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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라슈에뜨 La Chouette Apr 05. 2020

자가격리 중, 나에게 주는 상차림

된장국, 호박나물을 한큐에!

나는 요리를 좋아하지만, 사실 음식하기를 그리 좋아하는 편은 아니다. 요리는 내게 있어서 실험 놀이의 일종일 뿐, 탐구하는 상황이 아니라면 그다지 즐겨서 차려먹는 편은 아니다. 하지만 남편은 상당히 음식을 즐기는 편이어서 나는 지금의 남편과 만나서 살면서 늘 제대로 상을 차려서 먹게 되었고, 함께 상을 차리고 식사하는 기쁨을 배우게 되었다. 


한식은 주로 내가 준비하고, 양식은 주로 그가 하지만, 내가 저녁을 차린다고 해서 그가 그냥 놀고 있지는 않는다. 흔히 한국에서 만나는 모습인, 아내는 저녁을 준비하고 남편은 티브이를 보는 풍경과는 사뭇 다른 풍경이다. 내가 바쁘면 남편은 혼자 상을 차린다. 행여 내가 옆에서 뭐라도 거들라치면, 괜찮으니 저리 가라고 쫓아 보낸다. 그래서 나도 한식을 준비할 때면 내가 혼자 하려고 하는 편이지만, 남편은 꼭 옆에 와서 마늘을 다지고, 야채를 썰면서 조리 과정에 동참한다.


그런데 지금 이렇게 자가 격리하면서 떨어져 있으니, 나는 다시 본연의 자세로 돌아가서, 한 그릇에 대충 모조리 쓸어 넣고 먹어치우는 모습으로 지내게 되었다. 설거지할 것도 없고, 특별한 조리도 없이 그야말로 매끼 때우기 그 자체인 것이다. 그러더니 점점 소화가 잘 안 되기 시작했다. 먹은 것이 얹혀있는 것이 답답하게 느껴질 만큼 거북해졌다. 그러다 보니 그게 호흡이 불편한 것처럼 느껴져서, 혹시나 비행기에서 코로나 바이러스가 옮은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드는 순간도 생겨났다. 열은 전혀 없었으며, 그간 고되었던 시간들 때문에 피곤해서 몸살이 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할 텐데도, 은근 몸을 사리게 되는 것이었다.


뭐 코로나 바이러스라고 해도 어차피 치료제도 없고, 병원에서도 딱히 해주는 것이 없으니, 폐렴으로 번져 호흡이 곤란한 경우에만 입원하는 것이고, 다른 독감처럼 결국 오롯이 치료해야 하는 이곳 상황에서, 이미 예전에독감도 감기도 혼자 이겨낸 적이 있기 때문에 그렇게 두렵지는 않지만, 고위험군으로 들어가는 나이의 남편을 생각하면, 내가 보균자가 되면 안 된다는 의무감 때문에 은근 걱정이 되긴 하는 것이다. 


내가 하고 있는 것이라면, 비타민씨 고용량 요법 (일명 메가도스)과 종합비타민, 아연, 대구 간유, 마그네슘을 열심히 챙겨 먹는 것뿐이고, 아침저녁으로 남편과 아이와 페이스타임으로 대화를 나누는 것도 정신건강을 위해서 꼭 필요한 부분이다. 아무튼 며칠 잘 쉬면서 눈 다래끼도 많이 가라앉아가고 있는데, 뭐만 먹었다 하면 자꾸 체하니 그것도 스트레스가 되기 시작했다.

래디시 순, 파슬리, 타임, 양파순


그래서 오늘은 햇살도 좋길래, 좀 귀찮아도 몸을 움직이기 시작했다. 관리를 통 제대로 안 했더니 엉망이 되어가는 꼬마 화분들의 분갈이도 좀 해주고, 래디시 많이 자랐길래 솎아내고, 방치되어서 희망이 없어 보이는 허브들은 그냥 싹둑 잘라서 모았더니, 새싹이 한 컵 정도 모였다. 입맛도 없는데, 오, 이걸로 새싹 비빔밥을 해 먹으면 딱이겠다! 이런 생각이 들었다. 


그러고 들어오니 바람을 쐬어서인지 따뜻한 국물 생각도 나고, 출출해졌다. 보니 점심시간이 이미 한참 지났다. 생각해보니 그동안 남편 없이 혼자 지낸다고 너무 무성의하게 먹어서 위장이 화를 내는 것은 아닐까? 단순히 영양성분을 채우겠다는 의무감 말고, 음식을 준비하고 먹는 것 자체가 다 명상이 될 수도 있는데... 


