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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라슈에뜨 La Chouette Aug 24. 2021

사람이 그립다는 것...

누군가를 돕는다는 것은 사회를 위한 저축

세상이 참으로 많이 각박해져간다는 생각이 든다. 이 코비드때문에 더욱 더 그런 느낌은 나만의 기분일까? 살다보면 작은 일로 크게 상처받기도 하고, 또 크게 행복해지기도 하는데, 그런 일들을 살펴보면, 그 안에는 항상 인간다움의 존재와 부재라는 차이가 있다는 것을 보게 된다.


요즘은 외로운 사람들이 너무 많다. 나이가 많으면 많은대로, 젊으면 젊은대로 마음을 붙이지 못하고 속으로 속으로 닫고 들어가는 경우가 많다.


팔순 어머니는 혼자 사신다. 막내딸이 정말 가까운 곳에 살면서 거의 매일 들여다보느라 애쓰지만, 그래도 대부분의 시간을 혼자 보내신다. 자식은 일도 해야하고 어떻게 늘 붙어있을 수가 있겠는가 말이다. 예전 같으면 나가서 친구분들이랑 점심도 드시고, 영화관도 가시고, 문화센터도 가시고 그러면서 대인관계를 하고 지내시겠지만, 이 코비드 이후로 벌써 1년 넘게 이런 활동을 못하시니 부쩍 우울해지시고 총기도 떨어지심이 느껴진다. 어머니한테도 죄송하고, 동생한테도 늘 미안하다.


어머니가 너무 외로우신지, 동생 말로는, 길에서 아무라도 친절하게 대하면 정말 마음을 다 열고 지갑 안의 것을 다 털어주실 기세라고 한다. 은행에 갔는데 도우미 알바가 친절하면 통장도 도장도 신분증도 다 주실 요량이었다고 하고, 실제로 모 투자은행에서는 어머니 어리둥절 하시는 새에 상냥한 목소리로 엉뚱한 펀드에 가입시켜버리기도 했다고 분통을 터뜨렸다. 사람이 외로우면 우울해지고, 사소한 일로도 마음을 쉽게 다친다. 이럴때 따뜻한 인간미를 만나면 그런 것들로 충전하기도 하고 무장해제가 되기도 하는 것이다.


딸아이가 이번에 대학원에서 공부를 시작한다. 그러기 위해서 미국에 갔고, 방을 구해 자리를 잡았다. 이 과정에서 참으로 꼬이고 힘든 일들도 많았다. 착한 사람의 덕도 봤고, 그렇지 않은 사람으로 인해서 상처도 받았다. 돕겠다고 하면서 큰돈을 요구하는 경우도 있었고, 공평하게 하자면서 엉뚱한 자기만의 잣대를 들이미는 경우도 있었다. 


하지만 모두가 그런 것은 아니다. 진하게 사람 냄새를 풍기는 이들이 있다. 그런 사람들 덕에 우리는 또 숨을 쉬고 살아간다. 딸아이는 착하게 살고 싶다고 한다. 사람들은 흔히, 착하게 살면 무시하고 이용하려 든다고 하지만 정말 꼭 그런 것만은 아니다. 그 착함 덕분에 누군가는 덕을 보고 삶에서 용기를 내기도 한다. 또, 착하게 살면 남에게 피해를 주는 민폐족이 된다고 말하기도 하지만, 착하게 산다고 해서, 내가 할 수 없는 일들을 무리하게 하면서 상대방을 부담스럽게 하고, 그것을 꼭 되갚아야 하는 짐으로 만드는 것은 진짜로 착한 게 아니다. 무엇이든 내가 할 수 있는 범위에서 착한 일을 하면 되는 것이다. 내가 착하게 행동해서 어느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었다면, 세상이 조금은 더 살기 좋아졌다는 생각을 하게 되면서 기분이 좋아질 수 있는 그런 삶을 살고 싶다는 것이 딸의 주장이다.


최근에 가장 고마웠던 것은, 내 초등학교 동창이 우리에게 해준 일이었다. 아이가 전에 살던 곳은 엘에이 지역이었고, 그곳에서 직장을 다니다가 코비드 상황이 터져서 갑자기 귀국을 하게 되었다. 갑작스러운 짐 정리는 난처한 일이었고, 살림살이 다 들어있는 짐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는 난감한 상황이 되었다.


