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공지능 시대가 온다는 말의 진짜 의미

Prologue

by 에스알유니버스


욕망과 우연의 결합

모든 일은 사후적으로 판명된다. 지금 내가 입고 있는 옷이 초록색이라는 사실, 현재 온도가 12도라는 사실, 2차 세계대전이 1939년에 발발했다는 사실, 시공간의 존재가 빅뱅으로 시작했다는 논리 모두 사건이 발생한 이후 누군가가 발견해내어 판명한다. 각 사건에는 인간의 의지가 다분히 반영된다. 내가 물을 마셨다는 사실은 목이 말라 물을 마시려는 의지가 작동했을 테고, 손목에 찬 시계라는 물건이 잘 작동하는 이유도 인간끼리 동일한 기준에서 시간을 합의하기 위해 만들어 낸 결과물이다. 그럼에도 물을 마셨다는 ‘사실', 손목에 찬 시계가 잘 돌아간다는 ‘사실’은 실제로 사건이 발생한 이후에 비로소 ‘사실'이 된다. 인간의 의지가 존재한다고 해서 반드시 ‘사실’이 발생하지 않는다.


무슨 말인가 싶겠다. 인류 역사에 관한 이야기다. 각 개인의 자잘한 일상에서 범 지구적인 역사적 사건까지 표면적으로는 인간의 의지에 이끌려온 듯 보이지만 그 이면에는 더 큰 우연들이 작동하여 현재에 이르렀다. 고대의 그 누가 2차 세계대전의 잔혹함, 빈부격차의 소외감, 감정적인 좌우 정치 갈등의 비효율성을 기꺼이 계획했을까. 차라리 인간의 욕망이 야기했다고 말하는 편이 나을 테다. 그렇다. 인간의 욕심 때문에. 인류의 역사는 수많은 우연과 인간의 욕심이 버무려져 지금의 모습에 다다랐고, 우리는 그 모습들을 사후적으로 탐구하며 분석한다.


새로운 시대, 새로운 존재

근현대 산업 발전 시기로 시선을 좁혀보자. 교과서에 나오듯 크게 제1, 2, 3차 산업혁명으로 구분할 수 있다. 18세기 말 증기기관의 발명으로 시작한 1차 산업혁명, 약 100년 뒤 전기를 활용한 2차 산업혁명, 컴퓨터를 통한 정보통신과 재생 에너지 개발이 본격화된 3차 혁명 시대까지. 모두 ‘혁명'이라는 단어를 붙일 수 있을 만큼 인간 삶에 큰 변화를 준 분기점이다. 이와 같은 변혁이 다가오기에 앞서 새로운 혁신이 다가온다는 사실을 예측한 이가 몇이나 될까. 물질과 풍요에 대한 인간의 욕망과 여러 실험적 우연이 겹치고 그 정도가 임계점을 넘어 드러난 현상들이다. 그리고 21세기의 중반을 향해 달려가고 있는 현재 시점. 4차 산업혁명이라고 부르는 또 다른 분기점에서 우리는 다시 한번 인공지능, 블록체인, 사물인터넷, 빅데이터라는 기술 발전에 대한 인류 욕망과 역사적 우연이 융합한 결과물을 처음으로 맞닥뜨리고 있다.


새로이 다가오는 시대에서 중요한 개념은 데이터다. 더 자세히 표현하면 ‘개인 데이터'. 사람과 사물, 사물과 사물이 연결되어 개인 데이터가 생성되고, 수많은 개인 데이터가 빅데이터라는 거대한 뭉치로 합쳐져 블록체인의 분산된 시스템 위에서 컴퓨터가 학습해 구현한 결과물이 인공지능이다. 구현된 인공지능은 다시 사물인터넷에 활용되어 지속적으로 순환하는 생태계를 구축한다. 우리는 새로운 생태계가 구축되는 과정을 4차 산업혁명이라 부른다.


