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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서은 Jun 24. 2024

라깡과 하이데거

라캉에 대한 여러 학자들의 평가는 프로이트의 정신분석학을 언어학으로 전복시켰다는 것으로 요약될 수 있다. 실제로 라캉은 기호-언어를 기표(signifiant)와 기의(signifié)로 구분했다는 점에서 페르디낭 드 소쉬르의 언어학을, 프로이트의 억압과 전치를 은유(métaphore)와 환유(métonymie)로 설명했다는 점에서 로만 야콥슨의 언어학을 전적으로 수용 및 변형하여 자신의 이론을 구축했다. 물론 라캉의 사상에 영향을 미친 것이 비단 언어학자들뿐만은 아니다. 그 외에도 라캉은 헤겔과 레비-스트로스, 마르크스 등 다양한 학자들의 영향 아래 있으며 거기에는 하이데거 역시 포함된다. 그러나 라캉이 하이데거로부터 받은 영향에 대해서는 상대적으로 조명 되지 않고 있다. 


실제로 라캉은 하이데거의 철학에 많은 관심을 보였으며, 1955년 하이데거를 만나기 위해 프라이부르크를 방문했을 때 하이데거의 논문인 「로고스logos」를 프랑스어로 번역할 수 있도록 허락을 구하기도 했었다.1) 헤라클레이토스 단편 제50을 분석한 이 논문에서 하이데거는 퓌시스와 연관된 것으로서 로고스의 본래적인 의미를 드러내 보이고자 한다. 기본적으로 “로고스는 발언함으로서의 레게인과 발언된 것으로서의 레고메논(λεγόμενον)을 뜻”하는데, 하이데거는 여기에 “독일어에서 매우 유사하게 발음되는 “레겐(legen[놓다, 모아놓다, 모아두다])”이라는 낱말이 의미하는 바”가 근원적으로 포함되어 있음을 덧붙인다.2) 말함과 모아놓다라는 두 가지 의미가 동시에 들어 있는 것으로서의 레게인, 즉 “언어의 ‘말함’은 현존하는 것의 비은폐성으로부터 스스로 생기고 현존하는 것의 앞에 놓여 있음에 따라 함께-앞에-놓여-있게-함으로서 규정된다.”3) “근원적인 레게인, 즉 모아둠은 일찍이 비은폐된 모든 것을 철저히 다스리는 방식 속에서 말함과 대화함으로서 스스로를 펼친다.”4) 말하는 행위 속에서 존재자의 본래적인 존재함은 펼쳐지고 탈은폐된다. 더불어 로고스는 함께-앞에-놓여-있게-함인데 이렇게 한 데 모아두는 것은 단순히 쌓아둠이 아니라 참답게-보존함을 의미한다.5) 따라서 레게인과 레겐의 의미를 모두 가진 로고스는 현존하는 것들의 존재함을 참답게 보존하는 동시에 말하는 행위 속에서 탈은폐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또한 로고스는 하이데거가 『존재와 시간』 「제2장 제7절 탐구의 현상학적 방법」에서 다루는 개념이기도 하다. 『존재와 시간』에서 로고스는 “아포판시스로서의 로고스”이며 “이야기되고 있는 그것을 그것 자체에서부터(ἀπό… … ) “보이도록 해준다””6)는 의미를 지닌다. 그러나 이러한 로고스가 항상 참되게 무언가를 그 자체에서부터 보이도록 해주는 것은 아니다. “로고스는 참이거나 거짓일 수 있다.”7) 여기서 참과 거짓은 언어와 사태의 일치 여부를 의미하지 않는다. 참을 이야기하는 로고스는 존재자를 그것의 은폐되어 있음으로부터 끄집어 내어 보여주는 것이다. 동시에 거짓으로서의 로고스는 존재자를 그것이 아닌 어떤 것으로서 내놓음을 의미한다. 이러한 로고스는 『존재와 시간』에서 ‘말(Rede)’로 번역되며, 언어의 실존론적-존재론적 기초로서의 말 개념이 『존재와 시간』 제33절과 제34절에서 상세히 다루어진다. “현존재의 열어밝혀져 있음의 실존론적 구성틀로서 말은 현존재의 실존을 구성하고 있다.”8) 그런데 현존재의 실존을 구성하고 있는 말은 비본래적인 양태로 출현할 수도 있다. 이것을 잡담(Gerede)이라고 부른다. “이 말은 잡담이 되고, 이러한 잡담으로서 세계-내-존재를 분류된 이해 안에 열어놓기는커녕 오히려 닫아버리고 세계내부적인 존재자를 은폐할 수 있는 가능성을 가지고 있다.”9) 잡담은 평균적인 이해가능성 속에서 이루어지는 말이다. 잡담은 은폐된 것을 드러내 보이는 말이 아니라 그저 사람들이 이야기하는 바를 “퍼뜨려 말하고 뒤따라 말하는 방법”10)으로 근원적인 것을 은폐하는 말이다.


