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험은 늘 불완전하다: 마케터의 불확실성과의 동거일지

데이터보다 가설이 먼저다

by 실험하는 마케터

불확실성과 함께 일하는 법은 왜 학교에서 가르치지 않는 걸까? 학기가 시작될 때마다 언제 무엇을 배울지, 어디부터 어디까지가 시험 범위인지, 무엇이 정답이고 오답인지 아주 어린 나이부터 떠다 먹여주더니 대학까지 졸업하고 나니 모든 것이 안개가 낀 듯 불확실성의 연속이었다. 직업, 미래, 연애, 친구 등등 뭐 하나 내 뜻대로 되는 게 없다니.

나는 어릴 때 멋모르고 부모님 따라 이민을 가서 해외에서 학사 졸업 후 석박을 위해 (끝끝내 졸업하지 못한...) 한국으로 되돌아간 역이민의 케이스다. 너무 어릴 때부터 입과 귀가 막혀버린 부모님을 대신해 어른 행세를 해서일까, 모든 상황이 내 통제 아래에 있어야 안심이 되는 통제광이 되어버렸다. 이전 글에도 소개했듯이 이런 이유로 삶의 많은 부분들을 실험하듯 미세 조정했지만 동시에 컨트롤할 수 없는 예술의 영역에 몰입했던 걸 수도 있겠다.


마케팅은 불확실성의 연속이다. 많은 순간 "아 나도 모른다고요...!" (아니면 "님들도 모르는걸 제가 어떻게 알아요" ㄴㅇㄱ)를 외치고만 싶다.

고로 사유해야 한다. 회사는 매출과 직결되는 캠페인을 좋아하지만, 브랜드의 방향을 결정짓는 건 퍼널의 위쪽이다. 그러므로 사유한다. 내가 런칭하는 캠페인의 궁극적인 목적은 무엇인지, KPI는 무엇인지, 어떤 데이터를 가지고 KPI 설정이 됐는지, 타 부서들과 어떤 이해관계를 맺고 있는지, 그리고 결정적으로! 왜! 이걸 하는지.

가설 없이 실험은 시작되지 않는다. 그리고 사유 없이 가설은 생기지 않는다.


마케팅은 본질적으로 확률 게임. 데이터는 방향을 검증할 뿐, 제시하지 않는다.

유행이 아무리 돌고 돈다지만, 1994년 거리 패션이 제아무리 2025년 지금 우리의 패션과 비슷하다고 해도 30년 넘는 세월 동안 인생의 다른 변곡점을 지나온 우리는 매해 시장이 변하는 것 같고 매번 불안하고 불안정하다. 먼 훗날 오늘도 인류 역사 중 한 점에 지나지 않을 미래에는 지금도 그저 반복되는 사이클의 일부일 수도 있겠다. 하지만 오래 보아야 사랑스럽다고, 당장의 나는 오늘날의 인간들과 그들의 소비자 심리를 꿰뚫어 볼 인사이트가 통 부족하다.

그렇다면 타깃이 명확하고, 메시지도 잘 정제되었고, 타 부서들과의 협업도 유연하고, 예산도 충분하다면 그 마케팅은 무조건 성공할까? 불행하게도 (혹은 흥미롭게도) 아니다.

연구에서 가설은 절대 "증명(prove)"되지 않는다 - 지지(support)되거나 기각(reject)될 뿐. 가설은 정답이 아닌 나침반이다. 결과가 맞으면 방향이 옳았던 거고, 아니라면 지도를 다시 그리면 된다.


실험 결과가 잘 안 나왔다고 연구 자체를 때려치우는 연구자는 없다.

불확실성 속에서도 대처를 잘하는 사람은 모든 정답을 알고 있는 사람이 아니라 변수를 잘 예상하고 대비한 사람이다. 교수님은 늘 말했다, 내 가설이 기각됐다는 것 또한 그 어떤 다른 가설을 지지하는 것이라고.