그런데, 그 지역에 사는 내 초등학교 친구가 선뜻 짐을 맡아주겠다고 했다. 친구. 그렇다, 그는 내 친구다. 하지만 어릴때부터 친구는 아니었다. 뒤늦게 결성된 초등학교 동창 모임을 통해서 알게 되어서 이름을 익혔고, 그 이후에는 페이스북에서 친구로 연결되어있었을 뿐, 실제로 만난 것은 엘에이에서가 처음이었다. 그러나 그는 내 친구다. 그리고 그가 내 친구여서 너무나 좋다.


그는 내가 어렵사리 했던 부탁을 너무나 흔쾌히 받아들여줬다. 정말 추호의 생색도 없었고, 우리가 짐을 싸 놓고, 택시를 불러서 집으로 가져가겠다고 주소를 달라고 했더니, 그러지 말라며 차를 가지고 와서 직접 다 싣고 갔다. 작년 그 암담하던 순간에 얼마나 큰 위안이 되었는지 모른다. 그리고 묵묵히 그렇게 그 짐을 일년 넘게 끼고 살았다.  


그리고 이번에 딸이 방을 구하면서 짐을 부쳐달라고 그 친구에게 다시 부탁을 했다. 처음에는 택배사 UPS 직원이 와서 픽업 해갈 수 있으리라 생각했는데, 알아봤더니 그게 훨씬 더 복잡했다. 그러려면 집에서 일일이 무게를 재서 스티커를 출력해놓아야 한다는 것이었다. 결국 너무나 미안하게도 친구가 그 짐들을 모두 실어서 배달 사무소까지 가야 했고, 그곳에서 하나씩 짐 무게를 달아서 스티커를 붙이고 배송하는 일을 정말 싫은 내색 하나도 안 하고 다 해줬다. 그리고 짐이 잘 들어갔는지 확인하는 연락도 잊지 않았다. 


그는 이렇게 선함을 쾌활하게 행하였고, 우리는 그 덕을 제대로 봤다. 대가를 바라지 않는 도움의 손길은 세상을 더 살기 좋은 곳으로 만들어주고, 우리가 혼자가 아님을 느끼게 해 준다. 정말 가슴이 뭉클하고 눈물이 날만큼 고마웠다. 그리고 우리도 누군가에게 이런 감정을 느끼게 해주고 싶다는 마음을 강하게 느꼈다.




나는 온라인 게시판을 통해서 영어를 가르친다. 내가 캐나다에 살다 보니 대부분의 수강생이 내 거주 지역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산다. 외국에서 살아낸다는 것은 참 많은 어려움이 있다. 특히나 아무 연고 없이 자리 잡는 사람들은 정말 드라마를 찍듯 다양한 힘든 일들을 겪는다. 그래서 나는 영어만 가르치고 싶지는 않다. 그들과 삶도 나누고 싶고, 언어도 통하지 않는 외국 생활에 작지만 힘이 되고 싶다. 


사실 내가 몇 푼 벌지도 못하면서 이 일에서 손을 떼지 못하는 이유도 이거다. 영어를 곧잘 하는 사람들이 영어를 배울 수 있는 방법은 참 많다. 어디 학원에 가서도 쉽사리 따라갈 수 있고, 유튜브 영상만 봐도 금방 이해할 수 있다. 하지만 내게 영어를 배우는 분들은 대부분 주부이다. 어디 학원에 다닐 규칙적인 시간을 빼기도 힘들고, 영어가 어설프니 다른 사람들과 공부하기에 위축되는 경우도 많다. 젊은 학생들 틈에서 따라가기엔 나이도 먹어서 머리도 옛날같이 안 돌아가고, 그냥 그 자체로 서럽기 쉬운 분들이 참 많다. 


그래서 아주 기초적인 질문도 편하게 물어보고 답을 들을 수 있는 곳을 만들어주고 싶었다. 그리고 아무 때나 하루 중 짬짬이 생기는 시간을 이용해서 공부를 하고, 아이들 재워 놓은 다음에 출석을 해서 질문을 할 수 있으면 좋겠다 싶은 마음에 나는 이것을 손 놓지 못하고 계속 수업을 한다. 가내수공업 같은 수업이다. 


