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라슈에뜨 La Chouette Mar 04. 2021

생명은 늘 신비롭다

봄이 오는 길 모퉁이에서...

더 귀한 생명이 있고, 덜 귀한 생명이 있고 그런 것은 아닐 것이다. 물론 우리에겐 사람의 생명이 제일 소중하다고 느껴지겠지만, 동물의 생명도 소중하고, 또한 식물의 생명도 소중하다. 그리고 모든 생명은 늘 신비롭다.


얼마 전에 만들어놓았던 퀼트 이불에 맞는 베개를 드디어 완성하여, 포장 발송하였다. 조카처럼 여기는 처자는 예정일을 일주일 정도 남겨놓고 있는데, 그 생명을 생각하니 얼마나 신비로운지! 그 아이가 아기를 낳는다는 것도 신비롭지만, 아기를 낳고 품 안에 안았을 때 조카가 신비로워할 생각을 하면, 나도 함께 설렌다. 


내가 딸을 낳고 처음으로 내 품에 안으면서, "내가 너의 우주로구나."라고 속삭여줬던 기억이 난다. 너무나 약하게 태어나서 전적으로 생명을 엄마에게 의지해야 하던 아기를 보면서 느끼던 신비로움과 숙연함은 나를 오랫동안 성장하도록 만들었다.




한 달 전 오늘, 1월까지 늘어져있던, 정원의 크리스마스 등을 제거한다고 떼어내다가 앞마당에 있는 큰 벚나무 가지를 여러 개 부러뜨렸다. 늘 그렇듯이 뒷마당 너머로 버려서 자연으로 돌아가도록 해야겠지만, 가지를 집어 들어서 보니 아주 조그마한 새순들이 잔뜩 붙어있었다. 오, 이걸 어찌 버린 단말인가. 나는 원예 가위를 들고 와서 순이 붙어있는 가지들을 잘라냈다. 나머지 부분은 버리고 집으로 가지고 들어와서는 작은 꽃병을 찾아 꽂았다. 정말로 꽃이 필지는 미지수였지만, 그대로 그냥 보내기는 너무 서운했다.



사실, 작년 봄에, 집 앞마당의 만병초(rhododendron)가 오랫동안 꽃봉오리만 있는 채 꽃이 피지 않아서, 힘이 없는 것 같다 생각하고 과감하게 가지치기를 하였는데, 잘려나간 꽃봉오리가 너무나 안쓰러웠다. 그래서 잘라진 부분들을 집에 데리고 들어와서 넓은 그릇에 연꽃처럼 띄워놓았는데, 놀랍게도 드디어 모두 꽃을 피웠다. 그래서 한참 동안 그 꽃을 즐겼고, 생명의 신비를 느꼈었다.


꽃망울을 머금고 접시에 앉은 봉오리(왼쪽)들이 활짝 꽃을 피웠다 (오른쪽)


물론 만병초는 꽃이 거의 보이는 단계에 이르러 있었고, 이 벚나무 가지는 전혀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그저 작은 갈색 겨울눈 같은 것이었기에 꽃이 피지 않을 수도 있겠다 싶기는 했지만, 그래도 그냥 버리는 것은 마음이 허용하지 않으니 데려온 것이다. 고개를 갸웃거리며...


그런데 바로 하루 만에 초록색 잎이 그 작은 갈색 겨울눈 사이로 고개를 내밀었다! 오, 너희 정말 아직 살아있었구나! 너무나 귀엽고 사랑스러워서 식탁 위에 올려놓고 종일 쳐다보았다.



그러고는 하루하루 변화하였다. 조그맣게 꽃잎이 비추이더니, 일주일 만에 급기야 꽃망울을 터뜨렸다. 원래 분홍 벚꽃이었는데, 색을 내기에는 힘이 달렸던지 흰꽃이 피었다. 하지만 색이 달라도 아름다웠다. 그리고 그 꽃이 완전히 절정에 이르렀을 때 밖에는 눈이 내렸다. 창밖의 나뭇가지에는 여전히 작은 갈색 겨울눈들이 붙어있는데, 집안에는 벌써 꽃을 피우고 봄을 맞이하다니... 생명이 갖는 힘은 참 신비롭지 않은가?