그래서 오늘은 좀 상을 차려서 먹어봐야겠다고 마음을 먹었다. 설거지 귀찮다고 다 쏟아 넣지 말고, 냉장고에 있는 것을 대충 다 넣어서 다때볶 하지 말고, 반찬을 한 두 개라도 새로 해보자. 그리고 남편이 없더라도, 컴퓨터 들여다보면서 먹지 말고, 제대로 차례서 하나씩 맛을 보며 먹어보자. 속이 썩 편하지 않으니 부담 없이, 고기도 빼고 비건으로 밀고 나가기로 정하고는 갑자기 분주히 부엌 안에서 움직였다.




냉장고를 열어보니 주키니 호박이 있었다. 이걸로 호박나물을 무치고, 조금 남겨서 된장국에도 넣으면 좋겠다 싶었다. 일단 국물을 내려고 냄비에 물을 담고, 다시마와 멸치를 넣어서 끓였다. 정식으로 잘 국물을 내려면 멸치를 살짝 볶다가 물을 부으면 더 좋은데, 신속히 움직이느라 그냥 다 붓고 끓이기 시작했다. 국물 내는 멸치는 너무 적게 넣으면 맛이 나지 않는다. 아무리 한번 먹을 적은 양의 국이라도 큰 녀석으로 서너 개는 넣어줘야 한다. 그게 최소한이다.

그동안 된장국 재료를 썰었다. 호박 약간과 양파, 마늘, 냉장고에 있던 할라피뇨. 그리고 냉동실에서 냉이 조금과 시금치 데쳐놓은 것을 꺼냈다. 이 두 가지 재료는 언제든 된장국을 끓일 수 있도록 냉동실에 들어있다. 특히나 냉이는 나올 때 재빨리 구입해서 손질해서 냉동해두면, 일 년 내내 향기로운 된장국을 먹을 수 있어서 좋다. 된장국에는 고추 종류가 들어가야 맛이 좋은데, 만일 냉장고에 아무 고추도 없다면, 끓일 때 고추장을 조금만 넣으면 아쉬운 대로 그 느낌을 대신할 수 있다.


다른 하나의 도마에, 나머지 호박을 납작납작하게 반달 썰기 하고, 역시, 파 마늘, 양파, 할라피뇨를 준비했다. 즉, 한 가지 재료로 두 가지 반찬을 한꺼번에 준비하는 것이다. 이럴 때 빨간 홍고추가 있으면 색이 예쁠 텐데, 없으니 아쉬운 대로 이렇게 넣기로 했다. 


새싹은 초고추장에 무쳐서 먹으려고, 살짝 헹궈서 물기를 빼줬다. 그리고 냉장고에 조금 남은 브로콜리도 씻어서 데쳐줬다. 브로콜리는 꽃 부분을 먼저 자그마하게 바짝 잘라낸 후, 나머지 기둥 부분은 바깥쪽 질긴 껍질을 살짝 벗겨내고 납작납작하게 썰면 고소한 게 먹기도 편하고 좋다.


나는 이 브로콜리 손질할 때마다, 내게 조리법을 처음으로 알려준 프랑스인 아주머니가 생각난다. 30년 전 홀로 유학 중이던 나는 슈퍼마켓에서 브로콜리를 보고 먹고 싶다는 생각을 하였는데, 당시만 해도 이것이 우리나라에서는 보편적인 식재료가 아니었기에 어떻게 조리를 해야 할지 몰라서 망설이고 있었다. 그때 어느 아주머니가 와서 성큼 브로콜리를 장바구니에 넣는 게 아닌가! 그래서 나는 부끄러움을 무릅쓰고 조리법을 물었다. 그분은 너무나 기분 좋고 친절하게 내게 설명해줬다. 끓는 물에 데치라는 말과 더불어서, 절대로 기둥을 버리지 말고 껍질만 벗겨서 사용하면 진짜 맛있다고. 그 이후로 나는 이 브로콜리 애용자가 되었다. 초고추장에 찍어먹는 브로콜리는 유학생활 내 향수병을 덜어주는 좋은 친구였다.



브로콜리는 데쳐도 되지만, 간단히 끓는 물을 붓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데쳐질 수 있다. 조금 뒤적여준 후, 색이 푸르게 변하면 바로 찬물로 헹궈주면 아삭 거리는 질감으로 먹을 수 있다.


그동안 국물이 충분히 우러났기에 멸치를 건져냈다. 나는 다시마를 좋아해서 그냥 넣은 채 푹 끓여서 다 먹지만, 그 질감이 싫은 분은 다시마도 함께 건져낸다. 원래 찬물에만 살짝 우리라 하는데, 나는 다시마 이렇게 먹는 게 좋다. 버리긴 정말 아깝다.


