어삼킬 것 같이 우울해하면, "야, 너 곧 죽냐? 왜 그렇게 심각해! 괜찮아, 괜찮아. 안 죽어."라고 말해주기도 했다. 반대로 친구들이 나의 무모함(?)을 걱정하고 막아설 때면 "이거 한다고 죽냐? 이거 안 해도 어차피 언젠가 모종의 이유로 죽게 돼있어. 뭐가 어때서?"라는 말로 그들의 걱정을 무력화했다. 그때의 내가 지금의 나에게 말하는 것 같았다. 내가 친구에게 해주듯이. 얼레벌레 대충 생각하는 것 같아도 그 고민의 무게와 깊이가 깊어진 나에게 나 스스로를 건져내려고 무의식이 그때의 나를 슬쩍 소환한 듯했다. 의외로 쓸모 있고 효과 좋은 방법이었다. 그러다가 '죽음'이라는 단어에 대한 의식으로 옮겨가면서 설거지가 마무리 됐다.




한 동안 죽음이 두려웠던 적이 있다. 지금 진행 중인 프로젝트가 망하면 곧 죽어버릴 것 같았고,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이 나를 하나 둘 떠나면 나에게도 곧 죽음이 몰려올 것 같았다. 걱정이 생길 때마다 티슈 한 장 두께의 두려움이 쌓였고, 그 티슈는 몇 곽을 다 채울 정도로 내 키만 한 두려움의 벽을 만들었다. 그때부터는 진짜로 '죽음'에 대한 두려움이 생겨서 건강 염려증, 우울증, 공황장애, 불안이 몰려왔다. 공황장애가 터질 때는 진짜로 죽음과 가까운 온몸의 감각이 나를 덮쳤고, 여러 번 반복될 때마다 이렇게 힘들 거면 죽는 게 낫겠다 싶을 정도로 에너지가 소진됐다. '공황, 우울, 발작, 죽음, 두려움, 불안'이라는 단어를 마주할 때마다 심장이 미친 듯이 뛰고 내가 그 단어가 되어버리는 일이 잦았다.


그러다가 그 고통을 삶에 대한 감각으로 치환하고, 살려고 기를 쓰는 내 자신을 발견하고는 할 수 있는 것들부터 하나씩 천천히 한 꺼풀씩 벗겨내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런 메세지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까꿍, 너 그렇게 쉽게 안 죽는다고 했지? 죽는시늉 그만하고, 잘 살려다 보니 아픈 거니까 일단 숨이나 잘 붙이고 있어. 생각해 봐. 요즘 세상에 잘 산다는 게 얼마나 힘든지 너도 알잖아. 그래도 살아있다는 거, 그게 중요하지. 안 죽어. 걱정 마."


그리고 이제서야, 마침내, '죽기밖에 더하겠어?'라는 농담을 할 수 있게 된 나를 보게 된다. 답답했던 공기에 숨이 막혀 상상으로 질식사 할 뻔 하던 내가 이제 창문을 열고 환기를 할 수 있게 된 것이다.


나 그 티슈들 하나씩 잘 치워냈구나. '잘했다, 그리고 애썼다.'라고 스스로 다독여 주고 싶다.




삶도 죽음도 결국은 하나이다. '살려면 죽을것이고, 죽으려면 살것이다'라는 말이 전투 상황에서만 필요한 것은 아니었다. 모순되게 우리는 죽음을 통해 삶을 체감하는 본능이 있다. 생의 감각이, 언제나 우리에게 말한다. 누구나 죽음을 맞이하지만, 지금은 그 때가 아니니 너 자신대로 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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