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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엘프화가 Aug 24. 2022

제텔카스텐으로 진짜 창의성 발휘하기

다른 제텔카스텐 사용자들이 말하지 않는 창의성 이야기

창조는 점을 연결하는 것. 정말?


 많은 사람들이 제텔카스텐 기법으로 메모를 연결하면 창의력을 발휘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주장하는 이들에게는 공통점이 있다.


첫 번째는 연결해서 찾은 아이디어의 실제 사례 - 특히 자신의 - 는 이야기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두 번째는 스티브 잡스의 연설을 종종 인용한다는 점이다.

My story is about connecting the dots.
2005년 6월 스탠퍼드 대학교 연설 중

 왜 그들은 자신의 실제 사례를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 남의 말만 인용할까?


아마 답은 둘 중 하나일 것이다.


제텔카스텐으로 떠올린 자신의 아이디어가 너무 위대해서 다른 사람에게 이야기할 수 없는 것이거나.

제대로 창의성을 경험해 보지 않은 채 그저 타인의 권위를 업고 앵무새처럼 반복한 것이거나.



정말 연결하는 것만으로 창의성이 나타날까?

사실, 모든 개념은 어떻게든 연결할 수 있다.

그리고, 뭐든 연결하면 새로운 아이디어가 되긴 한다.


자, 사슴과 카레는 어떨까?

이 둘을 연결해보자.

아무렇게나 던져보자.


사슴과 카레. 이 전혀 관련 없어 보이는 두 개념도 연결하려면 할 수 있다.

이 둘은 어떤 관련성이 있을까?


우선, 사향노루는 사슴의 일종이며, 사향(머스크)은 향을 낸다.

카레는 향신료가 주가 되는 요리이다.

즉, 사슴과 카레는 향으로 연결할 수 있다! 새로운 아이디어!


(덤으로 사향과 커리 - musk와 curry를 검색해보면, 또 다른 연결을 찾을 수 있다.

예를 들어 일론 머스크의 인디아계 인종차별 발언이라던가. 링크)


이처럼 우리의 뇌는 유연해서 몇 단계만 거치면 모든 것을 연결할 수 있으며

그것은 기존에 없었던 연결이므로 새롭게 느껴진다.

즉, 연결은 창의성을 만든다. 다만...


창의성이 모든 것을 해결하진 못한다

무쓸모한 창의성의 예시


사람들이 착각하는 것은 '창의성'이 모든 것을 해결해줄 것이라는 것이다.


사실, 우리에게 필요한 아이디어란 '우리가 풀어야 할 문제를 해결해 주는 아이디어'만을 이야기한다.

즉, 우리가 어떤 문제를 해결해야 할 때,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예상치 했지만, 더 나은 답'을 원하는 것이다.


앞서 사슴과 카레는 연결되며, 나름 재미있기도 하다.

하지만 나에게 무의미하다. 나에게 필요한 답이 아니기 때문이다.


정확히 말해 내가 질문하지 않은 채 답만을 만들었기 때문이다.

내가 새로운 카레를 개발하거나(재미는 있겠다), 일론 머스크를 비판하는 웹툰을 그리지 않는 이상(이것도 재미있을 것 같긴 하다) 나는 이 연결은 필요 없다.


연결은 답을 알려 주긴 한다.

하지만, 문제와 맞지 않는, 그저 답을 만들기 위한 답은 무의미하다.


삶과 우주, 그리고 모든 것에 대한 답은 42

이러한 맹점은 영국의 작가 더글러스 애덤스가 그의 SF소설 '은하수를 여행하는 히치하이커를 위한 안내서'에서 '42'라는 답을 통해 풍자하기도 한다.

은하계에서 두 번째로 뛰어난 컴퓨터로 삶과 우주, 그리고 모든 것에 대한 답은 42라는 결론을 얻었지만 아무도 그 답을 이해하지 못해 질문을 얻을 더 뛰어난 컴퓨터를 만들게 된다.


인간은 아무리 좋은 답을 알게 된다 하더라도, 답만으로는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그 답을 이용해 해결할 문제가 무엇인지 모르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연결로 만들어진 '창의성' 만으로는 우리에게 큰 도움이 되지 못한다.


