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에서 소소한 먹거리 키우기
집에서 먹거리 키우기
미국에 가서 아이를 한국으로 보내고 난 후 집으로 돌아와서 한동안 나는 지친 몸을 추슬러야 했다. 몸도 지쳐있었고 마음도 지쳐있었다. 아이를 데려오려고 갔는데, 더욱 먼 곳으로 보내야 했던 마음은 참으로 아팠다. 그리고 모처럼 돌아온 집에서는 자가격리를 해야 했다.
몸은 기진맥진했고, 두통과 피곤에 시달렸다. 눈은 심해진 다래끼로 인해 뜨기도 어려웠으며, 통증과 가려움증이 오갔다. 재미없는 시간들을 그래도 감사하며 쉬려고 노력했고, 이제는 어느덧 많이 회복했다. 힘든 것이라면, 무척이나 오랜 시간을 이렇게 보냈다 싶은데도 여전히 자가격리가 끝나지 않았다는 것이다. 남편을 만날 날도 아직 나흘이나 남았으며, 딸은 과연 언제 만날 수 있을지 모르는 상태였다.
그래도 기운을 추슬러 마스크를 만들어보기도 하면서 힘을 끌어모았으나, 집안일은 사실상 뒷전이었다. 내 신경을 거기까지 쓸 새가 없었다. 그러다 보니 매일 물을 준다고 했는데도 내가 보살피지 않은 흔적들이 보였다. 아마 내가 하루 깜빡했나 그런 거 같은데, 허브들이 순식간에 말라버렸다. 요 며칠 비가 오지 않아서 엄청 건조했나 보다. 그래서 햇빛 화창한 날을 잡아 화분 놀이를 좀 해보기로 했다.
말이 나온 김에 밀린 이야기도 좀 적어보자. 사실 지난 2월부터 우리는 실내정원 가꾸기를 시작하던 참이었다. 어차피 부엌에 작은 인공조명도 있어서, 자그마한 화분들을 키울 수 있기에, 봄이 오기 전부터 준비를 하자고 몇 가지 허브 씨뿌리기를 시작했는데, 사는 게 너무 정신이 없어서 기록을 하나도 못 남겼었다.
늘 을씨년스러운 캐나다는 2월쯤 되면 어쩐지 날씨에 지치는 기분이 든다. 그래서 봄맞이가 필요했다. 보관해놓았던 씨앗을 꺼내고, 화분에 흙을 깔았다. 그리고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씨앗을 뿌렸다. 너무나 작은 화분에 마스킹 테이프로 네이밍도 했다. 그리고 매일 들여다보고 분무기로 촉촉하게 유지해주며 일주일 정도 지나자 상추부터 싹이 나기 시작했다. 파릇파릇 올라오는 잎들이, 그냥 그 자체로서 부엌을 촉촉한 생명의 기분이 들게 해 주었다.
오른쪽 끝에 보이는 발그레한 색상의 바질이 나왔을 때 참 기분이 좋았다. 집의 화분에서 잎을 따서 음식에 넣는다는 것은 참 즐거운 일이다. 작년에는 깻잎과 고추를 너무나 잘 키웠는데, 올해는 더 많은 것들을 직접 수확해서 먹고 싶은 욕심이 올라왔다.
그래서 또 하나의 재배를 추가했다. 마늘도 키워보기로 한 것이다. 한국인들이야 워낙 마늘을 많이 먹는데, 구매해 놓은 마늘이 쑥쑥 줄어드니까 남편은 그게 신기해서 뭔가 좋은 마늘을 키워먹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나 보다.
아무튼 여전히 쌀쌀하던 어느 날, 크레이그 리스트(Craglist)에 누군가가 자기네 집 온실에서 키운 유기농 마늘 모종 판다고 광고하길래 얼른 가서 사 왔는데, 날씨가 계속 안 좋았다. 역시 밴쿠버는 레인쿠버라 불릴만하다. 미루고 미루다가 결국은 비가 오는 날, 그냥 강행을 해서 작업을 했다.
