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론 아무 기대감 없이...
가드닝을 하면 흔히 늘 기다감으로 막 신이 난다. 씨앗을 심어놓으면 기대감으로 가득해서 자주 들여다보게 되고, 싹이 나오면 또 그것을 기대감으로 바라보게 된다. 큰 화분으로 옮겨 심고 나서는 얼마나 자랄까 또 기대감을 갖고, 땅으로 옮겨심으면 그것의 정착에 대한 기대감을 갖게 된다.
벌레나 병과 사투를 벌일 때에도, 새로운 치료법을 찾아내면 기대감으로 마법의 묘약을 만들고, 분무 후 기대감으로 결과를 기다린다.
최근에 모종을 만들겠다고 트레이에 가득 씨를 심고 나서도 기대감으로 들여다보고 들락날락했는데, 막상 이 금귤은 사실상 큰 기대를 하지 않았다. 그래서 아무 과정샷도 없다. 이렇게 무심할 수가!
한 달 전쯤 한인마트에 갔는데 모처럼 금귤이 있었다. 오랜만에 먹고 싶은 마음에 한 팩 사 와서 야금야금 먹다가 문득, 이 많은 씨앗을 심으면 어떨까 싶었다. 아니, 사실은 딸이 심어보자고 했다.
예전에 레몬으로 시도를 했다가 실패했던 기억이 났다. 물에 적신 키친타월에서 발아를 하라고 해서 시도했었는데 하나도 싹이 나오지 않았다. 아니 어쩌면 내 인내심이 충분하지 않았던 것인지도 모른다. 그래서 폭풍 검색을 했더니 레몬 씨앗은 마르면 안 된다는 글을 봤다. 촉촉한 상태일 때 바로 심으라고... 나는 씻어서 말려뒀던 거 같다. 그리고 다시 적셨던 것으로 기억난다.
레몬트리는 그 이후에 작은 것을 하나 구입했기 때문에 별 생각이 없었지만, 금귤은 구하기 힘들 것 같으니 심어볼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딸은 신이 나서 방금 먹은 금귤의 씨앗을 골랐고, 그중 튼실하게 생긴 3개를 골라 살짝 물로 헹궈서 바로 화분에 넣었다.
흙은 상토로 하면 좋을 듯하다. 나는 그냥 집에서 만든 발아용 흙에 넣었다. 물은 촉촉하게, 그러나 흥건하지 않게 하고, 따뜻한 딸의 방에 두었다. 딸의 방이 모서리에 있어서 추워서 얼마 전부터 난로를 사서 넣어줬더니 이제 그 방이 제일 따뜻하다. 그래서 내가 씨를 심으면 그 방이 발아실로 이용된다!
기다려도 싹이 트지 않길래, 안 되는구나 하고 포기를 하고 있던 차에 뾰로롱! 싹이 올라왔다. 너무 귀여운 싹이었다! 시트러스 계열이 그렇듯이 잎사귀가 아주 윤기가 나는 것이 예뻤다.
알고 보니 금귤 싹은 나는 데 오래 걸린단다. 물론 우리 집처럼 이렇게 따뜻하게 해 주면 더 빨리 나오는 것 같다. 두 달 걸렸다는 사람도 있더라.
혹자는 키친타월에 적셔서 뿌리가 나온 다음에 심기도 한다던데, 그럴 경우 곰팡이 관리가 어렵다. 나는 흙에서 직접 발아하는 것을 선호한다. 그리고 껍질을 까서 심기도 하는데, 잘못하면 씨앗을 다치니 굳이 그렇게 하지 않는 것이 좋을것 같다.
나름의 팁을 정리하자면,
1. 먹자마자 바로 한 번 헹궈서 튼실한 씨앗으로 골라서 마르기 전에 심는다.
2. 화분에는 상토나, 비료기 적고 물빠짐 좋은 흙을 사용하여, 촉촉하게 관리한다.
3. 따뜻한 곳에 두면 발아가 더 빨리 된다.
4. 발아 후에는 해가 잘 드는 따뜻한 곳에 두면 좋다.
금귤은 지난번 싹틔운 밤나무와 달리 무척 천천히 자란다. 밤나무는 자라는 게 보이는데 말이다. 열매는 3년생 이상의 가지에서 열린다고 하니, 결실을 보려면 대략 5년은 있어야 하지 않을까 싶다.
이 녀석이 진짜로 잘 커서 열매까지 맺게 될지 모르겠지만, 일단 귀여우니까 잘 키워보련다. 열대성 과일이니까 어느 정도 힘이 될 때까지는 화분에서 곱게 키우다가 그 이후에 땅에 심으면 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