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LA여행을 갔다 왔다. LA에 살고 있는 친구가 자기 집에 놀러 오라며 초대한 것이다. 오래간만에 친구랑 같이 어울릴 수 있다는 것도 신났지만, 맨날 조용한 시골에 박혀 있다가 할 거 많고 먹을 거 많은 대도시에 간다는 것 자체가 너무나 기대됐다.
여행은 기대했던 만큼 즐겁고 재미있었지만 사실 제일 놀랐던 건 LA에 사는 친구의 생활이었다. 공항에 나를 데리러 나올 때부터 억대가 넘는 차를 끌고 나오더니, 여기 있는 동안 편히 쉬라며 손님방이 아니라 별채를 따로 내줬다. 친구 남편의 사업이 잘 돼 여유롭게 살고 있다는 건 알았어도, 땅 값 비싸다는 산타모니카 해변 근처에 별채까지 달린 집에 살고 있는 줄은 몰랐다. 유치원생과 축구를 하는 초등생까지 아들이 둘이라 애들 차로 픽업 다니고 바빠 보였는데, 주기적으로 가정부와 정원사, 베이비시터 등의 도움도 받고 있었다. 덕분에 친구는 나와 여행자 모드로 종일 밖에서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친구네가 무슨 영화 속 대저택에 사는 그런 대단한 부유층은 아니지만, 1년에 두 번씩 비즈니스석으로 아이들과 고향을 찾고, 물가 비싼 지역에서 가격 걱정 없이 원하는 걸 자유롭게 할 수 있는 여유가 있었다. 나에게는 마치 미국 부자의 삶을 구경하는 느낌과 같았다. 친구가 외출할 때마다 하는 가방과 장신구들도 하나같이 누구나 알만한 명품 브랜드의 물건이었다. 다행히도 그런 생활이 부럽기는 했지만 질투는 나지 않았다. 오히려 잘 살고 있는 친구가 있어, 내가 여기까지 놀러 올 수 있었고, 덕분에 편하게 LA 곳곳을 여행해서 오히려 고마운 느낌이었다. 그런데 한 가지 이상한 감정은, 어느 순간부터 나도 모르게 내 옷 때문에 움츠러든다는 것이었다.
다른 여자들에 비해 나는 가방, 옷, 신발, 장신구에 관심이 적은 편이다. 그보다는 음식이나 여행을 좋아해서 돈이 모이면 그쪽에 써 왔기 때문에, 내 옷장을 보면 새 옷보다는 대부분 10년 가까이 된 낡은 옷들이 많다. 이번 여행 때도 당연히 그런 옷들을 열심히 입고 다녔는데, 나도 모르게 친구의 눈부신 고급 옷들과 비교가 되더라. 괜히 내 옷에 붙은 보푸라기가 더 두드러져 보였고, 오래 입은 치마는 색감이 평소보다 바래보였다. 그녀의 손에 박힌 반지의 알이 그날따라 내 손에 있는 반지보다 유달리 커 보였다.
평소 운동복에 편한 티셔츠만 입고 다니는 동네에 있어서, 전혀 내가 하고 다니는 것에 신경 쓸 일이 없었는데, 오랜만에 꾸미고 다니는 동네에 오니, 거기다 같이 다니는 친구가 명품으로 휘감고 있으니 안 그러려고 해도 자꾸 내 모습이 초라해 보였다. 친구가 명품 자랑을 하는 것도 아니었고, 나 역시 그런 물건들이 나를 돋보이게 하지 않는다는 것쯤은 알고 있는데도 이상하게 옷에 위축되는 기분이 들었다.
한동안 잊고 살았는데 의미 없는 비교를 하던 습관이 튀어나온 것 같았다. 흔히 한국인들은 타인과 자신의 비교가 심하다고 하는데, 나 역시 의식하지 못할 만큼 타인과 나를 자주 비교하던 버릇이 있었다. 이런 버릇으로 멀쩡했던 내 감정을 나락으로 떨어뜨리거나, 어쭙잖은 위안을 얻는 내가 한심해 보였고, 미국으로 오고 나서는 그러지 않으려고 많이 노력했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집도 띄엄띄엄 있어 비교할 사람조차 보기 힘든 미국 시골로 오고 나서는 그 안 좋던 습관이 사라진 줄 알았는데, LA에 오고 나서 잊고 있던 버릇이 불쑥 튀어나온 듯했다.
여행을 끝내고 집으로 돌아오고 나서도 전혀 관심 없던 고급 주얼리 브랜드 사이트에 들어가거나, 말도 안 되는 고가의 옷이라는 걸 알면서 괜히 가격표를 뒤져보거나 하는 이상 행동을 했다. 평소 갈대 같은 심지를 갖고 사는 지라, 오래간만에 친구와 종일 시간을 보내니 심하게 영향을 받은 모양이었다.
그래도 다시금 시작된 시골의 고립된 생활과 작고 소중한 내 통장 잔고로 인해 쓸 때 없는 관심과 비교를 한 꺼풀 걷어내게 되었다. 외국에 살면서 나를 좀 잡아먹는 바보 같은 비교 습관을 버리는 게 목표 중 하나였는데, 쉽게 벗어나기에는 내가 너무 비교 문화에 물들어 있었나 보다. 내가 이런 습관을 버리고 조금만 더 내게 집중할 수 있게만 돼도, 꽤나 남는 게 많은 해외 살이를 만들어 갈 수 있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