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드득 탁! 탁! 탁! 탁!
사방에서 들리는 둔탁한 소리가 방을 가득 채운다. 여성들이 책상에 열을 맞춰 앉아있고, 그들 앞에는 구형 타자기처럼 생긴 에니그마(회전자로 작동하는 암호 기계의 한 종류)가 놓여있다. 방을 채운 기계소리는 그들이 쉴 새 없이 눌러대는 에니그마의 소리였다. 1943년 영국’ 블렛츨리 파크’에서 2차 세계대전 중 독일의 암호를 해독하는 임무를 수행하던 여성들의 이야기를 담은 [블렛츨리 서클]이란 드라마의 첫 장면이다.
영국 정부는 전쟁 중 20-30세의 미혼여성이나 아이가 없는 과부등을 블렛츨리로 불러들여, 암호를 해독하고 전투 관련 정보를 수집하는 전초기지를 구축하고 그들에게 정보 처리를 위한 막중한 임무를 맡겼다. [블렛츨리 서클]에서 그랬던 것처럼, 전쟁이 끝나고 국가 기밀을 다뤘던 그들은 “국가 기밀유지 각서”를 쓰고 그들이 쓰던 기계를 남자 주먹보다 작게 부수곤 그곳을 떠난다. 주인공 수잔은 아이 둘을 낳고 그들이 학교 갈 나이만큼의 세월을 같이 산 남편에게 조차도 ‘블렛츨리’에서의 자신의 과거를 이야기하지 못하는 삶이자 국가도 역사도 기억해주지 않는 삶을 살아가고 있었다.
종전이 선언된 후, 세계 최초의 전산 노동자인 그들은 경제적 생산 현장에서 버려지게된다. 여성이 열등하다는 근거 없는 믿음, 경제적 노동자의 자리에 있는 여성을 ‘소녀’로 격하시켜 그들의 능력을 평가절하할 뿐만 아니라 국가에서 구체적이고 체계적이고 주도적으로 그들의 “계급”을 만들어 냈다. 영국은 결혼 빗장 (Marriage bar)이 존재했으며, 전쟁으로 인해 부족한 인력을 채우기위한 여성인력 동원을 위해 풀었던 결혼 빗장은 종전으로 인해 다시 부활했다.
‘여성은 남성보다 능력이 낮다’, ‘여성은 결혼을 하면 직장을 그만둔다’, ’단시간 근로할 여성들을 위한 투자를 할 필요다 없다’, ’가정과 아이는 엄마가 돌봐야한다’, ‘기혼 남성은 가정을 부양해야 한기 때문에 임금이 높아야 한다’라는 여성을 사회적, 경제적인 틀에 가두어 버렸다.
여성 기술직과 사무직이 여성화가 되면서, 여성이 일하기 때문에 일이 쉽고, 가치가 없다라고 평가절하함에 따라 조직 내에서 여성의 지위가 낮아지는 악순환이 반복된다. 이러한 값싼 인력으로 취급되는 여성의 모습은 여성으로 성별화 과정이 일어난 직종에서 현재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유리를 손으로 잡고 만들던 시절의 유리 공방은 남성의 세상이었으나, 공장에서 생산하면서 유리산업의 노동자는 여성의 몫이 되었고, 미국의 경우 도시화와 남성우월주의로 인한 임금 불평등은 상대적으로 임금이 낮은 초등학교 교사의 여성화를 야기시켰다.
1971년 영국 여성의 이혼 비율은 60% 이상 늘어났고, 35-49세 집단에서 정점을 찍었다. 정부와 기득권을 가진 이들이 누차히 주장하던 ‘남성 가장의 임금에 기대어 사는 여성’이란 틀을 깨버렸다. 저자는 이 시대의 여성들은 “해방과 평등 사이의 임자 없는 땅에 있었다”라고 표현한다. 여성이 소비의 주체가 되고, 여성이 경제활동의 주체가 되기 시작한다. 유럽 경제 공동체에 가입하기 위해 애쓰던 영국은 바람직한 근대 경제에서는 기회균등과 동일 임금이 보장되어야 한다는 유럽 경제 공동체의 기준을 늦게나마 맞추기에 이른다.
영국은 많은 것을 잃었다.
기술발전으로 인한 근대화를 꿈꾸었던 영국은 기술의 문제가 아닌 성차별의 문제로 인해 경제적, 정치적 타격을 입게된다. 자국의 기업(ICT)을 기득권을 통해 정부에 맞는 기업으로 성장시키려 노력하다 결국 시장성을 따라가지 못해 실패하고 만다. 저자는 영국 정부의 산업을 바라보는 시선을 지적한다. 여성 노동자들이 어떤 특성을 지녔는지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노동 시장의 구조적 속성”이 어떠한가에 대한 질문을 해야 하며, 노동의 시작은 “고용주와 남성 노동자들의 입맛에 맞게 형성”되어 있으며, 이들은 인기 분야의 노동력 형성에 큰 힘을 발휘한다고 이야기한다.
이러한 영국의 과거의 문제는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에게도 현존하는 문제가 되고 있다. 미국의 취업비자를 가장 많이 발급받는 분야가 IT, 그것도 실리콘밸리이다. 기업과 별개로 대학을 통해 받는 취업비자의 경우는 기업에서 받는 임금과 비교해 현저히 적다. IT 분야의 인력 확충과 대학의 연구를 위해 취업비자를 받는 외국인들은 상대적으로 낮은 임금과 비정규직의 불안정성을 늘 가지고 살아간다. 트럼프의 반이민정책에도 불구하고 IT와 대학연구에 종사하는 STEM 분야의 취업비자는 크게 영향을 받지 않는다. 종전 후 영국이 여성들에게 그랬던 것처럼, 미국은 현재 외국인(중국인, 인도인 등)들을 값싼 노동력으로 치부하고 있지 않은가에 대해 저자는 의문을 남긴다.
[블렛츨리 서클]의 주인공 수잔의 남편은 과거의 동료들과 그들이 가진 능력으로 살인사건을 수사하러 다니는 아내를 보고는 이렇게 이야기한다.
“무엇보다 당신은 엄마야. 그게 우선이라고 (Above that, you’re mother. That has to come first)”
“무엇보다 당신은 엄마야. 그게 우선이라고 (Above that, you’re mother. That has to come first)”
그리고, 처음 살인사건을 파헤치기로 결심했던 그의 손엔 “Never be ordinary (절대 평범해지지 말것)!” 라는 글자가 새겨진 동료들과 함께 찍은 ‘블렛츨리’의 사진이 있었다.
이
두 장면에는 가정에서의 가사 양육의 역할과 사회에서의 충분한 능력을 가진 노동자로서의 역할이 투영되어 있다.
여성 스스로가 양팔의 저울을 재기 이전에 가정과 사회와 국가가 그 저울을 한쪽으로 치우치게 만들 권리는 없다.
어쩌면 사진의 써있던 “Never be ordinary”란 의미는 기울어진 사회를 살아가는 여성들이 평평한 사회에서의 “Ordinary”삶을 살고자 하는 의지는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