굉장히 이상한 전제, 나라는 존재

#2

by 에스알유니버스


이상한 존재

생각해보면 ‘나'라는 존재는 이상하다. 어떤 부분, 어느 범위까지 ‘나'라고 규정할 수 있는가. 물질세계를 살아가는 인간의 특성상 우리의 신체를 먼저 떠올릴 수 있다. 머리끝에서 발끝까지, 왼손 중지 끝에서 오른손 중지 끝까지. 100조 개의 세포로 구성된 인체를 ‘나'라고 볼 수 있다. 물론 정신, 의식이라고 부르는 관념도 빼놓을 수 없다. 뇌사상태에 빠진 사람을 살아있다고 볼 수 있는지에 대한 논의는 매번 언급되는 사례다. ‘나'라는 존재는 어떤 부분까지인가. 또는 어디서 발현하는가. 내적 세계라는 나만의 우주를 펼쳐내는 의식은 무엇인가. 먼 옛날 아리스토텔레스는 인간의 영혼이 심장에 담겨있다고 주장했지만 오늘날 우리는 그보다 뇌와 연관성이 깊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지능 너머의 의식

의식은 지능과 구분된다. 현재의 기술로 지능은 구현할 수 있지만 의식을 구현할 수 있는지는 불명확하다. 사실 의식이 무엇인가에 대해서도 사람들마다 다른 정의를 내린다. 크게 두 개념으로 나누어 본다. 신체와 구별되는 영혼이 동시에 존재한다는 이원론(二元論)으로 인간을 바라보는 사람과 물질이든 관념이든 단 하나의 개념에서 시작되었다는 일원론(一元論)으로 바라보는 사람. 또 의식을 영혼으로 부르는 사람, 영혼이라는 단어의 종교적 색채가 싫어 그저 의식이라고 부르는 사람, 맥주를 따를 때 생기는 거품처럼 의식은 물질의 부산물이라고 정의하는 사람, 이원론을 넘어 삼원론 등 다원론을 주장하는 사람 등 아마 인간 수만큼 의식의 정의가 나뉠 테다.

인간의 뇌를 모사한 인공지능을 떠올려보면 이해하기 쉽다. 인간 뇌 구조와 비슷하게 여러 신경세포(Neuron)가 연결되어 지능을 가지고 사고(思考) 할 수 있지만 인간처럼 주체성을 가진 의식을 지니고서 실존(實存) 하고 있는지는 의문이다. 인공지능이 맛을 판별하는 기능을 뛰어넘어 음미할 수 있을까. 행복이나 슬픔을 학습된 언어나 행동으로 표현하는 기능을 뛰어넘어 내면으로 곱씹어 온전히 느낄 수 있을까. 고성능 양자 컴퓨터에 나의 모든 지식과 경험 데이터를 옮겨 나와 똑같이 생각하는 인공지능을 만든다면 그 존재는 ‘나'인가. 만약 의식을 가지고 있다고 간주한다면 인공지능의 전원을 끄는 행위는 살생(殺生)이다.


여러 조건의 합

정체성이라는 단어로 논의를 좁혀보자. 사실 의식의 실체는 인간이 평생에 걸쳐 고민해야 하는 주제다. 반면 정체성의 개념은 상대적으로 명확하다. 의식과 지능을 구분했듯 정체성 역시 의식과 구분된다. ‘한 존재가 해당 존재이기 위한 여러 조건의 합'을 정체성으로 정의한다면 ‘조건의 합을 자신으로 인지하는 주체'를 의식으로 규정할 수 있다. 해당 조건들이 자기 스스로에 대한 내용이라면 자아 정체성이라 부르고 성(Gender)에 초점 맞춰지면 성 정체성으로 부른다. 머리카락, 지문, 발톱 하나하나, 내가 의식적으로 기억하지 못하는 어린 시절부터 현재까지의 경험과 사고했던 내용들이 모두 합쳐져 나의 정체성을 구성하고 있는 셈이다.


정체성 해부학

거꾸로 생각해보자. 하나의 정체성이 여러 조건들의 합이라면 하나의 정체성을 여러 부분으로 쪼갤 수도 있다. 목소리, 얼굴, 특유의 제스처, 쇼핑 패턴, 글 쓰는 스타일, 사고방식 등은 모두 정체성을 구성하는 여러 요소다. ‘한 명의 인간을 규정하는 범위는 어디까지인가’라는 질문에 대한 힌트를 이 지점에서 얻을 수 있다. 모습과 기능을 각기 떼어낸 다음 각 부분이 본체가 지니고 있던 특징을 드러낸다면 부분적으로나마 본체의 정체성을 반영한다고 말할 수 있다. 누군가의 외모를 보며 어떤 연예인과 닮았다고 말하거나 한 편의 글을 읽고서 어떤 작가의 문체와 비슷하다고 생각하는 것보다 이에 속한다.


또 다른 나

인공지능의 개발 단계도 맥을 같이 한다. 인공지능은 일반적인 인간 군상의 평균치를 구현하는 수준을 넘어 각 개인의 정체성을 반영하는 형태로 발전할 것이다. 승용차와 트럭을 구분하거나 온라인 쇼핑몰의 수요 예측, 유전자 염기 서열을 분석하는 기능은 전문성의 심도가 다를 뿐 모두 전자에 속한다. 나의 목소리를 학습해 나와 똑같이 말하고 나의 행동 패턴을 학습해 나와 똑같이 행동하는 인공지능이 추가적으로 등장하게 된다. 나의 정체성을 구성하는 조건의 수만큼 여러 인공지능이 등장하고 그들은 합쳐질 것이다. 또 다른 ‘나'가 탄생한다.


탈옥 시도

이쯤 되면 뒷목이 서늘하다. 내 존재를 의심받는 느낌이다. 아니 그보다 새로운 존재의 목적성에 의심이 간다. 왜 만들어질까. 인류에게 어떤 가치를 가져다주는가. 하나 더 고려해야 할 부분이 있다. 현재의 내가 가지고 있는 정체성은 과거부터 현재까지, 여러 곳에서 수많은 상황을 통해 형성되었기에 변해왔고, 변하고 있고, 변할 것이다. 나를 모사한 인공지능도 마찬가지일 테다. 더 근본적으로 인간에게 어떤 의미로 다가오는가. 질문에 대한 답을 한마디로 표현하면 다음과 같다. 시공간이라는 물리 법칙에서 탈출하기 위한 발로(發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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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rologue. 인공지능 시대가 온다는 말의 진짜 의미


1. Her와 연애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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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내 개인정보는 정말로 얼마일까 (1/2)

5. 내 개인정보는 정말로 얼마일까 (2/2)

6. Passive Incomer. 새로운 부르주아

7. 기억, 사진, 영상 그리고 다음

8. BTS는 일곱명이어야 하는가

9. 창백한 푸른 점의 역설

10. Epilogue. 어떠한 신기술도 익숙해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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