바로 여기에서 하이데거와 라캉이 연결될 수 있는 지점을 발견할 수 있다. 1953년 로마대학교 심리학연구소(이하 로마 강연)에서 발표한 내용이자 『에크리』에 수록된 「정신분석에서의 말과 언어의 기능과 장」에서 라캉은 ‘텅 빈 말(parole vide)’과 ‘꽉 찬 말(parole plaine)’을 구분한다. 프랑스 정신분석학자 엘리자베스 루디네스코는 이 로마 강연이 소쉬르, 레비-스트로스, 하이데거의 영향 아래 쓰여졌다고 평가한다.11) 텅 빈 말은 눈 앞에 있는 소타자들 사이에서 오가는 말로, 거기에서 “주체는 자기 자신의 존재로부터의 언제나 더 큰 박탈 속에서 거기에[불만족에–필자 추가] 속박”[번역 일부 수정]12)된다. 텅 빈 말 속에서 인간은 주체가 아닌 자아로 자리잡게 된다. 라캉에게 자아란 상상계(imaginaire)에 속하며, 타자적인 이미지를 통해 구성되는 것이다. 여기서 ‘상상’이라는 말은 어떤 허구나 거짓, 가상을 의미하지 않는다. 그것은 “이미지들을 매개로 구성되는 주체의 현실 세계를 말하며 의미의 세계이기도 하다.”13) 거울 속에 비춰진 이미지는 ‘나’가 아니다. 그것은 ‘타자(autre)’이다. 그러나 인간은 내가 아닌 그 이미지를 마치 ‘나’인 것처럼 받아들이고 이 이미지를 중심으로 자기 자신과 의미의 세계를 구성한다. 자아는 “상상적인 것 속에서 자기가 만든 것œuvre에 다름 아니며, 이처럼 자기가 만든 것이 자기에게서 모든 확신을 기만한다.”14) 상상계적 자아의 기만 속에서 주체는 자신의 존재로부터 박탈되고 소외(aliénation)를 경험하게 된다. 


반면 꽉 찬 말은 환자의 역사 속에서 트라우마적인 사건, 병의 원인으로 작동하는 사건을 언어화(mise en paroles)함으로써 증상을 제거하는 말을 가리킨다.15) 주체는 사건을 언어화하는 행위를 통해 현재 본인의 근원에 대해서 이야기한다. 라깡은 이렇게 현재 이루어지는 꽉 찬 말 속에서 “드러냄의 진리”가 정초된다고 보았다.16) 꽉 찬 말의 효과는 “과거의 우연한 사건들에 미래의 필연성들의 의미[방향]를 부여함으로써 그러한 사건들을 재정리하는 데”17) 있다. 다시 말해 꽉 찬 말의 효과는 우연적으로 존재하는 과거의 사건들에 필연성을 부여하고 새롭게 정리하는 것이다. 이 필연성은 원래부터 존재했지만 드러나지 않았던 필연성이 아니라, 미래로부터 부여되는 필연성이다. 의미 없던 과거의 사건들이 재정립되면서 사건들 간의 어떤 필연성이 사후적으로 생겨난다. 이 대목에서 라캉은 하이데거를 직접적으로 언급한다.      