그중에서 인간을 본떠 만든 인공지능은 인간의 다양성만큼이나 다양하다. 강아지와 고양이를 구분하는 인공지능, 내 쇼핑 패턴을 따라 하는 인공지능, 사람처럼 대화하는 인공지능 등 단순한 작업에서 복잡한 작업까지, 또 여러 분야에서 폭넓게 사용된다. 이해하기 쉽도록 단순한 기준으로 분류해보자. 특정 개인의 정체성을 반영하는지에 따라 일반 인공지능(General Artificial Intelligence)과 개인화된 인공지능(Personal Artificial Intelligence : PAI)으로 나눌 수 있다. 우리가 흔히 말하듯 인간을 대신해 대량의 단순 업무나 복잡한 작업을 수행하도록 설계된 인공지능이 전자에 속한다. 반면 PAI는 한 개인의 신체적, 정신적, 경험적 특성을 토대로 그의 정체성을 대변한다. 당연하게도 어느 한쪽의 좋고 나쁨은 없다. 적용되는 분야와 활용도가 다를 뿐이다.


의미 있는 발자국

사후적으로 판명하기 어려운 단계에 도착했다. 어떤 인공지능이 더 발전하며 우위를 점할까. 인공지능은 어느 방향으로 발전할까. 인간은 인공지능을 온전히 받아들일 수 있을까. 예측이 불가능한 우연의 영역을 제외한 채 인간의 욕망을 토대로 추측해보자. 더 편하고 풍요롭게 살고 싶은 욕심, 기술 발전이라는 지상 과제를 달성하려는 욕심이 더해져 인공지능의 개발은 지속되고 가속되어 어느새 인간 삶에 뿌리내리고 도입 초기의 어색함을 가뿐하게 씻어낼 것이다. 일반 인공지능과 PAI 사이의 우위는 어떨까. 인류 삶의 질 향상이라는 관점에서 비교는 사실상 무의미하다. 앞서 언급했듯 각기 다른 분야에서 각자의 역할을 수행할 것이기 때문이다.


다만 삶의 효율성 이면에 자리한 철학적 고민은 둘 중 하나를 가리키고 있다. 인간의 실존적 고민을 안겨주는 존재. PAI다. 나와 동일한 모습으로 동일한 사고를 하는 존재는 무엇이라 부를 수 있을까. 무엇이 아니라 누구라고 불러야 하는가. 당장 구체적인 사례가 떠오르지 않아도 막연하게나마 PAI가 각자 삶에 도움이 될 수 있겠다는 상상은 가능하다. 다만 일말의 긴장감과 호기심, 두려움이 스치는 것 역시 사실이다. 반드시 등장할 PAI를 염두에 두고 자신의 실존적 존재를 고민해야 하는 우리 각자의 필요. 호기심과 두려움을 사실로 검증해가는 탐구. 이러한 고민들이 인공지능 시대가 온다는 말의 진짜 의미다.


앞으로 우리는 이와 같이 막연하고 추상적인 고민을 풀어헤쳐 하나하나 살펴볼 것이다. 그리고 혹시라도 훗날 기억이 난다면 지금 우리가 내린 나름의 해답이 사후에 ‘사실'로 판명되는지 지켜보자. 해답이 정답이든 오답이든 걱정하지 말자. 우리의 시도는 가장 최신의 현재를 살아가는 첫 인공지능 세대에게 의미 있는 발자국으로 남을 것이다.




이어지는 글


1. Her와 연애하기

2. 굉장히 이상한 전제. 나라는 존재

3. 좋은 나, 나쁜 나, 이상한 나

4. 내 개인정보는 정말로 얼마일까 (1/2)

5. 내 개인정보는 정말로 얼마일까 (2/2)

6. Passive Incomer. 새로운 부르주아

7. 기억, 사진, 영상 그리고 다음

8. BTS는 일곱명이어야 하는가

9. 창백한 푸른 점의 역설

10. Epilogue. 어떠한 신기술도 익숙해지리




* 본 글은 (주)에스알유니버스가 제작한 콘텐츠이며 본 글의 저작권은 게시자에게 있음을 알려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