지난 6월, 캐나다 온 지 2년이 넘어서 처음으로 수강생들과 번개모임을 했다. 현재 또는 이전 수강생들을 마당에 초대해서 티타임을 가졌다. 각자 먹을 것을 조금씩 가져와서 우리 집 뒷마당에서 나눠 먹고 이야기를 나누자 했다. 모인 분들을 보니 가슴이 뜨거워졌다. 다들 하고 싶은 말이 너무나 많았고, 11시에 모여서 오후 4시가 될 때까지 끊임없는 이야기가 쏟아졌다. 이렇게 속 터놓고 이야기할 곳이 필요했던 것이다.


그리고 그때 왔던 한 분이 우리 집 정원을 보면서, 여름에 한국으로 귀국하느라 가구를 정리하는데, 원목 의자를 주고 싶다고 했다. 나는 되도록 팔 수 있으면 다 팔고, 정 안 팔리면 달라고 대답을 했었다가 결국은 그 의자를 받기로 하였는데, 그래도 사는 동안은 계속 필요할테니 출국 직전에 가지러 가겠다고 했다. 그랬더니, 다른 물건을 온라인으로 좀 팔았는데, 그 물건을 받으러 오기로 한 분이 귀국 후에 자가격리를 해야 해서 날짜가 안 맞는다며, 그동안 짐을 좀 맡았다가 전해줄 수 있느냐고 부탁을 했다. 뭐, 집에 잠시 뒀다가 전하는 것은 정말 아무것도 아니지 않은가. 그래서 그러자고 했다.


그런데 그러고 며칠 후 문득 생각해보니, 이런 짐을 선뜻 맡길 곳이 마땅치 않은 경우라면, 사는 곳을 비우고 출국하기 전까지 한 이삼일간 묵을 곳이 필요할 텐데 어디 편하게 갈만한 곳이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연락을 해서, 지낼 곳이 마땅치 않으면 우리 집에 와도 된다고 말했다. 


처음에는 민폐 끼치고 싶지 않다며, 그냥 짐 빼고 바닥에서 지내면 된다고 했지만, 사실 그게 그렇게 해도 되는 게 아니다. 결국 다시 연락이 왔다. 정말 와도 되냐고. 나는 원래 빈 말을 못 하는 사람이다. 안 된다면 처음부터 이야기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렇게 해서 그 모녀가 우리 집에서 이틀을 머물렀다. 사용하고 남은 두루마리 화장지와 몇가지 생활용품을 들고 미안하다며 멋쩍게 웃으며 들어왔다. 갑자기 오게 되느라 우리도 준비가 안 되어서 남편의 서재 소파 침대에서 지내게 부랴부랴 잠자리를 마련했지만, 서로가 더 가까워질 수 있는 좋은 시간이 되었다. 참 열심히 공부하던 수강생이었는데, 역시 삶도 참으로 열심히 사는 분이었다. 싹싹하고 예의 바른 딸을 보니 그것도 좋았다. 가기 전날 저녁식사를 준비하는데, 계속 옆에 붙어서 도우려고 애쓰는 청소년 아가씨라니 어찌 귀엽지 않겠는가! 마당에서 딴 블랙베리로 시럽을 만드는데, 옆에서 체에 거르는 번거로운 일을 하면서 방글방글하였다. 그렇게 우리는 이틀간 좋은 추억을 만들었고, 포옹을 나눈 후 작별하였다.  


그리고 그 이후에, 내가 맡아둔 짐을 찾으러 오기로 한 분과 연락이 되었다. 날짜와 시간을 맞추며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그분은 아직 차가 없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차로도 30분 거리가 되는 그곳에서 전철을 타고 와서 택시로 돌아가겠다고 하는데, 원목 의자를 포함하며 변압기며 기타 짐은 그렇게 녹녹해 보이지 않았다. 내가 그 이야기를 전하며 남편을 쳐다보자 남편이 껄껄 웃었다. "어떻게 하고 싶어?"


