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갑자기 남편은 헤드헌터 회사에 연락을 돌리더니 이력서를 다시 작성하기 시작했다. 본래 무언가를 끈질기게 하는 성격이 아님을 알기에, 현재 다니고 있는 회사에 질려 이직을 준비하려는 건가 싶었다. 그전에는 1년 이상 다닌 회사가 별로 없었는데 지금 회사는 2년이 넘었으니 그동안의 행적에 비해 장기근속중인 것이다. 결국 이 회사도 그만두는 거냐 물으니, 그게 아니라 두 곳의 회사에 다닐 거란다. 무슨 소리냐 물으니, 요즘 미국에서는 겸업이 유행이라는 이상한 소리를 했다.
심심할 때마다 각종 팟캐스트를 들으며 흥미로운 주제를 찾던 그는, 미국에서 법적으로 겸업이 불법이 아님을 알게 되었고, 그로 인해 재택근무를 하는 다수의 사람들이 적게는 두 곳, 많게는 일곱 곳의 회사에 동시에 취직해 일하고 있다는 사실도 발견했다. 미국에서는 해고와 퇴직이 쉬운 만큼 아직까지는 채용도 그만큼 열려 있는 편인데, 이를 이용해 몇 개의 회사에 동시에 취직해 한 번의 많은 월급을 벌어들이는 사람들이 있는 것이다. 본인이 여러 회사의 다른 업무를 다 아우를 능력이 있다면 괜찮은 선택이고, 한 개 회사의 업무도 감당하기 어렵다면 하면 안 되는 선택일 것이다.
아무리 겸업이 불법이 아니라 한들, 같은 직종의 회사는 피해야 한다는 조건이 있다. 그리고 대부분의 겸업자들은 자신이 다른 회사에서도 일한다는 걸 비밀로 붙이는 일이 많다. 회사 입장에서는 동시에 여러 회사 일을 하는 사람을 좋아할 리 없기 때문이다. 다른 회사 일에 신경 쓰는 만큼 우리 회사 일에 백 퍼센트의 능력을 쏟아붓지 않을 거라 여겨지기 때문에 면접 보는 사람들은 현재 다니는 회사에서 이직을 목표로 한다고 거짓을 말하고 면접을 본다. 회사에 정말 돈만 벌러 다니는 사람들은 겸업할 수 있을 때 하는 게 뭐가 나쁘냐고들 말한다.
남편은 다른 선배 겸업자들의 얘기를 듣고, 본인도 겸업이 가능한지, 가능하다면 어디까지 해낼 수 있는지 궁금하다며 두 번째 회사를 물색하기 시작했다. 거기다 매일 같이 언론에서 발표하는 AI발전 속도를 보면 자기 직종이 언제 인공지능으로 대체되어도 이상할 게 없다는 불안감이, 아직 일할 수 있을 때 바짝 해보자는 그의 열의에 불을 지폈다.
얼마 안 가 그는 헤드헌터를 통해 찾은 회사와 면접을 진행했고, 세 번의 면접 끝에 합격할 수 있었다. 두 회사의 일을 동시에 해내기 위해 모니터를 비롯한 추가 장비를 집에 들여 그만의 멋진 업무용 책상을 꾸몄다. 나는 남편이 굳이 일을 더 하겠다는 걸 말리지는 않았지만, 오히려 한 가지 일에 집중하지 못해 이도저도 안 되는 꼴이 되지 않을까, 무리해서 건강이 나빠지는 건 아닐까 우려도 앞섰다.
그는 몸에 무리가 갈 정도로 힘들면 바로 관두고, 할 수 있다면 6개월 정도만 겸업을 해보겠다고 한 후 바로 일을 시작했다. 당연히 남편은 평소보다 일하는 시간이 길어졌다. 두 번째 회사 업무 시간에 맞춰 한 시간 더 일찍 일어났고, 한두 시간 더 늦게 끝나는 일도 많았다. 스트레스도 당연히 추가되었다. 그런데 이게 생각보다는 잘 굴러갔다. 에너지와 시간을 둘로 쪼개 쓰면서 첫 번째 회사에서 남편의 일처리에 불만을 쏟지 않을까 싶었는데, 평소 그보다 일을 더 안 하는 직원들도 있어서인지 딱히 별다른 얘기가 없었다. 급여 날에는 두 곳에서 들어온 급여를 보며, 남편은 겸업을 하길 잘했다고 여기며 기뻐했다. 그리고 회사 일과 동시에 돼지 농장을 꾸리는 친한 동료와 전화통화로 겸업 얘기를 나눴다. 다들 대놓고 말은 안 하지만 재택근무를 하는 사람들 중에는 이렇게 여러 개의 일을 하는 사람이 많은 듯했다.
꽤 만족해하는 남편을 보며, 생각보다 이 상태로 계속 일 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겸업을 시작한 지 두 달 반 만에 그는 두 번째 회사를 관뒀다. 처음 얘기했던 6개월의 반도 못 채운 기록이었다. 이 회사가 아니어도 일하고 있는 다른 회사가 있으니, 스트레스가 심한 일이 생겼을 때 굳이 그걸 참고 버틸 이유를 못 찾겠다는 게 그 이유였다. 월급 나오는 다른 구멍이 하나 더 있으니 간절함이 떨어지는 게 당연한 사람 심리였다. 그래서 결국 현재는 겸업을 그만두고 원래 다니던 회사 하나만 잘 다니는 중이다. 그래도 남편의 겸업으로 남은 자동차 할부를 다 갚을 수 있었으니 남는 게 있는 시도였기는 하다.
한국에서도 회사 일 하면서 사이드 잡을 하는 사람들을 많이 봤는데, 미국에서는 아예 여러 곳의 회사에 동시에 취직해 일할 수 있다는 게 신기하다. 물론 이를 악용하는 사람들도 있어 상황별로 다 다르다 할 수 있겠지만, 할 재량만 있다면 이것저것 해 볼 수 있는 환경이 있다는 건 분명한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