벼르던 텃밭을 설계하고 설치하다, 인간승리!
작년에 우리 집 마당을 대대적으로 손을 봤다. 너무 바빠서 거의 포스팅을 못 했지만, 앞마당에는 다년생 꽃을 채운 예쁜 화단을 만들어서, 지금 그곳은 구근들로 활기차다. 차고 옆에 높은 격자 벽을 세우고 장미를 심어 타고 올라가게 유도하기도 했다. 옆 뜰도 아무것도 없었는데, 역시 화단을 꾸미고 봉숭아와 일년생 꽃들을 심었다. 이것들의 자세한 이야기는 나중에 다시 풀어보기로 한다.
그리고 뒷마당. 산으로 이어지는 뒷마당에는 아이비로 덮인 울타리가 있었는데, 울타리가 너무 오래되어서 거의 쓰러진 상태였고, 뒤덮인 아이비 때문에 형태를 찾아볼 수 없었다. 나는 그냥 그 푸르름이 괜찮다 싶었지만, 남편은 그걸 해결하고 싶어 했다. 하지만 이미 삭아서 무너진 울타리를 다시 세우는 것은 불가능했다.
우리는 여러 가지로 고민했다. 그것을 밀어버리고, 그 자리에 다시 울타리를 세울까 했지만, 또 목재로 만들면 다시 삭을 것이다. 여기 밴쿠버 지역은 비가 많이 오기 때문에 어쩔 수 없다. 울타리는 설치하는데 비용이 많이 드는데, 가격 대비로 효용이 별로 좋지 않다. 그래서 다양한 울타리 모양을 고민하다가, 차라리 그 자리에 울타리가 될 수 있는 예쁜 나무를 심자고 결론을 내렸다.
그리고 남편은 과감히 아이비와 울타리를 걷어냈다. 정말 심각하게 엉켜있었기 때문에 걷어내는 것이 보통 일이 아니었다. 그런데 그렇게 해서 울타리가 사라지자 우리는 마음이 바뀌었다. 울타리 없이 툭 트여 드러나면서, 뒷산이 성큼 가까이 다가오는 게 마음을 편안하게 해 주었기 때문이었다. 그곳을 다시 울타리로 막고 싶지 않았다.
물론, 우리 집은 곰이나 너구리 같은 동물들이 많이 오지만, 울타리가 있다고 해서 못 들어오지 않는다. 곰처럼 덩치가 큰 동물도 쉽게 올라타기 때문에 울타리는 사실상 별 의미가 없다. 그래서 결론은, 울타리 없이 차라리 그 땅을 활용하자고 했다. 꽃도 심고 야채도 심고 말이다.
하지만 그것이 쉬운 일은 아니었다. 아이비는 번식력이 엄청 강한 식물이고, 뿌리도 굉장히 깊게 들어간다. 남편이 그걸 뽑아내는 일은 상당한 노동을 요했고, 깨끗하게 잘 되지 않았다. 그래서 나도 쭈그리고 앉아서 뿌리 캐기를 했다. 아이비뿐만 아니라 블랙베리도 상당히 많아서 땅 고르기는 끝없는 작업이었다. 결국 어느 순간에 더 이상은 못하겠다 싶었고, 그 위에 흙을 덮기로 했다.
그러나 그대로 덮으면 뿌리가 너무 올라올 테고, 바닥 다지기가 어려우니 재활용 박스를 구해다가 그 위에 덮기로 했다. 잡초 방지용 검은 천을 깔아볼까도 했는데, 어차피 뿌리는 그것도 다 뚫고 나온다. 그렇다면 온통 환경호르몬 덩어리인 그 화학 원단보다는 박스 종이가 나을 것 같았다. 그래서 한인 마트 재활용 통을 뒤져서 박스를 잔뜩 차에 실어왔다. 흰머리 부부가 쓰레기 박스를 뒤지는 모습이라니! 하하! 그렇게 우리는 차에 한 가득 박스를 싣고 왔다.
그래서 먼저 정리된 부분에 박스 종이를 서너 겹 깔고, 그 위에 거름흙을 두둑하게 덮어서 자리가 잡도록 기다렸다. 뿌리가 심한 쪽은 천막포를 덮어서 해를 차단하고, 그렇게 뭔가 하지 않고 여름을 났다. 뿌리를 죽이는 가장 좋은 방법은 에너지 공급원인 태양을 차단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새해 들어서면서 천막을 걷어냈다. 나머지 부분에도 박스 종이를 깔고 그 위에 다시 고운 나무 조각 멀치를 덮었다. 멀치(mulch)는 나무를 기계로 갈아서 작은 조각으로 만든 것인데, 가드닝에서 아주 유용한 것 재료 중 하나이다. 겨울에 화단을 보호하기 위해서 덮어주었는데, 주문을 넉넉히 해서 많이 남아있길래 그 위에도 덮어줬다.