우리는 토마토를 1년 치 구입해서 진공 캐닝을 해서 보관하는데, 일요일에 그 토마토를 사러 가기로 되어있었다. 그분이 사는 곳은, 정확히 우리가 가는 길 중간에 있는 것은 아니었지만 좀 돌아서 가면 들를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래서 결국 그렇게 가구와 짐을 싣고 어제 배달을 완료하였다. 너무 미안해하며 그러실 필요 없다고 하였지만, 가보니 어린 딸도 있었기에 더욱 그러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고맙다며, 한국 집에서 기른 파로 담근 파김치와 화장품, 그리고 도넛을 한 박스 건네주셨다. 막 입국한 터라 답례를 할만한 것도 마땅치 않아서 엄청 고민하신 듯했다. 그럴 필요 없었는데... 하지만 그분 입장에서는 또한 그렇게 하는 것이 마음이 편하리라는 생각에 감사하다고 넙죽 받아 들었다. 


맛있는 파김치 냄새를 솔솔 풍기며 토마토를 사러 가는 길, 우리는 이 도넛을 어떻게 해야하나 고민을 했다. 남편은 밀가루를 못 먹고, 나는 단거를 못 먹는다. 하나 정도라면 맛을 보는 셈 치겠지만, 열두개짜리 한 박스는 정말 컸다. 평소 같으면 이웃집에 건네주면 아이들이 많아서 즐겁게 잘 먹겠지만, 이웃집은 한 달간 휴가를 떠난 상황이었다. 그러자 남편이 토마토 농장에 권해보면 어떻겠느냐고 했다. 그거 좋은 생각이었다.


유기농 토마토를 그날 따서 그날 판매하는 이 농장은 매년 가는 곳이다. 토마토를 건네 받으며, 혹시 도넛을 좋아하느냐 물었더니, 주인아주머니 반색이 되면서, 자기는 너무나 좋아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기분 좋게 박스채 넘겨주었고, 우리는 선물로 신선한 고추를 한 봉지 받았다. 볶아 먹으면 맛있다고 극구 손에 쥐어주어서 받아왔다. 





우리는 모두가 사람이 그립다. 우리 부부가 나누고 싶었던 것은, 도움이 필요한 순간에 세상이 우리를 외면하지 않는다는 따뜻한 느낌이었다. 혼자 살아가고 있는 게 아니라, 사람 냄새 나는 세상에 살고 있다고 느끼게 해주고 싶었다. 그리고 가슴속이 따뜻해졌다고 말해주는 그분들을 통해서 우리 부부도 또 따뜻함을 선사받았다. 이것은 절대로 일방통행이 아니었다. 


나는 이것을 저축이라고 부르고 싶다. 이렇게 누군가를 선뜻 돕는 저축을 했고, 그것을 다른 곳에서 또 받았다. 내 친구가 딸아이의 짐을 선뜻 맡아주고 부쳐준 것처럼 말이다. 그리고 우리의 도움을 받은 그분들은 또 다른 도움이 필요한 사람을 돕겠다고 했다. 이렇게 저축하는 사람들이 많아지면 받아 쓸 수 있는 사람들도 많아질 것이다. 그러면 세상이 점점 더 따뜻한 곳이 되겠지?


자식을 길에 내놓고 사는 부모의 마음은 늘 길에 앉아있다. 늘 가슴속이 아슬아슬하다. 그냥 그게 부모 마음 이리라. 내가 베푼 저축이 나의 딸에게 가면 좋겠다고 늘 생각며 살아왔다. 누군가 선뜻 아무 대가 없이 내 딸을 도와주면 좋겠다고 말이다. 그래서 아이가 사람들 틈에서 살아가는 훈훈함을 늘 느끼며 살면 좋겠다. 세상에 그런 마음들로 넘쳐나면 좋겠다.


오늘 아침, 농장 주인아주머니한테 문자가 왔다. 어제 도넛 너무 고마웠다고. 이웃집 소년들이랑 나눠먹었는데, 뭘 먹을까 고민하는 아이들을 보면서 너무나 행복했다고 했다. 그리고 그 소식으로 우리는 미소 짓는 하루를 시작할 수 있었으니 그것으로 너무나 감사하다. 이렇게 우리는 늘 사람들과 더불어 살고 있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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