그리고 또 다른 친구가 있다. 


나는 밤을 사면 깨끗하게 씻어서 물에다가 하룻밤 담가 둔다. 그러면 밤 껍데기 쪽에 붙어있는 벌레 알들이 다 익사를 한다고 한다. 그러고 나서는 축축한 상태 그대로 지퍼백에 넣어서 냉장고 뒤쪽이나 김치냉장고에 넣어서 보관한다. 너무 오래되면 가끔 꺼내서 한 번 씻어서 다시 넣어둔다. 사실 밤은 사서 냉장고에 보관해도 금방 벌레 먹어 버리게 되는 일이 다반사였는데, 그렇게 하기 시작한 이후로는 겨울 내내 보관해서 먹어도 괜찮았다. 


그런데 이번에 너무 오랫동안 잊고 넣어뒀던 듯하다. 아래층에 자주 사용하지 않는 냉장고에 넣어두었는데, 먹으려고 꺼내보니 싹이 나 있었다. 사실 이것은 싹이 아니고 뿌리의 시작이라고 한다. 이렇게 뿌리가 나고 그 옆에서 다시 싹이 올라온단다. 이대로 먹어도 지장 없고 맛있는데, 그렇지만 이렇게 생명을 보여주는 것을 만나니 심어주고 싶어 졌다. 그래서 얼른 화분 두 개를 가져다가 흙을 채우고 하나씩 넣어줬다. 그래도 명색이 나무인지라, 한 화분에 여러 개씩 넣지 않고, 선심 써서 딱 하나씩만 넣어줬다. 



밤은 이런 상태에서 물을 너무 많이 주면 썩기 때문에, 간간이 체크하면서 너무 마르지 않게만 유지해 주었는데 두 주일이 넘도록 영 소식이 없었다. 아마도 그러다가 죽었나 보다 하면서 잊고 있었는데, 며칠 전 생각나서 봤더니 싹이 쑥 올라와있었다. 한 한 달가량 걸린 것 같다. 잎이 이리 많이 달리고, 키가 이렇게 클 때까지 몰랐다니 나도 참 무심하구나 하고 미안해졌다. 



보통 밤나무 키우는 분들은 개량종 묘목을 사다 키우고, 이런 것들은 맛있는 열매를 맺기 힘들다고 하는데, 그래도 이렇게 생명이 태어나니 모르는 체 하기는 쉽지 않을 것 같다. 날이 좀 풀리면 바깥에다 심어줘야겠다. 


겨울이 길고 지루하였지만, 봄은 계속 밀고 우리 틈으로 들어온다. 어느덧 3월이 되었다. 그리고, 추울 때 싹이 조금씩 고개를 내밀어, 혹여나 꽃망울을 터뜨리기 전에 얼지나 않을까, 그렇게 마음을 안타깝게 만들던 구근들도 이제 제법 씩씩한 모습으로 올라와서 여기저기 꽃망울을 터뜨리고 있고, 겨우내 잠자던 장미도 새 잎들을 내밀고 있다.


꼬마 아이리스들과 스노우드롭


생명은 이렇게 늘 신비롭다, 그리고 소중하다. 비록 꺾어진 가지일지라도, 잊혀진 밤송이일지라도 신비롭고 소중하다. 



밝고 희망차게 며칠 동안 쓴 글을 마무리하는 지금, 한 생명이 젊은 나이에 목숨을 끊었다는 안타까운 소식을 들었다. 언젠가 우리 모두가, 모두의 생명을 귀히 여길 수 있는 날이 오리라 믿고 싶다, 그의 모습이 누구나 좋아하는 모습이 아닐지라도, 나의 철학이 그의 철학과 맞지 않는다 해도, 인종이 다르거나, 성별이 다르다 해도, 누구든 그의 모습 그대로 존중받을 수 있는 그런 날이...

매거진의 이전글 자가격리 중 화분 놀이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