남편이, 비 맞아도 되는 따뜻한 낡은 옷과 모자를 쓰고 베란다로 나가서 화분을 준비했다. 아버지가 작업할 때 입으시던 옷을 대를 물려서 이 나이까지 입었으니 저 옷의 나이는 상상할 수 없겠지? 무슨 궂은 작업을 할 때면 늘 저 잠바를 입고 나서는데, 나는 그럴 때마다 골동품을 입고 있는 듯 좋아하며 재미나게 구경을 하니, 남편은 오히려 그런 내가 우스운가 보다.
결국 남편이 화분을 깨끗이 씻고 나서, 부엌 안 쪽에다가 타월을 깔고 분갈이할 수 있는 자락을 펴줬다. 나는 거기 펑퍼짐하게 앉아서 마늘 분갈이를 하고, 또 내친김에 그새 자란 허브들도 분갈이를 해줬다.
한국에서는 이런 작업을 할 때 바닥에 주로 신문지를 까는데, 남편은 낡은 타월들을 모아뒀다가 이렇게 사용을 한다. 타월에 이렇게 한다는 것이 어쩐지 죄책감이 들었지만, 그러라고 안 버리고 두는 것이니까 마음 놓고 쓰라고 해서 그냥 막 어질르면서 편하게 작업했다. 덕분에 비 안 맞고 작업을 완료할 수 있었다. 며칠 방치했다고 화분 바닥으로 막 뿌리가 나오는 마늘. 저 뿌리가 마르면 안 된다. 그래서 부랴부랴 작업 했다.
큰 화분 네 개에 나눠 심고, 모자라는 것은 작은 화분에 심었다. 걔네들은 나중에 땅에다가 바로 옮겨 심을 계획이다. 다 심고 일단 베란다로 내쫓았는데, 원래 마늘은 밭에서 키우는 작물이라 물 빠짐이 좋아야 한다. 그래서 저렇게 맨날 비 맞으면 곤란할 수도 있다 해서 결국 처마 밑으로 옮겼다.
그리고 허브보다 먼저 나왔던 상추들은 미처 솎아주기 전에 이렇게 다 엉켜 버리는 대참사가 일어나고 말았다. 일부 솎아줬지만, 결국은 집안 온실이 너무 더웠던지 가늘게만 자라고 마음에 들지 않아, 얘네들도 정리하고 새싹 비빔밥 해 먹었다! 내친김에 함께 솎아준 바질과 실란트로 등등도 아주 조금 섞었는데도 향이 제법 강하게 올라와서 기분 좋게 먹었다! 반찬은 김치 하나에 두부 새우젓국물 더해서 먹으니, 손 별로 안 가고 간단히 한 끼 해결! 키우는 재미 완전 붙였다!
그래서 내친김에 딸기와 토마토까지 심었다. 작년에 토마토가 제법 맛있게 열렸던 기억이 있어서, 같은 씨를 심었다. 작은 화분이 모자라는 데다가, 넓은 화분에 심으면 옮겨심기 쉽지 않길래, 달걀에다가 심어봤다. 밑에 살짝 구멍을 내서 물이 빠지게 해 주고, 흙을 채운 후 씨를 심으면 된다. 촉촉해야 발아가 잘 되므로, 싹이 틀 때까지는 위에 비닐 같은 것을 덮어주면 좋다. 뭐가 뭔지 구별을 하기 위해서 네임펜으로 표시를 하고, 휴지심과 물병 뚜껑을 받침으로 해서 세워두었다.