제텔카스텐에서 답을 찾은 경험

그럼, 이쯤에서 제텔카스텐의 연결을 이용해 내가 성장한  경험을 이야기해 볼까 한다.

 나는 "내가 존경하는 사람이 추천하는 책을 읽음으로써 성장할 수 있다."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

메모도 있다.


이 생각은 두 개의 제텔을 근간으로 한다.

하나는  '사람은 곧 그가 읽은 책이다'라는 기사를 요약한 메모.


그리고 '가장 많이 만나는 다섯 사람이 당신의 인생을 결정한다'라는 짐 론의 인용문.


이 메모들은 이전까지는 연결되지 않았다.


메모 위치도 서랍 안에서 따로따로.

하나는 독서 쪽에, 다른 하나는 인간관계 쪽에 배치되어 있었다.


딱히 둘을 어떻게 조합해야겠다는 생각을 하지도 않고 있었다.

이 메모들이 의미를 가졌을 때는 내가 우연히 질문을 던졌을 때다.  


어떤 책을 읽어야 할 것인가?라는 질문에 제텔카스텐이 답하다

어느 날  "어떤 책을 읽어야 할 것인가?"라고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졌고,

그때 내 속에서 튀어나온 답이

내가 존경하는 사람이 추천하는 책을 읽어야겠다.
라는 마음가짐이었다.


메모할 거리가 아니라 직관적으로 튀어나온 '당연히 그래야지'같은 논리적 귀결 같은 느낌이었고

제텔카스텐을 사용하고 있을 때도 아니었다.


그저, 페이스북에 내가 존경하는 어떤 분이 두껍고 (비싼) 책을 추천했고

그 책을 사기 위해 나 자신과 와이프님을 설득할(...) 말을 찾다가 찾은 답이었던 걸로 기억한다.

그리고, 한나절 동안 그 생각은 완전히 잊혔었다.


하지만, 그날 저녁에 제텔카스텐을 검토하다가,

두 메모를 통해 '내가 왜 그런 결론에 도달했는지' 깨달았다.

내가 왜 '내가 존경하는 사람이 추천하는 책을 읽어야 하는지' 나 스스로도 이해했고, 이해한 것과 그 근거를 남에게 설명할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그 생각은 비로소 새로운 메모가 되어, 제텔카스텐에 추가되었다.


 메모는 질문에 따라 다른 답을 내놓는다.

제텔카스텐의 창시자, 니클라스 루만은 제텔카스텐을 '질문에 반응하는 민감한 시스템'이라고 이야기한다.


It becomes a sensitive system that internally reacts to many ideas, as long as they can be noted down.



실제로 제텔카스텐의 메모는 그때그때 질문에 따라 다르게 반응한다.

내가 메모를 작성한 이유나 중요도와 상관없이 말이다.


고양이는 귀엽다

예를 들어 '고양이는 귀엽다' 메모조차 '질문'에 따라 매우 다른 수준의 답을 내놓는다.


만약 내가 고양이를 길러야 하는 이유를 찾는다면, 귀여움이 주는 감정적 충족감이 그 이유가 되어 줄 것이다.


반면, '귀여운 웹툰 캐릭터'라는 질문에서는 고양이의 등신대와 눈의 모양, 이목구비의 흐름 등, 디테일에서 그 답을 찾게 된다.


만약, '왜 애완동물은 성체가 되면 버려지는가?'라는 진지한 질문이 주어진다면?

내 메모 안의 고양이 사진들이 성체보단 어린 고양이들에 집중되어 있는 걸 깨닫고 충격을 받을지도 모르겠다.


제텔카스텐으로 답을 이끌어내는 진정한 방법

앞서 사슴과 카레, 고양이는 귀엽다 메모에서 보듯이 답은 정해져 있는 것이 아니다.

 모든 것이 각자 답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질문이 있고 나서야 제텔카스텐의 메모들이 질문의 맥락에 따라 각자의 답을 내놓게 된다.

그 기반에는 당신의 지성이 있다.


제텔카스텐은 인위적인 연결을 통해 답을 얻는 시스템이라기보단, 당신의 지성을 성장시키는 시스템이다. 

나와 비슷하지만 더 똑똑한 동료를 만드는 과정이기도 하다.


