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리'적 글쓰기와 '텃밭'적 글쓰기

[연구원들의 연구] 백희원 연구원

by 듣는연구소
듣는연구소는 연구를 의뢰받기도 하지만, 연구원들이 각자의 주제를 가지고 연구/작업을 이어가고 있기도 합니다. 듣는연구소가 함께하는 주요 업무 중에는 서로의 연구/작업에 관심을 갖고 응원하는 시간도 있지요. [연구원들의 연구]에서는 듣는연구소의 상근연구원과 비상근연구원이 어떻게 2026년을 열고 있는지, 요즘 어떤 작업을 하고 있고 어떤 기쁨과 슬픔을 맞이하고 있는지 담아봅니다.


백희원 연구원



이번 설 연휴에 본가에 갔더니 엄마가 오래된 서류봉투 한 뭉치를 내밀었습니다. 초등학생 시절 원고지에 썼던 방학숙제며 글쓰기 숙제들이 담겨 있었어요. 새삼스럽게 어릴 때부터 글쓰기를 좋아했구나 싶더라고요. 아무도 시키지 않았는데 방학숙제로 기행문 1만자를 써내던 이 어린이는 다행히(?)도 커서 글을 많이 써야 하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연구소에서 일하고 있으니 당연한 일이지요. 기획안이나 제안서, 이메일 같은 것도 글쓰기의 범주에 들어가는 건 말할 것도 없고, 연구보고서를 쓰니까요.


IMG_1904.JPG 엄마가 건네 준 뭉터기에 있었던 미지의 원고. 맨 앞 장을 빼고 유실되었다.


연구보고서 글쓰기는 요리에 비유할 수 있는 작업 같아요. 잘 준비된 재료들을 가공해서 하나의 완성된 글로 만들어내는 일이거든요. 요리와 마찬가지로 결과물이 좋으려면 재료(조사과정에서 수집된 자료들)의 퀄리티가 좋아야하고, 바로 작업에 들어가는 게 아니라 사전에 재료들을 잘 손질해두는 과정이 중요하며, 그렇게해서 나온 결과물은 누군가를 위한 것이 됩니다. 먹을 사람이 없다면 요리가 시작되지 않듯이, 연구보고서도 (연구자 자신을 포함하여) 누군가가 필요로 하기에 시작되고 쓰이게 되지요.


그래서 듣는연구소에서는 시작하기 전부터 끝날 때까지 항상 이 질문들을 클라이언트와 반복해서 검토하고는 해요. “연구를 통해 알아내고 싶은 것이 무엇인가요?” “연구를 하고 나면 무엇이 변화하나요?” “누가 이 연구의 독자이고, 또 이해관계자인가요?” 그에 대한 답이 명확해야 무엇을 조사해서 어떤 재료들을 모을지 결정할 수 있고, 목적에 맞는 재료들을 잘 모으는 게 결국 좋은 글쓰기로 이어지니까요. 재료가 엉성하면 글쓰기도 어딘가 비어있거나 논리적으로 비약하기도 하고, 앎의 맥락을 만들어내지 못한 채 잠정적인 유추로만 끝나버리고는 합니다. 하지만 연구 보고서는 연구의 한계가 정직하게 드러나야 지식으로서 가치를 갖기 때문에 모자람을 솔직히 드러내는 채로 잘 완성되는 것도 중요한 것 같아요. 원재료와 영양성분이 성실히 기재되어있고 그 나름 먹을만한 믿을만한 레토르트 음식이나, 뭔가 요리라기보다는 익힌 재료 모음에 가깝지만 그래도 맛있고 영양가 있는 음식처럼요. (적다보니 듣는연구소의 연구는 유기농 제철 연구를 지향하는 것 같긴 합니다.)


그렇다면 요즘 제가 쓰고 있는 에세이 책의 원고는 무엇에 비유할 수 있을까요? 연구보고서와는 정말이지 전혀 달라요. 이 책은 ‘무엇이든 좋으니 글을 많이 써보라’는 편집자의 제안에서 시작되었습니다. 무엇이든 좋다는 말 앞에서 저는 오랫동안 아무것도 쓸 수 없었어요. 윗 문단의 연구 글쓰기와 비교해보니 그 이유가 명확하네요. 필요의 자리가 비어있는 상태에서 시작하는 글쓰기여야 했기 때문입니다. 결국 그 자리를 채우려면 저 자신의 필요를 발명해야 했습니다. 스스로를 먹이고 기르기 위한 글쓰기란 무엇일까? 질문을 도구삼아 듣고, 해석하던 역할에서 벗어나 자문자답해야 하는 위치에 서니 막막해졌습니다. “나는 무엇을 이야기하고 싶지?”, “내게는 어떤 글이 필요하지?” 와, 정말 전혀 모르겠더라고요. 게다가 희한하게도 자신을 위한 공적 글쓰기는 꽤 용기가 필요한 일이었어요. 나를 위한 출판이라는 건 이기적이고 자원 낭비적인 일처럼 느껴진달까요? 그 압박이 너무 심했던지라 결국 저는 제대로 된 답을 조금도 내리지 못한 채로… 그러니까 어떤 재료가 필요한지, 어떤 레시피로 조리해야 할 지 전혀 모르고 일단 아무거나 쓰기 시작했습니다. 손이 하는 일을 머리가 나중에 이해해주겠거니 기대하면서요. 정확히 말하자면, 무슨 재료가 나올지도 모르는 채로 미지의 씨앗을 심고 다짜고짜 열심히 길러내는 일 같네요. 그렇군요. 이 글을 쓰면서 깨달았습니다. 이 작업은 요리가 아니라 텃밭 가꾸기라는 것을. 심지어 저는 텃밭을 가꾸는 사람도 아니에요. 텃밭에 뿌려진 씨앗에 가깝죠.


IMG_6946.JPG


요리사의 입장에서 벗어나 씨앗의 일을 해보자고 생각하니, 중요한 건 레시피도 무엇도 아니고, 성실하게 햇볕을 쬐고, 뿌리를 내리고, 단 몇 마디, 몇 줄이라도 자라나는 것이겠습니다. 무엇이 될지 두려워하기 보다는 궁금해 하는 마음으로 과정을 즐기는 수 밖에 없겠어요. 참고로 이 글은 즐겁게 썼습니다. 일단 동료의 요청으로 시작된 글이었고, 소재가 명확하며, 보고서보다는 자유롭게, 책 원고보다는 가볍게 써도 괜찮은 글이니까요. 무엇보다도 이 글을 쓰면서 저에게 연구에 대한 ‘언어’가 있다는 걸 새삼 실감했어요. (조금 생소한 표현일지도 모르겠지만, 듣는연구소에서 일하다보면 ‘언어’가 있다거나, 없다거나, 부족하다는 표현을 자주 씁니다. 분명히 누군가가 경험하고 존재하는 어떤 문제나 현상, 또는 당사자 집단이 있는데 아직 외부에 설명할 말이 없을 때 ‘듣는 연구’가 유용하기 때문인 것 같아요. 정말이지, 누군가와 함께 공유할 수 있는 ‘언어’가 있다는 건 얼마나 든든한 일인지요) 오늘은 덕분에 저의 막막한 에세이 쓰기를 연구에 비추어 조금 더 알아보았습니다. 반대로도 비추어 볼 때가 언젠가는 오겠지요? 그럼, 저는 이만 밭을 갈러 가보도록 할게요.



keyword
작가의 이전글배제 없이, '누구나'를 꿈꾸는 마을기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