미국에서 돌아와 보니 기다리던 딸기 싹이 났는데, 어째 상당히 기운이 없어 보인다. 그리고 작은 달걀 껍데기에 심었더니 흙이 적어서 물도 빨리 마르는 것 같다. 그래서 일단 딸기 먼저 조금 큰 화분에 옮겨주었다. 원래는 껍데기를 살짝 눌러서 금이 가게 한 다음 그대로 흙에 심는 것이 원칙이지만, 이 힘없는 아이가 달걀 껍데기를 깨고 뿌리를 뻗기에는 무리스럽게 보여서, 거의 분해해서 심었다. 남은 껍데기는 그냥 화분에 뿌려주고... 과연 얘가 뭐가 되기나 할까? 에고고...
그러고 나서는 본격적으로 베란다로 나갔다. 사실 오늘의 주인공은 파 심기이다. 처음 집에 도착해서, 손질해놓은 냉장고의 파를 보니, 일주일이나 되었는데도 상태가 아직 괜찮아 보였다. 그러나 이미 좀 시들은 부분도 있고, 이 대로 냉장고에 두면 금방 다 시들어버릴 거 같았다. 그래서 푸른 부분은 잘라서 냉장하고 뿌리 붙은 하얀 부분은 컵에 물을 담아 꽂아두었다. 그리고 매일 물을 갈아주면서 지켜봤더니 눈에 보이게 푸른색이 밀고 올라왔다. 열흘쯤 되니 더 이상 미룰 일이 아닌 거 같았다. 물론 이대로 잘라서 먹어도 되지만, 물에서만 키우면 영양이 없어서 그리 오래갈 수 없기에 흙에 얼른 심는 것이 좋을 거 같았다. 마침 날씨도 화창했고, 지난번에 마늘 때문에 사다 놓은 흙도 있어서 그것을 사용했다. 제법 깊은 버킷이 있길래 바닥에 구멍을 뚫어서 흙을 담고 약간의 간격을 두고 심었다. 비교적 쉬운 작업이었다.
뒤쪽으로 보이는 것은 래디쉬와 양파순인데, 솎아줄 때가 되어서 간격에 맞춰서 잘라줬다. 솎아줄 때에는 뽑아내는 것보다 가위로 잘라주는 것이 좋다. 잘못 뽑으면 옆에 있는 싹의 뿌리까지 같이 따라 나올 수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솎아낸 것은 그날 식사 때 초고추장 무쳐서 반찬으로 먹었다. (https://brunch.co.kr/@lachouette/144)
다음은 토마토 차례였다. 역시 작디작은 달걀 껍데기 안에서 너무 좁아 보였기에 하나는 아주 큰 화분에, 그리고 두 개는 조금 큰 화분에 옮겼다. 역시 달걀은 거의 벗기다시피 해서 분해해서 다른 큰 화분에 뿌려주었다. 참 쉽게 깨지는 달걀이라 생각했었는데, 속껍질이 은근히 질겨서 잘 부서지지 않았다.
원래는 여기까지만 하려고 했는데, 허브 화분들에 눈이 갔다. 바질이 잘 자라고 있었는데, 화분보다 잎이 더 커지려고 하는 것이 아닌가! 그래서 꺼내봤더니 역시나 뿌리들이 괴로워하며 좁은 곳에 낑겨 있었다. 그래서 결국 이 녀석도 옮겨줬다.
이거 말고도 긴 화분에 있는 바질이랑 로즈메리, 파슬리도 좀 만져줬는데, 상태가 많이 안 좋아져서 잘 살아날지 모르겠다. 보랏빛 바질도 옮겨주었고, 아무튼 이날의 가드닝 놀이는 이 정도로 마쳤다. 물 듬뿍 주고, 해 잘 드는 곳에서 한나절 일광욕시켜주고 나니, 마치 내가 일광욕한 듯 기분이 좋았다.
현관문 밖에도 나가면 안 되는 엄격한 캐나다 자가격리 기간 중에, 그래도 우리 집 베란다 정도는 나갈 수 있었으니 다행이고, 이로서 나도 좀 바람 쐰 기분이 되었다.
그리고 이왕 이렇게 심었으니, 얘네들이 쑥쑥 자라주면 더 보람찰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