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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틸 Jan 28. 2023

6. 로또와 운세

1년에 한두 번쯤 로또를 사고 잠깐씩 설레는 일을 반복한다. 점집에 한 번쯤 가고 싶긴 하나 신내림 받은 무당집은 기운이 약한 사람이 가면 귀신 옮아온다는 이야기를 듣고 섣불리 갈 수는 없어 네이버나 다음의 오늘의 운세를 이용한다. 로또는 항상 꽝이고, 운세 이거 뭐야? 싶은 게 주로 나오지만 말이다. 혹시나 하는 마음, 한 치 앞을 알고 싶은 어리석은 욕심은 잘 버려지지 않는다. 로또 1게임 구매 시 번호 6개가 다 맞아서 1등 할 확률은 1/8,145,060이란다. 그거 할 돈으로 커피나 한잔 더 사 먹으라는 사람들의 말도 일리는 있다. 그래도 혹시 모르지 않나. 그 확률의 1이 내가 될지, 그런 운명을 타고났을지. 


가만히 생각해 보니, 내가 이 두 가지의 찾을 때는 현재가 영 마음대로 풀리지 않을 때였다.하고 싶고, 하고자 하는 일은 있는데, 확신이 없을 때. 돈이라도 많아서 몇 번의 실패쯤은 인생에 큰 영향이 없기를 바랄 때. 운명의 신이 하늘에서 내려주는 횡재수가 나에게 점지되어, 로또 당첨금이라는 현물로 내려지기를 간절히 바란다. 그리고 머릿속으로 로또에 당첨되면 뭘 할지 궁리해본다. 


일단 주택담보대출부터 갚고, 차를 한 대 사야지. 요즘 당첨금 추세로는 새 아파트 이사까지는 무리겠지? 그럼, 책장 리모델링은 하자. 마지막 남은 육아휴직을 하고, 유럽 여행을 떠나 제일 먼저 함부르크로 달려가 몽블랑 하우스에 가서, <몽블랑 작가 에디션 아서 코난 도일 경 리미티드 에디션 만년필>을 사겠어. 그러려면 독일어를 좀 공부해야 할까? 영어도 안 되는데? 일단 영어부터 공부해놔야 하나? 이걸 다 하고도 동네 책방 열 정도로 돈이 남으면 좋겠는데, 그럼, 휴직이 아니라 퇴직을 할 수 있을 텐데. 집 앞 상가에 작은 책방을 열어 독서모임도 하고 글쓰기 모임도 하고 작은 북토크도 열어 보고, 동네 사랑방으로 만들고 싶다. 그나저나 지난주 당첨금은 얼마였지? 16억이 넘네. 우와. 대박. 당첨된 사람은 정말 좋겠다. 오늘은 토요일. 지금이라도 나가서 로또를 사야 하나. 일단 꿈은 안 꿨는데 오늘 재복이 들어올 운세가 있었으면. 헛! 무위도식이라니! 빈둥빈둥 살 수 있는 기회가 온다는 거야? 아니야? 애매하네. 돈이 들어온다는 말은 없다. 영하 10도의 날씨를 뚫고 로또 사러 나갈 가치가 있는 건지, 없는 건지.


생각하는 동안 내가 진짜 로또 당첨됐다는 느낌이 들어 심장이 쿵쾅거렸다. 운세를 검색하고 로또 1등 당첨 시 행동 요령을 검색해 봤다. 혼자 가야 하나 어쩌나 고민되고, 농협 통장 없어도 괜찮나 싶기도 하고, 가면 새로 만들어 줄 수 있겠구나 싶다가, 이거 가족들에게 알렸다가 분란만 생기면 어떻게 하나 싶었다. 로또 1등의 저주 뭐 그런 것도 기사에서 본 적이 있는데. 일단 비밀로 하고 1년 정도 아무 일 없이 살아야 할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나는 좋고 나쁜 게 얼굴에 확 티가 나는데 가능할까? 조금씩 현실 감각이 돌아온다. 로또 사지도 않아 놓고는 뭔 헛꿈, 헛걱정인가. 좋다 말았다. 몽블랑 아서 코난 도일경 에디션이여~.


사실 직장 동료에게 철학관 명함을 받아 놓고도 선뜻 가지는 못했다. 내 인생에 횡재수 따윈 존재하지 않는다고 말하면 어쩌나. 로또 당첨을 예정하고 잠깐씩 행복한 미래를 상상하는 즐거움까지 없어질 것이다. 마음속에 품고 있는 크고 작은 욕망의 실현을 확언해 주는 말을 듣게 되면 좋겠지만, 하지 말라고 한다면 매우 실망하고 말 것이다. 그렇다고 하고 싶은 걸 하지 않을 것도 아니면서, 일이 안 되면 점괘가 떠오를 것이고 운명이라는 굴레에 발목을 잡힌 기분이 들 것 같다. 가뜩이나 비관적인데 보탤 일을 만들지 않는 게 좋겠다. 역시 네이버나 다음 운세 정도에 만족해야겠다. 


로또와 운세. 바득바득 끊임없이 움직이며 살아야 하는 현재를 오늘의 운세처럼 ‘무위도식’하며 살고자 하는 욕심을 이루어 줄 수 있는 환상. 안 될 것, 의미 없는 것이라는 것을 알고 있으면서도 그래도 혹시나, 그런 혹시나 하는 설렘을 만들어 준다. 이 두 가지를 품을 때면 내가 지금 하고 싶은 것, 갖고 싶은 것, 중요하게 생각하는 게 뭔지도 알게 된다. 나는 지금 만년필에 꽂혀 있고, 유럽에 가고 싶으며, 휴직하고 싶고, 서점을 열어 책 좋아하는 사람들과 만나서 수다 꽃을 피우고 싶다는 것. 


쓰고 보니, 로또가 아니어도, 운명까지 걸지도 않아도 할 수 있는 일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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