사실, 질문에 대한 답이나 창의성 같은 것들은 제텔카스텐 기법으로 만들어진 '더 지성적인 자아'의 부산물에 불과하다.

그럼, 우리는 제텔카스텐을 어떻게 사용해야 할까?



1. 연결은 잊어라. 메모를 쌓아라.

당신에게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지식을 꾸준히 모아라. 당신을 성장시킬 것 같다고 생각되는 것은 무엇이든 상관없다. 좋아하던 문학의 글귀이든, 갑자기 떠오른 아이디어든, 내가 좋아하는 그림이든 상관없다.

창의성을 위해 그것들을 일부러 연결해 답을 찾으려 애쓸 필요는 없다.

오히려 모든 메모는 다양한 맥락에서 각각 답이 될 가능성을 가지고 있음을 믿어라.

믿고 더 나은 지식을 모아라.

언젠가는 던져질, 당신의 삶에 고난이 될, 다양한 질문에 대비하는 것이다.


2. 지속적으로 검토해라.

스티븐 존슨은 그의 저서 '탁월한 아이디어는 어디서 오는가'에서 다윈의 진화론에 대해 이렇게 이야기한다.

다윈의 진화론은 순간의 번뜩임이 아니라,  갈라파고스를 여행하며 얻은 노트를 몇 년 동안 지속적으로 검토함으로써 이루어졌다.

이를 느린 예감이라고 부르며, 천재의 순간적인 아이디어라는 환상을 경계한다.

다윈의 노트 중 일부

우리 역시 다윈과 같아야 한다.

제텔카스텐을 기록하고, 필요할 때만 보는 것은 무의미하다.

수시로 내용을 보고, 상기시키며 내 질문에 언제든 대응할 수 있도록 장기기억 속에 옮겨야 한다.

메모가 아무리 많고, 뛰어나고, 좋은 답을 가지고 있더라도 당신이 질문을 던진 순간, 당신의 직관을 건드리지 못한다면 소용없다.

(제텔카스텐의 무한 서랍 시스템은 전체를 검토하기에도 적절한 형식이다)


3. 질문해라.

리처드 파인만은 늘 12가지 정도의 질문을 항상 마음속에 지니고 지속적으로 질문하라 하였다.

 Richard Feynman은 천재가 되는 방법에 대해 다음과 같은 조언을 하는 것을 좋아했습니다. 일반적으로 휴식 상태에 놓이더라도 좋아하는 12가지 문제를 계속 마음속에 간직해야 합니다. 새로운 트릭이나 새로운 결과를 듣거나 읽을 때마다 12가지 문제 각각에 대해 테스트하여 도움이 되는지 확인하십시오. 때때로 히트작이 나올 것이고 사람들은 "그가 어떻게 그것을 했는가? 그는 천재임에 틀림없다!"라고 말할 것입니다. - Indiscrete Thoughts 중

질문해라.

제텔카스텐을 사용하는 중이든, 사용하지 않고 있든 상관없다.

사용하지 않을 땐 제텔카스텐으로 쌓아온 장기 기억이 직관이라는 이름으로 답을 줄 것이다.

제텔카스텐을 사용할 때는 메모들이 명확한 근거가 되어, 당신의 직관을 뒷받침할 것이다.


중요한 것은 당신이 항상 질문을 던질 자세를 유지해야 한다는 것이다.


제텔카스텐이라는 파트너를 믿고, 이 세상 모든 것에 질문을 던져라.

평범한 의문 하나도 지나치지 마라.


4. 얻은 답은 다시 메모로 만들어라.

위 과정을 통해 무엇이라도 답을 얻었다면, 당신은 답을 얻기 전의 당신보다 조금 더 지성적인 존재가 된 것이다. 하지만 이 지성은 내버려 둔다면 곧 사라질 휘발성 지성이다.


사라지지 않도록 답을 정리해 메모로 만들어 보관해라. 그리고 검토해서 당신의 장기 기억 속으로 옮겨라.

언젠가 이 답은, 어제의 당신보다 더 지성적인 존재만이 답할 수 있는 질문이 주어졌을 때, 당신을 도울 것이다.


A pen drawing of a man contemplating connection, Charles Monroe Schulz style. by midjourne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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