이제 그 국물에 나머지 재료를 다 넣고 끓인다. 두부를 좋아하면 이때 두부도 같이 넣어준다. 어느 정도 끓여서 시금치가 부드러워져야 맛있으므로 당분간 끓이면서, 그 시간 동안 호박나물을 조리한다. 그리고 다 끓었다 싶었을 때 된장을 풀어서 조금만 더 끓인다. 된장을 오래 끓이는 분들도 있는데, 발효식품 된장은 사실상 오래 끓이면 좋은 균이 다 죽기 때문에 짧게 끓이는 것을 추천한다.


다른 냄비를 불에 올리고, 참기름과 아보카도 오일을 조금씩 넣고는 호박나물 재료를 부어준다. 중불로 해서 계속 볶다 보면 어느 순간 투명해지면서 부드러워지기 시작한다. 프라이팬에 해도 되지만, 사실 이렇게 깊숙하게 작은 냄비에 볶는 것이 더 편하다. 설거지도 물론 더 편하고! 거의 다 익었다 싶으면 새우젓을 넣어서 간을 맞춘다. 한 티스푼 정도 넣는데, 집 숟가락마다 다르니, 반 큰 술 살짝 안 되게 넣으면 대체로 적당하다. 간을 보고 모자라면 더 넣으면 된다. 마지막으로 불을 끄고 참기름 또는 들기름과 깨를 뿌려주면 완성이다. 맛의 포인트는 사실 새우젓에 있다. 


이렇게 준비가 다 되었는데, 반찬을 보니 온통 풀밭이다. 흠! 단백질은 어쩌나? 그래서 급히 달걀을 하나 말았다. 파라도 좀 넣을 것을, 그냥 달걀만 말았더니 참으로 맹숭맹숭하구나. 그래도 기분을 내서 상을 차렸다. 특별식은 없지만, 가지런히 반찬을 담아놓았다.


원래 저탄고지를 하는지라 밥은 생략하곤 했지만, 오늘은 밥도 조금은 먹기로 했다. 시금치 된장국과 나란히 밥을 먹고 싶었다. 김치와 볶은 김치는 원래 냉장고에 있던 것이고, 데친 브로콜리에 맞게 쌈장을 꺼냈다. 새로 한 반찬인 호박나물과, 새싹 초고추장 무침, 달걀말이, 그리고 남편이 최근에 가져다 준 상추까지 다 따로 담고, 남편이 나를 환영하기 위해 사다 놓은 꽃도 옆에다 놓았다. 원래 길고 예쁘게 서있던 꽃이었는데, 어느샌가 꺾어지길래 작은 잔에 옮겨 담고, 남편 올 때까지 이렇게라도 곁에 두기로 했다. 



온통 풀밭인 밥상이지만, 이렇게 놓으니 왠지 스스로 대접받는 기분이 들었다. 그리고 부담스러운 반찬이 없어서 배불리 먹고 나서도 속이 편했다. 맨날 나를 걱정하는 남편에게도 이 사진을 찍어서 보냈다. 서로 떨어져 지내는 시간은 쉽지 않지만, 우리는 모두 잘 살아남아야 한다. 이 전쟁에서 살아남아서 다시금 서로 뭉치는 날을 꿈 꿔 본다.


점심 이렇게 먹고 저녁은 어떻게 했냐고 물으신다면? 먹다가 남은 거 다 넣고 쓱쓱 비벼 먹은 것은 안 비밀!




간단 시금치 된장국


필수 재료:

멸치 한 줌, 다시마 2 장, 

파 쫑쫑 썰어서 1큰술, 다진 마늘 한쪽, 양파 1/4개 채 썰어서 준비, 시금치 데쳐서 한 줌, 

된장 1큰술


옵션 재료:

고추 1개(또는 고추장 1큰술로 대체 가능), 냉이 (있으면 감칠맛을 내줌), 두부 


만들기:

1. 물에 멸치와 다시마를 넣고 20분 정도 끓여준다.

   (시간이 없다면, 다른 재료들을 먼저 넣고, 그 위에 멸치 다시마를 얹어 끓이다가 건져내도 된다)

2. 재료 2번째 줄과 옵션 재료를 모두 함께 넣고 끓여준다.

3. 충분히 끓고 재료가 다 익으면, 마지막에 된장을 풀어놓고 한 소끔 더 끓여준다.




호박나물


재료:

호박, 양파, 파, 마늘, 홍고추, 새우젓,  참기름, 깨


만들기:

1. 호박은 납작납작하게 반달 썰기 한다. 

2. 양파는 채 썬다.

3. 냄비(또는 팬)를 달궈서 중불로 맞춘 후, 호박, 파 마늘, 양파, 고추를 넣어서 

    투명해질 때까지 충분히 볶아준다.

4. 색이 변하기 시작하면 새우젓을 넣어서 한 번 더 볶아주고 간을 본다. 

5. 깨와 참기름(또는 들기름)을 넣어 섞어주고 상에 낸다. 

   들깨를 뿌려줘도 맛이 좋으나 보기엔 좀 지저분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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