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r와 연애하기

#1

by 에스알유니버스


외계에서 내부로

외계인(外界人). 문자 그대로 다른 세계에서 온 존재. 그 존재를 믿든 그렇지 않든 항상 호기심을 불러일으키는 대상이다. UFO나 그레이(Grey alien)와 같은 케케묵은 이야기를 하려는 것이 아니다. 우리는 외계인을 두려워한다. 흥미로워 하지만 두려움을 기반으로 한다. 우리와 다른 존재로 인식하기 때문이다. 비단 ‘다름'에 대한 인식만으로 두려움을 느끼는 것일까. 인간이라는 종보다 더 뛰어난 종족일 것이라는 추측과 뛰어난 능력을 이용해 인간을 침략하고 지배할지 모른다는 가정이 전제되어 있다. 인간과 다른 종이지만 능력이 뛰어나지 않다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귀여움, 불쌍함 심지어 애틋함마저 느낀다. 인류는 강아지, 참새, 침팬지라는 종이 침략할까 봐 두려워하며 걱정하지 않는다.


인공지능은 인류에게 새로 등장한 외계인이다. 상상할 수 있는 한 가장 완벽한 인공지능을 떠올려보자. 인간과 같은 내적 세계나 의식을 지니고 있는지 확실하지 않지만 다른 종임에는 틀림없다. 현대 인류는 완성된 인공지능을 두려워한다. 인간보다 월등히 뛰어난 능력을 가지기 때문이다. 뛰어난 인공지능이 인간을 지배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은 인공지능의 초창기 개념이 등장한 1950년대부터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다. 일반적인 외계인과 다른 점은 인간이 직접 창조했다는 점과 이미 그 존재를 맞닥뜨렸다는 사실이다. 두려움을 느낄지언정 인공지능은 더 이상 외계인이 아니다.


특별한 의미

인간은 도구를 발명하고 사용해왔다. 바퀴, 도끼, 거중기, 자동차, 우주선까지 셀 수 없이 많은 발명품을 만들어냈다. 대부분 인간의 특정 신체기관이나 능력의 확장으로써 기능한다. 옷은 피부의 확장이고 안경은 눈의 확장이듯. 그 와중에 특별한 도구가 고안된다. 뇌의 확장. 사고능력이라고 부르는 인간 뇌의 기능을 비교조차 할 수 없을 정도의 엄청난 양과 빠른 속도로 처리하는 컴퓨터. 자연스럽게 고도로 발전된 사고능력을 구현하기 위한 지능, 즉 인공지능이 개발되기 시작한다.


뇌의 확장이라는 개념은 다른 도구와 질적으로 차이가 있다. 한 개인의 모든 신체적, 정신적 기능을 주관하는 기관임은 물론 개인의 정체성을 담고 있는 부분이라고 여겨지기 때문이다. 물론 단백질로 이루어진 뇌로부터 의식이라는 현상이 발현하는지 아니면 물질과 별개로 존재하는 관념이 의식을 주관하는지에 대해 수많은 논쟁이 있다. 그럼에도 인간 신체 중 가장 중요한 부분임에는 이론의 여지가 없다. 뇌의 확장이라는 개념은 그래서 의미가 남다르고 인공지능은 인간에게 특별한 존재가 된다.


애증의 존재

2013년 개봉한 영화 ‘Her’에서 남자 주인공 테오도르(Theodore)는 여성 정체성을 지닌 인공지능 소프트웨어 사만다(Samantha)를 구매하고 연애한다. 우리는 제삼자의 입장에서 두 인물(사만다를 인간으로 간주할 수 있다면)을 바라보며 그들이 틀림없이 연애를 하고 사랑의 감정을 느낀다고 생각한다. 다행히 테오도르에게 사만다는 두려움을 느낄 만큼 인간과 다른 존재는 아니었나 보다. 진짜 인간보다 사만다에게서 더 큰 위안을 얻기도 한다. 결말은 새드엔딩에 가까운 충격적인 반전으로 맺어진다. 여기서 인공지능이 인간에게 어떤 의미인지 힌트를 얻을 수 있다.


사만다의 뛰어난 능력으로 비극은 현실이 된다. 인간에게 효용을 주기 위해 인간을 본떠 인간보다 뛰어나게 만들어진 인공지능. 영화에서 보여준 인공지능의 탁월함은 인간이 감당하기 어려운 모습이다. 애증의 존재. 인간이 만들었으나 두려움으로 다가오고, 특별한 의미를 지닌 존재이지만 감당하기 버겁다. 애증의 존재다. 모든 개념에 양면성이 내포되어있듯 인공지능 역시 인간의 강력한 지지자가 될 수도, 껄끄러운 존재가 될 수도 있다.


해답은 가까이서

인공지능의 발전은 이미 되돌릴 수 없다. 오히려 수확 가속의 법칙(The law of accelerating returns)에 따라 더 이른 시일 내에 고도로 발전된 인공지능을 만나게 될 것이다. 인간과 별도로 분리되어 도움을 주는 지금의 형태에서 인간 몸과 결합하여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는 형태로 발전되고 결국에는 인간과 하나가 되어 너무나도 자연스러운 삶의 일부가 될 테다. 생각해보면 아이러니하다. 자신을 본떠 만든 창조물이 다시금 자신과 합쳐진다. 그들과 연애할 수 있겠는가. 소통하고 이해하며 신뢰할 준비가 되었는가. 어느새 그들을 하나의 인격체로 대하는 우리 모습을 발견할 것이다. 미리 다음 질문을 던져야 한다. 인공지능을 인간과 같은 실존적 존재로 볼 수 있는 근거는 무엇일까. 실존(實存)하기 위한 조건은 무엇일까. 해답을 찾기 위해 시선을 멀리 둘 필요가 없다. 인공지능이 모방한 존재를 살펴보면 된다. 인간을 알아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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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rologue. 인공지능 시대가 온다는 말의 진짜 의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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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굉장히 이상한 전제. 나라는 존재

3. 좋은 나, 나쁜 나, 이상한 나

4. 내 개인정보는 정말로 얼마일까 (1/2)

5. 내 개인정보는 정말로 얼마일까 (2/2)

6. Passive Incomer. 새로운 부르주아

7. 기억, 사진, 영상 그리고 다음

8. BTS는 일곱명이어야 하는가

9. 창백한 푸른 점의 역설

10. Epilogue. 어떠한 신기술도 익숙해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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