하이데거의 언어를 빌려 앞의 두 기억은 주체를 기재旣在, gewesend로, 즉 그렇게 있어왔던 것으로 구성한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시간화의 내적 통일성 속에서 현재 존재하는 것[존재자]l’étant은 기재해온 것들des ayant été의 수렴convergence을 표시한다. 다시 말해 순간들 중의 어느 한 순간 이후로 다른 (우연한) 만남들이 존재해 왔다고 가정한다면, 그 (만남들) 속에서 그것을 완전히 다르게 존재했던 것으로 만드는 또 다른 존재자가 출현했을 것이다.(() 필자 추가, 번역 일부 수정. 『에크리』, p.299)     


시간화의 내적인 통일성 속에서 존재자는 기재해온 것들을 하나의 서사로 집중시킨다. 이러한 통합된 이해 속에서 존재자는 과거를 받아들이고 자기 자신을 구성한다. 그런데 라캉은 과거의 순간들 중 어느 한 순간이 이전과는 다른 순간과 만나게 된다면, 지금과는 다른 또 다른 존재자가 출현했을 것이라고 말한다. 꽉 찬 말은 “사건이 선택했던 각각의 교차점에서 제외된 과거의 힘들의 부분을 증언할 수 있다.”18) 즉 꽉 찬 말은 하나의 서사를 구축하기 위한 통일성에서 배제된 과거를 증언한다. 배제된 과거는 발화 행위 속에서 농담, 말실수, 꿈 등과 같은 형태로 등장한다. 과거를 새롭게 이해하고 새로운 주체가 출현할 수 있는 가능성은 꽉 찬 말의 언표 행위에서 드러난다. 꽉 찬 말은 배제된 것들을 드러내는 진리의 말이다. 하이데거의 참된 로고스가 일치의 문제가 아니라 드러냄의 문제였던 것처럼, 꽉 찬 말을 통한 주체의 이야기 속에서 중요한 것은 실제로 있었는지의 여부를 따지는 “현실(réalité)이 아니라 진리(vérité)”19)이다. 기재해온 것들과 배제된 것들을 연결시키고 거기에 새로운 질서, 미래로부터 오는 필연성을 부여함으로써 또 다른 존재자의 출현은 가능해진다. 과거를 재발견하고 새로이 정립하는 과정을 통해 주체는 새로운 주체로 나아갈 수 있다. 그리고 바로 이것이 앞서 이야기 한 꽉 찬 말의 효과이다. 

그런데 미래로부터 주어지는 필연성, 과거의 사건, 현재 발화하는 꽉 찬 말의 이러한 구도는 프로이트의 사후성’ 개념에서 착안한 것일 테지만 하이데거의 시간론과도 매우 유사하다하이데거의 시간론은 도래기재순간으로 이루어진다도래는 현존재가 그의 가장 고유한 존재가능에서 자기 자신에게로 다가오는 그런 옴”20)을 의미한다여기서 현존재의 가장 고유한 존재가능은 죽음을 의미한다. “현존재가 도래적(미래적)이 된다는 것은현존재가 앞질러 가봄로써 자신의 가장 고유한 존재 가능과 직면하고이를 통해 본래적 시간성을 획득할 가능성을 가지게 된다는 것을 뜻한다.”21) 기재는 있어 왔던 것이지만 지나간 과거를 의미하지 않는다. “기재[존재해옴]는 (...) 도래에서 발원”22)한다자신의 고유한 가능성을 향해 앞질러 달려가 봄으로써 도래적이 된 현존재는 자신의 가장 고유한 기재(旣在)[존재해옴]로 이해하며 되돌아”23)온다즉 도래적이 된 현존재는 죽음의 가능성을 향해 앞질러 달려가봄을 통해서 자신의 고유한 존재해 옴을 새롭게 이해할 수 있다죽음의 가능성을 사유하는 것을 통해 과거는 새롭게 이해되고 이렇게 본래적으로 이해된 존재해 옴이 바로 기재이다순간은 기재와 도래를 통해 본래적인 시간성에서 견지되고 있는따라서 본래적인 현재”24)를 의미한다도래기재순간은 각각 분리된 시간이 아니라 통일된 근원적인 시간성을 이룬다


