홈스쿨링, 그 막연한 이야기

무모한 시작, 그러나 후회 없었던 결정

by 라슈에뜨 La Chouette

브런치에 작가라는 이름으로 글을 쓰고 있는 지금 나는 종종 “책 한 권 쓰셔야죠.”라는 말을 듣곤 하지만, 소소한 일기 같은 글들을 적고 있는 상황에서 어떻게 글을 모을지 그저 막연하다. 하지만 사실 이 말을 처음 듣기 시작한 것은 훨씬 오래전부터였다.


나는 당시에 딸아이를 홈스쿨링으로 키우고 있었고, 대입을 준비하고 있었으니, 그 말은 아이가 반듯하고 훌륭하게 자라고 있다는 뜻으로 받아들여졌다. 어떻게 그렇게 키울 수 있는지 쓰라는 뜻이었겠지만, 사실 나는 내가 아이를 어떻게 키웠는지 별로 생각나는 것이 없었다. 그냥 씩 웃고 마는 게 내 대답이었고, 한편으로는, 정말 써야 한다면 참으로 막막할 것 같다는 생각이 지배적이었다.


사실 초등학교 3학년 때 아이를 학교에서 데리고 나오기는 했지만, 아마 나처럼 주먹구구로 홈스쿨링을 한 사람도 극히 드물 것이다. 나는 사실 특별한 계획이 없었다. 어떻게 할 것이냐고 묻는 사람들은 많았지만, 내 대답은 항상 “열심히 살다 보면 길이 열리겠지.” 이 이상은 없었던 것 같다. 그냥 물 흐르는 것처럼 살아왔고, 아이가 편안하면 된다는 생각만 했던 것 같다.


책 쓰기 미션을 요리조리 피해 가면서, 그런 글 같은 것은 평생 안 써도 될 것 같은 마음이었는데, 내게 어려움이 닥친 것은 아이의 대학 입시를 준비하면서였다. 쭉 해왔던 것처럼 그냥 아이를 다독다독만 하면 아이가 알아서 할 거라고 생각했었는데, 대학 가기 위해서는 그 외로 필요한 것들이 많았다. 더구나 영어로 글을 쓰는 일을 하는 아이에게는 한국이 아닌 미국 대학이 목표였고, 그것도 학비지원을 아주 많이 받아야만 다닐 수 있는 현실이었기 때문이었다.


한국 입시도 예전에 내가 다닐 때와는 많이 달라져서 준비해야 할 것이 많다고 들었지만, 내 평생 처음 접하는 미국 대학입시에는 뭐 이렇게 넣어야 하는 것이 많단 말인가. 게다가 홈스쿨링을 한 우리의 경우에는, 내가 학교 카운슬러이자 교장선생님이었기 때문에, 학교에서 채워야 하는 칸들을 전부 내가 채워야 했다. 성적표라든가 여러 가지 항목들을 채우는 것도 쉽지 않았지만, 무엇보다 나를 힘들게 했던 부분은, 추천서라는 너무나 중요한 항목과 더불어 왜 홈스쿨링을 했는지에 관한 나의 철학과 어떻게 했는지에 관하여 서술식으로 채워야 할 부분이 몇 군데나 있었던 것이다. 그것도 영어로! 나는 망치로 머리를 한 대 맞은 듯한 기분이 들었다. 스트레스 때문에 며칠간 머리가 지끈지끈 아프고 몸도 아픈 기분이었다.


하지만 아이는 아이대로 고군분투하고 있는데, 내가 이대로 기절한 채로 있어서는 안 되지 않겠는가? 마음을 다잡고, 글을 쓰기 시작했다. 내가 왜 홈스쿨링을 시작했지? 내가 가진 철학이 무엇이었고, 나는 어떤 식으로 아이를 평가했지? 곰곰이 생각하면서 돌이켜보니, 나에겐 나 나름의 철학이 있었고, 소신이 있었다는 사실을 깨닫기 시작했다.


영어로 써야 하는 글이었으니 정말 여러 번 수정했고, 주변 원어민들의 도움도 받았지만, 덕분에 나도 나 나름대로 내 철학을 돌이켜볼 수 있는 기회를 갖게 되었다. 아이도 또한 입시를 위한 준비를 하고 에세이를 쓰면서 자기 자신을 돌아보고, 스스로가 어떤 것을 추구하는지,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돌아볼 수 있는 계기가 되었으니, 우리 모녀는 이 과정을 통해서 가치관을 성립할 수 있었다는 생각이 든다.