그리고 봄이 다시 찾아올 무렵, 우리는 드디어 여기에 텃밭을 설치하기로 했다. 담장이 있던 곳인 데다가, 앞에는 나무 그루터기가 있어서 반듯하고 똑같은 크기의 텃밭을 만들기는 불가했기에 어떤 모양으로 할지 의견을 맞추느라 고민을 많이 했다. 사다리꼴 모양으로 해서 현대적인 느낌이 나게 할까도 생각해보았지만 딱히 마음에 드는 디자인이 잡히지 않았다. 작년 내내 그 고민을 하느라 보냈다.
하지만 이제 더 미룰 수 없었기에 작정을 하고 남편의 봄방학 기간에 맞춰서 작업을 시작했다. 목재를 고르는데 2인치(두께) x 10인치(폭) x 8인치(길이)로 할 것인가, 2x6x8로 할 것인가를 먼저 고민했다. 물론 폭이 좁은 나무가 더 저렴하지만, 저 높이의 화단이 된다면 결국은 낮다는 생각이 들어서 한 겹을 더 두르게 되기 쉽고, 그러면 손도 더 많이 가고, 결국 돈도 더 든다는 결론이 나왔다. 나무는 삼목(cedar)으로 하면 아주 럭셔리할 것이고, 그렇지 않더라도 보존처리가 된(treated) 목재를 사용하면 더 오래가겠지만, 화학약품 처리를 한 나무로 텃밭을 만들면 아무래도 그 독극물이 흙으로 스며들기 때문에 우리는 그냥 일반나무를 선택했다.
사실, 한 달 전에 목재 가격을 점검을 했었는데, 같은 물건이 한 달 만에 각 $3이나 올라서 깜짝 놀랐다. 사진을 찍어놓았기에 정확하게 기억을 했는데, $16.50 짜리였던 나무가 $19.50이 되어있었다. 코비드 때문에 목재 작업이 밀려서 계속 오른다는 소식을 들었기에, 더 이상 미루다 가는 더 오를지도 모를 일이었다.
목재를 구입해 온 후에는 우리가 머릿속에 그리고 있던 형태 비슷하게 직접 나무를 놓아보며 감을 잡았다. 이리저리 놓아서 쳐다보고, 부엌 앞의 데크에 나가서 내려다도 보고 하면서 모양을 결정했다.
그리고서 설계도를 그렸다. 틀의 모양에 맞춰서 가능한 길이를 확정하고서 정밀하게 설계를 했다. 목재의 두께가 2인치(5cm)라고 되어있지만, 실제로는 1.5인치(3.75cm)인 것을 감안해서 어느 부분을 어떻게 겹치게 할 것인가를 생각하고 나무 자를 크기를 확실하게 정했다.
텃밭 화단의 크기는, 손을 뻗쳐 작업을 할 경우, 밭으로 들어가지 않아도 손이 닿는 최대 위치를 고려해서 정해야 한다. 그 기준이 일반적으로 2피트(60cm)이니, 반대쪽에서도 작업할 수 있다면 4피트(120cm) 폭으로 하는 것이 보통이다. 그리고, 목재의 길이가 8피트(240cm)인 것을 사면 미니밴 의자를 접어서 실을 수 있는 최대 길이기 때문에, 흔히 텃밭은 4피트 x 8피트로 만드는 것이 가장 손실이 없는 보통 크기이다.
하지만, 우리 뒷마당은 그렇게 한다면 2개를 가로로 놓아야 하는데, 그렇게 하고 싶지는 않았다. 결국 계산이 훨씬 복잡해졌다. 뒷마당 바깥쪽은 경사로여서 그쪽에서는 작업이 불가하니, 그쪽면은 2피트 폭으로 했고, 나머지 방향은 4피트를 기준으로 했다. 그러나, 가운데는 ㄷ자 모양으로 하려면 각각 4피트까지 나올 수 없어서 하는 수 없이 3피트로 맞췄다. 이 복잡한 것들을 하느라 좀 골치가 아팠다.
그리고 설계를 해놓고서도, 과연 우리가 원하는 모양대로 하면 실제로도 그렇게 잘 자리 잡을지 궁금했기에 일단 제일 복잡하게 생긴 가운데 것부터 하나 지어보고 결정하기로 했다.
남편은 마술사처럼 나무를 잘 다룬다. 머릿속에 틀이 잡히나 보다. 척척 그려서 자르고, 들고 가서 하나씩 맞추면서, 각도도 맞추고 하더니 금세 가운데 틀을 완성했다. 오! 마음에 제대로 들었다. 이제 나머지는 일도 아니었다. 후다닥 나머지 목재의 길이를 계산해서 최대한 손실이 없도록 재봤더니, 2개만 더 사면 딱 맞을 것 같았다. 그러나 혹여라도 실수로 잘못 자를 수도 있으니 하나를 더 사자 해서, 얼른 가서 3개를 더 구입해왔다. 하룻밤 사이에 가격이 오를 수도 있지 않겠는가!