정리를 해보자. 하이데거의 말이 실존론적-존재론적 구성틀로서 현존재의 실존을 구성하거나 또는 잡담으로 근원적인 것을 은폐할 수 있는 것처럼 라캉의 말 역시 존재의 결여(manque-à-être)와 소외를 야기하는 텅 빈 말과 배제되었던 진리를 드러내는 꽉 찬 말로 구분할 수 있다. 물론 엄밀히 말해 라캉의 이러한 논의가 하이데거의 존재론과 같다고 할 수는 없을 것이다. 하이데거는 비본래적인 존재함에서 본래적인 존재함으로의 변양이 가능하다고 보았지만 라캉은 상징계 내부에 자리 잡은 존재의 결여를 되찾을 수 있다고 보지 않았다. 존재에의 결여를 보충받으려는 시도 속에서 욕망이 탄생하고 그렇기에 욕망은 ‘존재에 대한 열정(passions de l’être)’25)이다. 회복할 수 없는 결여에 대한 열망이 욕망을 이끈다. 이런 점에서 본 논문의 결론이 하이데거의 존재론과 라캉의 정신분석 이론을 등치시키는 것으로 귀결되지는 않을 테지만, 이 말이 하이데거가 라캉에게 끼친 영향을 과소평가해도 됨을 의미하지도 않을 것이다. 많은 부분에서 라캉은 언어가 “주체와 존재의 관계와 관련되어”26) 있다고 언급하거나, “인간이 시니피앙과 맺는 관계를 건드리면, (...) 우리는 우리 존재의 계선줄들을 수정”27)할 수 있다고 말하는 등 언어와 존재, 언어와 진리를 연결짓는다. 라깡의 초기 이론은 분명 소쉬르와 야콥슨과 같은 언어학자로부터 영향을 받았지만 하이데거의 진리 개념, 특히 언어를 통해 드러나는 진리 개념을 경유하지 않고서는 온전히 이해될 수 없을 것이다.     



1) E. 루디네스코, 『자크 라캉1』, 양녕자 옮김, 새물결, 2000, p.371-372. 라깡이 번역한「로고스」는 1956년 SFP(Société fracaise de psychanalyse, 프랑스정신분석학회)의 학술지인 Psychanalyse의 창간호에 실리게 되며, 이후 1958년  앙드레 프레오André Préau의 번역이 갈리마르 출판사에서 출간된다. 

2) M. 하이데거, 「로고스」, 『강연과 논문』, 이기상, 신상희, 박찬국 옮김, 이학사, 2022, p.272.

3) M. 하이데거, 「로고스」, 『강연과 논문』, p.279.

4) M. 하이데거, 「로고스」, 『강연과 논문』, 278.

5) M. 하이데거, 「로고스」, 『강연과 논문』, 274.

6) M. 하이데거, 『존재와 시간』, 이기상 옮김, 까치글방, p.54.

7) M. 하이데거, 『존재와 시간』, p.55.

8) M. 하이데거, 『존재와 시간』, p.222.

9) M. 하이데거, 『존재와 시간』, p.232.

10) M. 하이데거, 『존재와 시간』, p.231.

11) E. Roudinesco, Jacques Lacan & Co._a history of psychoanalysis in France, 1925-1985, Chicago: University of Chicago Press, 1990, p.297. 그러나 루디네스코는 하이데거의 영향이 메아리, 어떤 울림, 모방하고자 하는 경향, 그리고 매혹이었을 뿐 그 이상은 아니었다고 일축한다.

12) J. 라캉, 「정신분석에서의 말과 언어의 기능과 장」, 『에크리』, 홍준기, 이종영, 조형준, 김대진 옮김, 새물결, 2019, p.292.

13) 김석, 『에크리: 라캉으로 이끄는 마법의 문자들』, 살림, 2007, p.150.

14) J. 라캉, 「정신분석에서의 말과 언어의 기능과 장」, 『에크리』, p.292.

15) J. 라캉, 「정신분석에서의 말과 언어의 기능과 장」, 『에크리』, p.298.

16) J. 라캉, 「정신분석에서의 말과 언어의 기능과 장」, 『에크리』, p.299.

17) J. 라캉, 「정신분석에서의 말과 언어의 기능과 장」, 『에크리』, p.300.

18) J. 라캉, 「정신분석에서의 말과 언어의 기능과 장」, 『에크리』, p.300.

19) J. Lacan, Fonction et champ de la parole et du langage en psychanalyse, Écrits, Paris: Seuil, 1966, p.256.

20) M. 하이데거, 『존재와 시간』, p.431~432.

21) 서동욱, 『차이와 반복의 사상: 들뢰즈와 하이데거』, 서강대학교출판부, 2023, p.84.

22) M. 하이데거, 『존재와 시간』, p.432.

23) M. 하이데거, 『존재와 시간』, p.432.

24) M. 하이데거, 『존재와 시간』, p.447.

25) J. Lacan, La direction de la cure, Écrits, p.629.

26) J. 라캉, 「프로이트의 『부인』에 관한 이폴리트의 논평에 대한 응답」, 『에크리』, p.453.

27) J. 라캉, 「무의식에서의 문자의 심급 또는 프로이트 이후의 이성」, 『에크리』, p.6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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