힘든 과정도 많았다. 스트레스도 받았고, 그러다 보니 아이와도 보이게, 보이지 않게 부딪치는 일도 생겼고, 아이도 마찬가지로 예민해져서 뭔가 말 안 하고 덮어두며 힘들어하기도 했다. 그런 일들이 생길 때마다 나는 어떻게든 아이와 대화하려고 시도했고, 그런 과정을 통해서, 안 그래도 무척이나 친했던 우리 모녀는 더욱더 사랑하는 사이가 되었으니, 입시 결과와 상관없이 우리에겐 참으로 소중한 시간이었다.


더구나, 이런 어려운 과정을 지나가고 있을 때, 주변의 사람들이 적극적으로 도와주고 싶어 했고, 우리를 위해 기도해주었고, 생각지 못한 제안과 아이디어를 제공해주기도 하면서, 역시나 세상은 혼자 살아가는 것이 아니고 다 함께 도우며 사는 곳이라는 것을 느끼고 더욱 감사하는 삶을 살게 해 주었다.


지금은 이미 아이가 대학을 졸업하고 성인이 된 상태지만, 이 머리말을 쓰기 시작하던 당시만 해도, 대학 입학원서를 넣어두고 발표도 나지 않았을 때였다. 전혀 아무 결과도 모르지만, 나는 그 자체로 감사하고 행복하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리고 대학이 인생의 전부가 아니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어떤 결과가 닥쳐오든지 우리는 다시 설 수 있고, 기쁘게 새로운 인생을 계획할 준비가 되어있었다.


그리고 다시 쓰다 만 이 글들을 꺼내어 보면서, 여전히 불확실한 미래에 대해서 다시금 긍정적으로 생각해볼 힘을 얻기 시작했으니, 재도전이 그 자체로 의미 있다고 생각된다.


그래서 다시 마음을 잡고, 내가 아이를 어떻게 홈스쿨링으로 키웠는지, 아니, 어떻게 아이가 홈스쿨링을 통해서 자라났는지 쓰기로 했다. 이 책은 상당히 길어질 것이므로, 일단은 왜, 그리고 어떻게 그런 결정을 하게 되었는지부터 정리를 해볼까 한다.


자기 자식을 사랑하지 않는 부모는 없을 것이다, 잘 되기를 바라고 도움을 주고 싶지만, 정작 아이를 고통으로 몰아넣는 경우도 많다. 나는 아이들이 사랑을 먹고 자랄 수 있다고 믿는다. 잘하고 싶어서 고통받는 부모들과 아이들이 참 많은데, 함께 행복할 수 있는 방법을 함께 찾도록 돕고 싶은 마음 때문에 이 글을 적기로 했다.


겉에서 보이는 것이 전부가 아니고, 당장 성적이 잘 나오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다. 나무를 키울 때에도 지나치게 물을 주면 썩어버린다. 무조건 무엇이든 퍼부어 주는 것만이 능사는 아닐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마냥 방임해도 안 된다. 더구나 무슨 문제가 생겼을 때, 그 문제를 해결하는 대신 다른 그럴듯한 것으로 덮어버리면 나중에 더 큰 문제가 발생한다.


자식을 키우는 일이 참으로 막막하고 어려운 일이지만, 속이 실하고 스스로 행복할 수 있는 아이로 자라서, 어떤 문제에 부딪쳐도 일어날 수 있는 사람이 되게 해주고 싶은 것이 모든 부모의 마음이리라 생각한다.


많은 부분은 예전에 써놓았던 것들을 불러왔지만, 이 과정을 거쳐오면서 내 생각이 당시와 바뀐 것들이 있었기에 어색하지 않게 손을 보려고 노력했다. 그래서 내가 나 스스로의 생각을 다시 확인하는 기회가 되기도 했다. 비록 이 브런치북은 시작되기까지의 이야기로 마무리를 했지만, 본격적으로 어떻게 실천했는지는 꼭 마저 적고 싶다.


현재 아이의 상황은 이렇다. 영문과로 미국 대학을 입학한 후, 순수미술로 전과하여 졸업하였다. 영문학과 문예창작과를 부전공으로 함께 했다. 지금은 대학원에서 애니메이션을 전공 중이며, 학비 조달을 위하여 한국 웹툰 회사의 일을 외주로 맡아서 진행하고 있고, 학교에서는 조교와 애니메이션 제작팀의 프로듀서를 겸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