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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라봇 Jun 13. 2024

나는 미국 경찰서에서 쇼핑을 한다

제목 그대로다. 나는 미국에서 경찰서에 쇼핑을 하러 간다. 

구매하는 종류도 아주 다양하다. 작게는 가방을 사기도 하고, 크게는 경찰차를 사기도 한다. 오늘 아침에도 구매한 경찰차를 받으러 갔다 왔다. 


도대체 무슨 소리일까 싶지만 이게 정말 미국에서는 가능하다. 남편은 오래전부터 좋은 매물이 있으면 경찰차 구매를 해왔다. 정확히 말하자면 경찰서에 직접 가서 산 것이 아니라 온라인으로 경매에 참여한 것이지만 말이다. 내가 사는 주만 가능한 건지, 다른 주도 가능한지는 모르겠지만, 경찰서에서는 오랫동안 이용해 온 차를 안 쓰게 되면 쓰던 차량을 경매에 내놓는다. 아마도 새로운 차량이 제공되거나 차가 너무 오래되어 현장에서 쓰기 불편해졌을 때 그 차를 내놓는 것 같다. 경매에 나온 대부분의 차량이 연식 10년 이상의 것이 많기 때문이다. 경찰차 외에도 시청이나 도서관에서 공무용으로 사용하던 차량도 이와 같은 이유로 경매에 나올 때가 꽤 많다. 


차량 종류도 다양하다. 흔하게 보는 범인 체포용 승용차도 있고, 한국에서는 볼 수 없는 트럭 경찰차도 있다. 경매는 온라인으로 며칠에 걸쳐하고, 사진과 연식, 주행거리 등의 정보를 보고 참여하며 직접 차를 보고 시운전해보고 결정하기는 어렵다. 때문에 실제로 차량을 받으러 갔을 때 거기서 발견하는 문제도 종종 있는 편이다. 눈치 게임으로 경매에서 이겨 차를 받게 되면, 어디서 언제 받을 수 있는지 확인 후, 주정부에서 운영하는 시설로 간다. 물론 돈은 이미 온라인으로 지불한 상태다. 필요한 서류와 차 키를 받고 그때부터 본격적으로 차를 점검한다. 사용한 지 좀 된 차량도 있기 때문에 기름과 배터리 충전용 케이블, 간단한 차량 수리용 도구를 가지고 간다. 오늘 구매한 경찰차도 처음에는 시동이 걸리지 않아 움직이도록 하는데 1시간 정도 걸렸다. 그래도 대부분 큰 문제가 있는 차량이 나오지는 않기 때문에 웬만하면 무사히 집으로 가져올 수 있다. 단지 공무용으로 오래 사용하던 차량이기에 낡았을 뿐이다. 근데 ‘운전의 나라’인 미국에서 연식 10년 이상 차량은 아주 흔하디 흔하기 때문에 아주 낡았다는 느낌도 없다. 


경찰차를 구매하면 재미있는 건, 일반 차량에서는 볼 수 없는 물건들이 있다는 것이다. 경찰서 총기용 라커룸 열쇠라던가, 운전자석과 뒷좌석 사이에 달려 있는 철장 같은 것들이 그것이다. 물론 차를 본격적으로 몰기 위해서는 이 차량의 과거 이력을 지워야 하기에, 차문에 붙어 있던 경찰 스티커를 떼거나 아예 도색을 새로 하는 과정을 거치기도 한다. 후에는 우리가 직접 타거나 동네 커뮤니티를 통해 다른 사람에게 판매할 때도 있다. 운이 좋으면 조금 더 이득을 챙기기도 하고, 어쩔 때는 손해만 안 나는 금액으로 팔기도 한다.

 

이런 온라인 경매가 아니라 실제 경찰서에 가서 이루어지는 경매도 있다. 자주는 아니고 가끔 지역 커뮤니티에 공지가 되는데, 경찰서 현장 경매는 주말 아침 일찍 시작된다. 경매에 나오는 물건은 범행이나 사건 현장을 통해 수거되었지만 처리하기 애매한 물건들이다. 경찰들이 사건 현장에서 나온 물건들을 모아 일반인들에게 판매한다는 것도 충격이었지만, 어떤 범죄 현장에서, 어떤 사연이 있는지 모를 물건들을 구매하는 사람들도 신기했다. 내 남편도 그런 신기한 사람 중 한 명이라, 그중 가방과 잡동사니가 들어있는 상자 두 개 정도를 구매했다. 경찰서 내부가 아니라  문 바로 밖에 간이 테이블을 펼쳐 놓고, 신발류, 전자제품류, 옷류 이런 식으로 구분된 상자들을 둔다. 상자로는 구분되어 있지만, 상자 안 물건들은 정리되지 않고 뒤죽박죽 섞여 있다. 경매가 시작되기 전 사람들은 상자 안에 구체적으로 뭐가 들었나 직접 꺼내 보고 확인한다. 이런 경매는 물건 하나하나를 판매하는 게 아니라 상자를 통째로 판매하기 때문이다. 경매 진행도 당연히 현직 경찰들이 한다. 

 

남편이 구매해 온 상자 안에 뭐가 들어있나 살펴보니, 가방류를 사서 그런지 지갑과 손가방, 핸드백 등이 많았다. 그중에는 가족사진이 들어있는 지갑도 있었는데, 미국 경찰에서는 이런 걸 개의치 않고 그대로 판매하는 게 신기하다. 


이런 경찰서 경매를 통해 벌어들이는 수익이 아주 클 거라고 보지는 않는다. 그래도 공짜 하나 없는 미국에서 경찰들은 더 이상 필요하지 않고 처치 곤란한 물건들을 판매해 운영비에 보탤 수 있어서 좋고, 구매자는 운이 좋다면 필요한 중고 물건을 아주 싼 값에 사는 거니 모두 이득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다. 


경찰서에 쇼핑하러 가다니, 한국에서라면 상상도 할 수 없는 신기한 세상이다. 한편으로는 미국 사는 동안 부디 쇼핑 외에 다른 일로 경찰서를 방문하는 일이 없기를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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