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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라봇 Aug 12. 2024

집에서 막걸리 빚는 미국 남자

지난번 친구와 다른 주로 여행 갔을 때, 꿀 전문점에 들러 벌꿀술이라는 것을 사 왔다. 영어로는 미드 (mead)라고 부른다. 술 먹고 꿀물은 먹어봤어도 벌꿀술이라는 건 들어본 적이 없던 나는, 기념으로 두 병 정도를 구매했다. 집으로 돌아와 남편에게 선물로 주자, 본인도 벌꿀술은 별로 먹어본 적이 없다며 얼굴에 화색을 띠고 술잔을 가져왔다. 기대감을 가득 안고 맛본 벌꿀술의 첫 입은 기대만큼이나 달콤하고 향긋했다. 꿀의 달큼함에 섞인 알코올향이 묘하게 어우러져 어른의 음료라는 티가 팍팍 나는 술이었다. 우리는 이 달콤한 벌꿀술에 빠져 앉은자리에서 한 병을 다 비워버렸다. 같은 미국이어도 우리 동네에서는 쉽게 살 수 없는 술이라 아쉬운 마음에 남은 한 병을 조금씩 아껴 먹고 있었는데, 맛난 술을 감질나게 마시는 게 불편했던 남편은 도대체 벌꿀술은 어떻게 만드는 거냐며 인터넷으로 레시피를 검색했다. 그런데 생각보다 들어가는 재료가 얼마 안 됐다. 기본적으로 물, 꿀, 효모 이게 필요한 재료 전부였다. 그 외에 들어가는 것들은 선택사항이지 필수가 아니었던 것. 


내친김에 남편은 본인이 직접 벌꿀술을 만들어보겠다며 본격적으로 술 만드는 유튜브 영상을 찾아봤다. 평소에는 행동력이 느려 뭐든 미루고 미루는 사람인데, 중독자처럼 술 만드는 일에는 눈을 반짝이며 엄청난 속도로 행동하기 시작했다. 필요한 재료 외에 어떤 도구가 있어야 하는지 조사를 마친 그는, 홈메이드 술 제조 도구를 판매하는 가게까지 찾아냈다. 그 가게는 맥주, 과실주 등 다양한 종류의 술을 집에서 만들고 싶은 사람들을 위한 장비 세트를 파는 곳이었다. 처음 보는 낯선 병과 도구들, 술에 넣을 수 있는 각종 향들이 놓여 있어, 마치 마녀의 집을 연상시켰다. 게다가 가게 뒤편에서는 사장님 본인이 가족들과 직접 만든 각종 술들을 간단한 안주와 함께 팔고 있어, 술 제조에 관심이 없어도 이 가게만의 시그니처 술을 먹기 위해 들르는 사람들이 많았다. 


남편과 나는 이곳에서 커다란 발효 용기와 공기 차단기, 술을 옮길 때 쓸 튜브, 살균제 등을 구매 후 사장님이 만든 사과주를 즐겼다. 홈메이드 사과주에 반한 남편은, 애초에 만들기로 한 벌꿀술에 사과주까지 더해 두 개를 만들어 보자며 구매한 장비를 한 세트 더 사서 집으로 향했다. 가는 길에 마트에 들러 대용량 꿀과 사과 주스를 구매했고 그걸로 바로 술을 담갔다. 이게 과연 집에서 되긴 될까 의아했는데, 얼마 후 발효가 시작되자 공기 차단기에서 뽀글뽀글 공기가 올라오는 게 보였다. 술이 발효가 되고 있다는 걸 눈으로 확인할 수 있게 되자, 남편은 처음으로 작은 애완동물을 길러보는 아이처럼 집 안에서 오며 가며 하루에 몇 번이고 술병을 꺼내 봤다. 발효가 잘 될 때는 조용한 한 밤중에 공기주머니가 올라와 터지는 소리가 침실까지도 들릴 정도였다. 당장이라도 열어보고 싶은 마음을 누르며 벌꿀술은 약 한 달 정도 발효시켰고, 사과주는 이보다 빨리 먹을 수 있어 약 2주 동안 숙성시켰다.  


첫 홈메이드 사과주는 약간 쓴 맛이 나긴 했지만 나쁘지 않았고, 벌꿀술은 파는 것만큼이나 맛이 잘 들어 대성공이었다. 그리고 바로 다음 날 아마존에서 찹쌀과 누룩이 집으로 배달되었다. 역시나 쇼핑하는 데 주저함이 없는 남편의 짓이었다. 나름 집에서 술 만들기에 성공하자, 자신감이 한껏 올라간 남편은 그동안 그리워했던 막걸리를 집에서 만들기로 한 것이었다. 한인 마트는커녕 아시안 마트도 많지 않은 이곳에서 막걸리는 아주 희귀한 음료다. 다른 주로 여행을 가야지만 구경할 수 있는, 내게는 마치 멀리 있는 슈퍼스타 같은 술이다. 남편도 나와 마찬가지로 막걸리를 즐기는 사람이라, 술 만들기에 재미를 붙인 남편이 집에서 손수 빚겠다며 재료를 주문했다. 바나나 막거리를 만들겠다며 바나나 향이 나는 액체까지 추가해서 말이다. 


내가 아무리 알려줘도 집에서 절대 밥솥은 건드리지 않는 사람이, 손수 찹쌀을 씻고 밥을 안치는 모습이 굉장히 낯설었다. 특히나 아무리 남편이지만 서양인의 탈을 쓰고 있는 사람이 집에서 누룩과 쌀로 막걸리를 만드는 모습은, 한복을 입고 하이힐을 신은 것만큼이나 생소해 보였다. 하지만 그런 생소함과 달리 그의 열정만큼은 막걸리와 아주 찰떡이었는지, 뽀얗고 향긋한 막걸리를 제대로 만들어내고 말았다. 발효를 멈추는 시기를 잘 못 맞춰 일반 막걸리보다 훨씬 알코올이 센 막걸리 폭탄주가 만들어졌지만 말이다. 


집 안이 각기 종류 다른 술들이 뿜어내는 알코올 향으로 가득해졌지만, 저녁 먹을 때마다 홀짝홀짝 반주 마시는 재미가 쏠쏠하다. 특히 남편이 만든 막걸리는, 고국을 그리워하는 내 마음에 대한 배려가 담긴 것 같아서 더 자주 마시게 된다. 조만간 또 찹쌀과 누룩을 주문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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