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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영호 노무사 Feb 25. 2021

제1화. 잃어버린 우리의 상식을 찾아서...

상식 : 5월 1일 

"왜 말귀를 못 알아 처먹어? 머리는 폼으로 달고 다니냐?"

"..."     


은서는 실어증에 걸린 듯,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답. 정. 너. 의 세상에선 차라리 침묵이 편했다. 

하지만 그럴수록 상대방의 악은 더욱 치졸하고 잔인하게 수면 위로 떠올랐다.     


"귀먹었어? 말 못 해? 너, 외국인이야? 바보야?"

"..."

"누가 이딴 걸 뽑았는지... 인사팀은 생각이 있는 거야, 없는 거야? 적어도 말귀가 못 알아먹는 병신은 뽑지 말아야지..."     


성 차별과 연령 차별, 외국인과 장애인 차별이 골고루 섞여있는 듯한 저렴한 멘트에도 은서는 그저 가만히 있었다. 

그게 짧은 시간이지만 이 바닥에서 터득한 생존의 비결이었다. 어차피 도와줄 사람은 없었다.

다들 뒤에서는 최 팀장의 위선적인 모습을 욕했지만 앞에서는 온순한 한 마리의 양이 되어 있었다. 

그게 권력의 힘이었고, 현실의 반영이었다.


사실 외부 사람들을 대할 때, 최 팀장은 천사의 미소를 띄워 보냈다. 

나긋나긋한 말투로 사람들의 호감을 샀다. 

그게 권력과 자만의 껍데기라는 걸 외부인들이 알아차리기란 쉽지 않았다.     




3년 전. 입사한 첫해부터 은서의 인생은 꼬여버렸다. 

5월 1일. 

은서는 회사에 출근하지 않았다. 

전국에서 딱 8개 대학만 개설돼 있다는 ‘인권과 노동법’ 수업시간에 교수님이 그랬었다. 5월 1일은 모든 노동자들의 휴일이라고. 그 날만큼은 자신의 휴식권을 누려보라고. 그랬다. 5월 1일이 휴일이란 건, 질문의 영역이 아니라 상식의 영역이었다. 

하지만, 직장에서 상식을 말한다는 게 얼마나 큰 위험을 감수해야 하는 일인지를 은서는 몰랐다.      


5월 1일. 

9시가 지나자 핸드폰이 울려대기 시작했다. 은서는 허둥지둥 회사로 달려갔다.      

“이은서 씨, 입사 첫해부터 나사가 빠진 건가? 그렇게 안 봤는데...”

“아뇨. 그게, 저, 오늘이 휴일이라서 회사에 출근하지 않는 것으로 알았습니다.”     


팀장의 입꼬리가 살짝 올라갔다. 

그러고 나서 이마에 주름이 생길 정도로 눈을 위로 치켜떴다. 그건 표정으로 말하는 팀장의 마음이었다. 

경멸이었다.      


“아, 그러셨어요? 오늘이 휴일이라서 회사에 출근도 안 하셨어요? 이. 은. 서. 씨”     


그때 멈췄어야 했다. 

평소에는 안드로메다로 보내버린 정의감이 갑자기 한 밤의 별똥별처럼 은서의 심장 한가운데로 떨어지지 말았어야 했다.       


“네, 팀장님. 상식적으로 5월 1일에 회사에 출근한다고는 생각도 못했거든요?”     


상식적으로, 라는 말을 붙이지 말았어야 했다. 그 한 구절이 은서의 삶을 깨뜨렸다. 


상식적이지 않은 인간에게 ‘상식적으로’, 라는 말을 붙이는 게 얼마나 큰 모욕인지, 은서는 미처 생각하지 못했다.      


잠깐 동안의 침묵이 사무실을 채웠다. 

팀장은 입술을 꾹 깨물고, 은서를 물끄러미 쳐다보았다. 

팀장은 천천히 은서에게 다가왔다. 

은서의 귀에 대고 팀장은 아무도 듣지 못하는 낮은 목소리로 조용히 말했다.      


“나는 직장에서 권리 말하고, 노동법 들이밀고 하는 인간들, 제일 싫어하거든? 고맙네. 쉽게 그런 인간 하나 찾게 해 줘서. 그런데 은서 씨, 세상을 너무 쉽게 살아온 거, 아냐?”   

  

팀장은 찰나의 순간에 모드를 전환하고 모든 팀원들이 다 들으라는 듯, 큰 소리로 말했다.      


“나도 우리 팀원들 다 휴일에 쉬게 하고 싶지. 그런데, 우리 회사가 5월 1일에 나오라는데 어떻게 해? 내가 뭐 힘이 있나? 회사 방침에 따라야지. 나도 미안해. 은서 씨한테도 미안하고. 신입사원한테 미리 얘기 못한 내 잘못도 커. 미안해 은서 씨. 다음부터는 조금 이상하다 싶으면 나나 김 과장한테 물어봐. 알았지? 입사 초기니까, 회사 문화를 잘 모를 수도 있지, 뭐.”     


은서는 고개를 숙이고 팀장의 얘기를 듣고 있었다. 

갑자기 눈물 한 방울이 은서의 빛바랜 구두 위로 떨어졌다. 

밖으로 쏟아내지 못한 분노가 그 눈물 한 방울에 응축되어 있었다. 

상식이 죄가 되었고, 정의가 부끄러움이 되었다. 

방 한 구석에서 남몰래 흘렸던 부모님의 눈물이 기억났다. 


그 눈물 한 방울에 담겨 있는 것은 인생이었구나, 생각했다. 


눈물 한 방울의 무게가 그렇게 큰 것이었구나...     


5월 1일이 모든 노동자들의 휴일이란 건, 모르는 사람이 없었다. 

게다가 5월 1일에 일을 하게 되면 1.5배의 임금을 받는다는 것도 상식 중의 상식이었다. 

하지만, 상식이 현실을 반영하는 건 아니었다.

꽤 규모가 큰 우리 회사가 이 정도니까, 다른 회사는 어떨까.  

4인 이하 사업장의 근로자들은 휴일에 근로하더라도 여전히 1.5가 아니라 1.0의 임금을 지급한다.  

4인 이하 영세 사업장의 현실을 고려한 것이라지만, 그곳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의 현실에는 눈을 감고 있었다. 


때로 상식은 현실과 평행선으로 달려가고 있는 이상이기도 했다. 
 
상식이 이상이 아니라 현실이 되는 사회. 그게 정상, 아닐까.  

은서는 꿈속에서 중얼거렸다.      



<'노동법의 여왕'의 노트 : 5월 1일>


1. 5월 1일은 모든 노동자의 휴일이다. 

2. 5월 1일에 근무하는 경우 1.5배의 임금을 지급해야 한다. 

3. 다만, 4인 이하 사업장의 경우 1.0배의 임금만 지급하며, 0.5배의 가산임금 지급의무는 없다. 


예) 시급임금 2만원인 근로자가 5월 1일에 4시간을 근로했다고 가정해 보자. 5인이상 사업장에서 근무하는 근로자의 경우 2만원x4시간x1.5=120,000원의 임금을 지급해야 하지만, 4인이하 사업장에서 근무하는 근로자의 경우 2만원x4시간x1.0=80,000원의 임금을 지급하면 된다. 


노동법의 여왕 제1화.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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