그렇게 해서 하루만에 완성된 이 예쁜 텃밭 화단.
땅이 완전히 평평하지 않아서, 아직 밑에 지지대도 대고 해야 할 일이 남았지만, 여기까지 맞추고 나서 우리는 너무나 흐뭇했다. 위에서 내려다보고 데크와의 수평도 맞추었고, 앞쪽으로 솟아있는 라즈베리도 모두 파서 일단 작은 화분들로 옮겼다. 그래야 흙을 넣을 수 있을테니까. 라즈베리는 맨 뒤쪽으로 갈 것이다.
그리고, 그다음 날 우리의 예정대로 흙을 배달받았다. 전화할 때마다 가격도 달라져서 흥정하기 나름인 이 회사는 아마 가족이 운영하는 것 같다. 배달 예약받아놓고 까먹기 일쑤이고, 또 그래서 말만 잘하면 제법 에누리도 된다.
이번엔 거름이 섞인 가든소일(garden soil)로 주문을 했는데, 어찌 작년에 받은 거름과 별로 달라 보이지 않았다. 김이 모락모락 나면서 퇴비 냄새가 올라왔다. 하지만 어차피 이 집에서 받는 이 거름흙은 버섯두엄(mushroom manure)이라는 것으로, 자세히 설명하기는 복잡하지만, 간단히 말하자면, 닭이나 말, 소 등의 분변을 이용해서 거름을 만들고 생분해 되게 한 후, 거기에서 버섯류를 재배하고 남은 흙을 판매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실제로 버섯을 재배하느냐 아니냐 의견이 분분하지만, 일반적인 닭두엄(chicken manure)이나 소두엄(horse manure)으로 판매되는 것보다 더 오래 분해되어서 순한 편이고, 밭에서 직접 사용해도 크게 지장이 없는 것이 보통이다. 그리고 화학비료처럼 금방 영양을 주는 것이 아니라 천천히 분해되면서 스며들어서 효능이 오래 간다. 하지만 그래도 이렇게 막 받았을 때에는 아직 왕성히 분해되는 중이고, 따라서 열도 나므로, 직접 사용하면 어린 작물들이나 예민한 화초들은 타들어갈 수 있으니 일반 흙이나 다른 것들을 섞어서 쓰는 것이 안전하다. 아니면 우리처럼 오래 방치했다가 사용해도 된다.
아무튼 이 회사의 버섯퇴비는 두엄뿐만 아니라 이것저것 많이 섞인 편이라 사용하기 만만하여, 우리는 이것으로 텃밭 화단을 가득 채웠다. 이렇게 만들어진 화단을 영어로 raised bed라고 부르는데, 올려놓은 침대라고? 사람용은 아니고, 식물용 침대인 것이다. 화단을 영어로 흔히 bed라고 부른다. 그런데 그냥 바닥에 있는 침대가 아니고, 이렇게 박스를 만들어서 한 단 올려놓았기 때문에 그런 이름이 붙어서 재미나다. 구글 번역으로 돌리면 정말 곧이곧대로 침대라고 나와서 모르는 사람은 어리둥절할 수도 있다.
아래쪽에 지지대도 다 설치하고, 올라가는 경사로도 흙으로 메꿨고, 화단도 흙으로 다 메꿨으니, 이제 여기에 채소들을 심어서 기를 일만 남았다. 부엌 데크에서 내려다보니 어찌나 흐뭇하던지! 목재 가격이 비싸서 비용이 꽤 많이 들었지만, 완성된 가든 박스를 사거나 주문하면 돈이 진짜 많이 든다. 남편이 아니라면 꿈도 못 꿀 일이 이렇게 가능하다니!
저 뒷산 쪽은, 원래 블랙베리가 무성하던 곳이었는데, 작년에 지역관리소에서 나와서 죽은 나무들을 제거하는 과정에 있어서 상당히 잘려나가는 바람에 너무 지저분하고 보기 흉해졌고, 그래서 우리 부부가 꾸준히 정리를 하는 중이다. 어차피 산자락이니, 야생화들도 심고, 산나물도 심고, 그렇게 해서 예쁘게 만들고 싶다. 그것은 물론 또 다른 일거리지만 말이다.
마음 같아서는 여기에 뭘 심는지까지 다 당장 정리해서 올리고 싶지만, 오늘은 일단 여기까지만이라도 완성해서 글을 올려보기로 한다. 그 이후에 작업한 이야기는 다음에 다시 들고 오겠다. 봄이라 비만 안 오면 마당에서 종일 시간을 보내기 때문에 글 쓸 시간이 거의 없지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