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몸이 녹아내릴 것처럼 무더웠던 날 아이스커피를 벌컥벌컥 들이켜고 싶어져 동네 카페를 찾았다. 들어서자마자 ‘아이스 아메리카노 한잔이요.’ 주문을 하는데 그때 옆에 계시던 단골로 추정되는 어르신께서 ‘어머 여기 천 원만 더 내면 사이즈업이 돼요’라고 좋은 권유를 해주셨다. 주문 데스크에도 사이즈업에 관한 정보는 큼지막하게 붙어있었지만 아메리카노를 잘 마시지도 않거니와 주로 커피는 사이즈업을 하지도 않기에 그냥 무시했었다. 그런데 누군가가 바로 옆에서 하는 제안에는 단호한 거절이 어려웠다.
우물쭈물하다 괜찮다고 말할 타이밍을 놓치고 ‘아 그래요?’ 하며 머뭇거렸다. 대체로 나의 거절은 단호함보다는 이런 식으로 헤헤 거리며 어물쩍 넘기는 스타일의 거절이다. 우물쭈물하는 내 모습이 진지한 고민으로 읽혔는지 직원분께서는 사이즈업과 기본 컵의 사이즈를 비교하면서 이 정도 차이가 난다고 눈으로 보기 쉽게 설명해주었다.
그리고는 '어떤 걸로 드릴까요' 묻는데 역시나 곧바로 ‘그냥 원래 사이즈로 주세요’라고 치고 나가질 못했고 직원분은 ‘사이즈업 해드릴까요?’하고 물었다. 결국 ’아, 네...’라고 말하며 한 사이즈 큰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받게 되었다.
길을 건너면서 커피를 한 번 들춰보는데 아무리 봐도 이건 사이즈가 좀 크네, 다 마시긴 힘들겠다고 생각했다. 예상대로 커피는 남았다. 남겨진 커피를 바라보면서 가만히 생각했다. 나는 혹시 바보인가? 이전에도 비슷한 경험은 숱하게 많았기 때문에 좋고 싫음을 명확히 표현하기가 일종의 다짐이었다. 그 다짐을 지키기 위해 노력했는데도 늘 이렇게 실패를 하는 것은 어쩌란 말인가. 당황하면 본모습이 나온다더니 불시에 들이닥친 상황에서는 얼떨결에 이런 식으로 휩쓸리고 만다.
마음으로는 나도 다 알고 있다. 사이즈업 커피를 제안한 손님께서는 내가 괜찮다며 거절을 했어도 전혀 개의치 않았을 것이다. 심지어 꼭 사이즈업 커피를 사라고 강요하신 것도 아니다. 좋은 마음으로 제안했을 텐데 단호하게 거절해서 상대가 무안하면 어떡하나, 괜히 혼자서 그런 생각을 했던 것 같다.
커피 한잔 사면서 고작 천 원을 더 쓴 것이 문제가 아니다. 나는 대체 무슨 연유로 나의 의사를 확실하게 표현하지 못하는 것인지 좌절감이 몰려왔다. 나도 안다. 세상에 이런 사람이 있다는 것을 전혀 믿지 못할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런 사람이 바로 여기에 있다. 100% 실화다.
좋은 것을 좋다고 말하고 싫은 것은 싫다고 말하는 데에도 온 힘을 다해야 하는 사람이 있다. 내가 바로 그런 인간이다. 솔직해지는 데에도 큰 용기가 필요하다고 했는데 아무래도 용기가 부족한 모양이다. 목표를 이루려면 어제 실패했더라도 다시 오늘부터 시작하라고 했다. 어제의 실패에 영향 받지 않고 오늘부터라도 싫은 것은 싫다고 확실히 말해야겠다!! 이런 나의 성향? 아주 몹시도 싫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