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 나와 같은 사람이 한 명도 없는데 마케팅을 어떻게 해요?
나는 이과를 공부했다. 더 정확히는 뉴로사이언스, 신경과학이 내 학부 전공이었다. 공부하는 것은 철저히 정답이 있는 것을 선호했지만, 영화나 소설은 오픈엔딩이 좋았고 음악도 내 마음대로 해석할 수 있는 재즈가 좋았다.
고상한 척하느라 딱히 풍류를 즐기진 않았던 심심한 학창 시절에도 난 꾸준히 예술을 사랑했고, 혼자 문득 떠나 낯선 도시에서 듣는 오케스트라 공연과 알아들을 수 없는 낯선 언어의 현지 영화, 헌책방에서 사서 읽는 책들이 나의 세계를 만들었다.
어느새 시간이 이렇게 흘렀는지, 빈티지 옷을 좋아하던 내가 이제 명품 브랜드를 들락거리고 돈이 없어 에스프레소만 마시던 내가 라테에 오트밀크로 변경은 물론 디저트까지 척척 시켜 먹는 30대 어른이 됐다. 변한 것만은 취향이 아니다. 직업이, 내 이름 옆에 붙는 타이틀이 변했다.
직업은 세상을 보는 안경이라고 오랜 시간 주장하며 살았다. 나의 본질은 변하지 않지만, 어떤 렌즈를 내 눈앞에 두냐에 따라 내가 보는 세상이 바뀌기 때문이다. 난시가 있는 나는 도수에 추가로 난시를 교정하지 않으면 세상이 완벽히 또렷하지가 않다. 내가 원하는 모습에 점점 가까워지듯 안경을 바꿔 가는 게 아닐까? 세상이 선명해지듯 꿈에서만 그리던 먼 미래의 내가 현실이 되어가니까. 나는 과거의 내가 고맙고 지금의 내가 좋다. 도무지 섞이지 않을 것 같은 두 세계에서 각각 다른 점을 찍어대던 나의 과거 부분들이 마케팅을 만나 선을 이루기 시작했다.
"과학 연구'씩'이나 하던 사람이 왜...?"
마케팅 직무 면접에서 제일 많이 받았던 질문은 역시 "과학 연구'씩'이나 하던 사람이?"이다 (positive인지 negative인지 아직도 모르겠음). 하지만 과학이든 마케팅이든 내 관심의 중심은 언제나 사람이다. 데이터를 유의미한 것으로 만들기 위해 논문을 뒤적이던 버릇으로 실무 숫자에 스토리를 넣어 생명을 불어넣는다. 어렵기만 하던 교수님과의 면담과 플젠 시간을 기억하며 임원들과 교류한다. 재료 주문을 위해 업체들에 전화 넣던 너스레로 대행사와 소통한다. 저런 선배가 되고 싶다고 생각하게 한 좋은 본보기의 사람들을 생각하며 같이 일하고 싶은 똑 부러진 후배, 배울 게 많은 똑똑이 선배, 그리고 그 모든 것 전에 좋은 사람이 되려 매일 노력한다.
이 모든 과정이, 내가 내고 싶은 모든 결과가 결국 사람이 있기에 가능하고 사람이 있기에 유의미하다. 마케팅이라는 직무에 뛰어들며 나는 너무나 의기소침했지만 (전공자가 아니라는 생각이 날 너무 오랜 시간 괴롭혔다 - 이 분야를 우습게 보지 않았다는 증거쯤으로 지금은 회상 중) 결국 나의 줏대도, 중심도 다 사람이다.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이 종족, 너무 귀엽고 끔찍하고 내가 그중 하나로 3n년을 살아도 잘 모르겠는 어려운 고등 생물. 어쩌면 나는 이 인간에 대해 고찰하기 위해 이 글을 시작한 게 아닐까, 합리적인 의심도 해본다.
왜 어떤 마케팅은 돈을 써도 실패할까? 왜 어떤 마케팅은 돈 한 푼 안 써도 성공할까?
나는 처음에 모두가 생각이 다른데 어떻게 한두 개의 자료로 마케팅하여 ROI를 뽑아내라는 건지 이 컨셉 자체가 이해가 안 됐다. 근데 보면 볼수록 사람들 생각하는 게 참 다르면서도 비슷하다. 한명 한명 모두 다른 우리지만 자라온 환경, 사회적 통념, 거주지역, 언어와 문화 등 수많은 요소로 동시에 쉽게 범주화되는 것이 인간이다 (예를 들면 MBTI도 있고..). 이게 왜 안먹히지 싶은 게 있는가 하면 이게 왜 되지? 하는 것도 너무 많다. 나한테 성공적인 캠페인과 데이터가 증명해 주는 성공적인 캠페인은 영 딴판일 수 있다. 예시로 카카오 뱅크의 개설 이유가 단순히 '귀여워서'가 압도적이라는 게 난 아직도 너무 좋다. 나중에 후세에게 성공한 캠페인의 예시로 이걸 보여주는 날이 온다면 이걸 당최 어떻게 설명한단 말인가! 그 귀엽다는 의미는 대체 누가 정의하는 것이며 얘는 귀엽고 쟤는 안 귀여운 척도는 어떻게 수치화해야 하는지.
사람을 이해해야 한다. 그러려면 수많은 자료와 학문이 필요하다. 행동 심리학, 경제학, 소비자 심리학, 사회경제, 등등 끝도 없다. 종종 데이터가 완벽히 설명하지 못하고 인간의 직감도 통하지 않는 분야가 마케팅이다. 가지고 있는 도구를 잘 사용하여 최적화해 나갈 뿐, 완벽한 통찰력에는 도달하지 못할 것 같다. 사실 이게 재밌는 거 아닐까? 인간이 정해진 틀 안에서만 사고하고 행동하여 수식대로만 캠페인을 기획 및 집행했다면 난 2개월도 못 버텼을 거다.
김 씨의 마케팅 생존기,
가 좋은 제목이려나? 김 씨의 인간 노트쯤이려나. 실험하는 마케터는 인류에 대한 통찰이자 결국 매일 9-5를 잘 살아내고 싶은 한 직장인의 발버둥이다. 잘 정리해서 나중에 이직할 때 포폴로 써야지 하는 욕심은 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