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을 떠나기로 결심하고, 그다음으로 결정해야 하는 건 ‘그래서 어디로 갈 것인가’였다. 우리는 다양한 나라를 후보군에 넣었다. 타국이지만 미국 시간에 일해야 하는 남편을 위해 그나마 시차가 적은 남미 국가, 이를테면 멕시코 시티나 에콰도르 같은 나라도 살펴봤고, 유럽 국가 중에서는 스페인이나 포르투갈 같은 나라도 떠올렸다. 하지만 나는 가능하면 아시아로 가고 싶었다. 나와 비슷한 문화권을 가진 나라가 그리웠고, 한국과 물리적으로 가깝지 않더라도 일단 아시아권이면, 마음에 거리가 가까워진 느낌이라 한국에 있는 가족들에 대한 걱정도 덜 하게 될 터였다. 아시아로 간다면 제일 큰 걸림돌은 역시 남편이 일하는 근무시간이었는데, 미국 시간에 맞춰 일을 해야 하니 밤낮이 뒤바뀐 채 생활해야 했다.
밤낮이 바뀐 생활을 한다는 게 얼마나 힘든 일인지, 또 건강에도 안 좋은 일인지 알기 때문에 아시아로의 이사는 전적으로 남편의 결정에 따르기로 했다. 그는 고민 끝에, 밤낮 바뀐 생활을 해 본 적이 없어 잘 모르겠지만 일단 시도해 보겠다며, 내가 원하는 바에 따라 아시아로의 이사를 결정했다. 단순히 나를 위해서만은 아니었다. 그 역시 아시아 국가 중 흥미가 생긴 나라가 있었기 때문이다. 바로 말레이시아였다.
우리 둘 다 말레이시아에 한 번도 가본 적은 없었지만, 바로 옆 나라인 싱가포르에 방문해 본 적이 있었고, 당시 깔끔한 미식의 나라라는 인상을 받은 후 장기 거주를 해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었다. 하지만 쉽지 않은 비자 취득과 높은 물가로, 생각을 행동으로 옮기기는 어려운 나라였다. 그에 반해 바로 옆에 있는 말레이시아는 비교적 낮은 물가에 싱가포르 못지않은 인프라로, 오래전부터 많은 외국인들의 선택을 받고 있었다. 내 주변에서도 말레이시아에서 몇 년 간 살아봤거나, 이민을 준비했던 사람들이 있었는데, 하나같이 살기 좋은 곳이라고 칭찬 일색이었다. 알아보니, 우리가 시도해 볼만한 비자 제도도 있었기에, 결국 말레이시아로의 이사를 결정했다.
우리가 신청해 볼 비자는 1년에서 2년 정도 살아볼 수 있는 거주 비자로, 아무리 평이 좋은 나라여도 한 번도 가본 적도 없는 나라를 무턱대고 처음부터 장기 거주지로 꼽기는 어려웠다. 게다가 남편의 몸이 밤낮 바뀐 생활을 얼마나 잘 해낼 지도 미지수였기 때문에, 우리는 미국에 다시 돌아올지도 모를 상황을 생각하며 이사를 준비해야 했다. 그래서 최대 2년간 말레이시아에서 거주 후 다시 미국으로 돌아온다는 게 가장 유력한 계획이었고, 운이 안 좋다면 더 빨리 돌아올 수도, 운이 좋고 말레이시아 생활이 너무나 만족스럽다면 더 있을 방법을 찾아보는 게 그 다음 차안이었다. 이사를 가더라도 다시 미국으로 돌아와야 할지도 모르는 상황이었지만, 다시 오는 한이 있더라도 나는 미국을 잠시라도 떠날 지금의 기회를 놓치고 싶지 않았다. 그만큼 나는 타국으로의 이주를 간절히 원하고 있었다. 그렇게 말레이시아로 다음 거주지를 결정하고, 가족. 친구들에게 알렸고, 그들의 굉장히 극단적인 반응을 마주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