나의 데이터가 다음 실험의 변수가 될지, 아니면 다음 변수를 잡을지는 아무도 모른다. 답답해하기엔 너무 이르고 그만두기엔 나의 설익음이 건방지다.

우스갯소리로 어차피 쟤도 잘 모르면서 나한테 일 준거라는 말이 회사짤로 유행했는데 이건 반은 맞고 반은 틀린다. 회사나 임원들, 그리고 교수님들은 헬리콥터를 타고 조명을 비춰주며 험한 하늘길을 지나고 있다면 실무자는 거센 바람에 뺨도 맞고 진흙에 발도 푹푹 빠져가며 헤쳐나가는거라 생각해보자. 서로의 시야나 걱정해야 하는 '다음'은 너무나 다르며 고로 이해하지 못하는 것도 당연하다. 빛 좀 거, 눈앞으로 밝게 쫙쫙 비춰주면 좋겠는데 어쩜 그리 속 시원하게 길 하나 못비춰주는지... 내가 서 있는 지점만 간신히 보일 뿐이다.

그렇다고 그들이 바보 천치라는 이야기도 아니고 (그렇게 믿고 싶겠지만), 방향 감각을 잃은 것은 더더욱 아니다. 그저 각자 서 있는 위치가 다를 뿐.

모든 것이 불확실하지만 그 와중에도 물러서지 않고 내딛는 한 걸음이 있다. 그 발자국이 흔적이고, 흔적은 데이터가 된다. 회사에서도 실험실에서도 내가 가야 하는 길을 정확히 알려주는 신적인 존재는 없다. 그렇기에 잘 정리된 가설이 나의 나침반이 되어주며 설령 길을 조금 헤매더라도 때려치지 않을 중심이 되어준다. 이미 내가 세운 가설대로 실험이 착착 들어맞는다면 일단 의심부터 해봐야 하지 않을까? 어디선가 읽어본 실험이 무의식중 남아 나의 오리지널이라고 착각하는 걸 수도.


어차피 삶이란 게 원래 불완전한 거다.

13살쯤이었나? 엄마가 사준 헬로키티 지갑이 너무 예뻐서 아침에 일어나면 지갑부터 보러 갔던 내가 있다. 지금은 신분증과 큰돈 쓸 때나 필요한 실물 신용카드용 작은 카드 지갑만 남겨둔 채 모든 것을 휴대폰으로 해결한다. 그때는 맞고 지금은 틀린 것들과, 그때는 틀리고 지금은 맞는 것들로 박물관을 세울 수 있다. 하지만 그렇게 새로운 패턴이, 새로운 패러다임이, 새로운 결과가 생겨나는거 아닐까? 변덕스럽고, 불안하고, 아직 완전하지 않기에 더 아름다운 우리네 삶.

가설을 세우기도 전에 데이터부터 수집하는 연구자는 방향성을 잃는다. 인류에 대한 이해와 고뇌를 멈춘 마케터 역시 방향을 잃는다. 엄마가 하라고 해서 한 피아노는 다소 지루해도 내가 하고 싶어서 한 검도는 기본 발걸음만 한 달을 배워도 재밌는 법.

시켜서 한다느니, 브랜드 방향감이 영 상실됐다느니, 확실하게 뭐 하나 알려주지도 못하면서 말만 많다느니, (쓰고 보니 내가 맨날 입에 달고 사는 소리긴 하네) 괴로워하는 대신 현재 시장의 흐름과 소비심리를 건드리는 수많은 요소를 통합해 내 캠페인에 대한 가설을 세워보자. 증명하기 전에 탐색하자. 확실하지 않기에 질문이 생기고, 질문이 있기에 실험이 시작된다.

'모름'을 견디자. ‘불확실성’과 동거하며 동고동락하는데 필요한 기본 소양이다.

작가의 이전글데이터와 직감만으로는 설명되지 않는 것들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