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라슈에뜨 La Chouette May 06. 2021

어린이 아닌 딸

비자 인터뷰를 마치고...

딸이 한국에 간지 한 달 되었다. 간 목적은 미국 비자 인터뷰. 대학원에 합격을 해놓았으니 입학을 하려면 비자가 필요했다. 어차피 미국 대사관은 어느 나라에나 있으니 이곳에서 머물면서 여기서 인터뷰를 하고 비자를 받으면 얼마나 좋겠는가 만서도 여기서 그것을 허용하지 않았다.


그것이 코비드 때문인 것인지, 아니면 미국과 가까운 캐나다에서 편법으로 비자를 받으려고 하는 사람들이 많아서 그러는 것인지 모르겠지만, 여기에 머물고 있어도 굳이 한국에 가서 비자를 해야 했다.


물론 여기서 시도를 해봤다. 질문 문항 중에서, "비자를 하러 캐나다에 왔는가?"라는 것이 있었는데, 그 옆에 부가 설명으로, "여기에 거주하는 사람이 아니면 무조건 Yes로 대답할 것"이라고 되어있었다. 그러려면 왜 질문을 저렇게 만들었을까? 솔직히 좀 불쾌했다. 있지 않은 의도를 있다고 대답하게 유도하는 것은 옳지 않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우리는 을이다. 갑이 아니기 때문에 큰소리를 치며 따질 수가 없다. 그 문항에 Yes를 한 덕에, 비자 인터뷰 날짜가 8월로 나왔다. 그때는 학기 시작을 위해서 미국에 가 있어야 할 때인데 그때 인터뷰를 한다는 것이 말이 안 되었다. 주한 미 대사관에 접수를 넣어보니, 일주일 이내로 인터뷰가 가능하다고 나오는 것을 보고 결국 하는 수 없이 딸은 한국으로 가야 했다.


생일을 앞두고 보내는 것이 못내 아쉬워서 거나하게 생일상을 차려주기도 했지만, 그래도 보내 놓고 난 부모의 마음은 그리 좋지 않았다. 그래서 생일에 맞춰서 작은 상자를 하나 보냈다. 


남편이 만든 브라운 식빵. 당밀과 오트밀이 들어가서 구수한 맛이 나는 빵이다. 아이가 여기 있을 때 좋아했던 것을 생각해서 남편이 다시 빵을 구웠다. 그리고 냉동해서 단단하게 만들고, 그것을 진공포장을 했다. 즐겨 먹던 그래놀라와 함께 넣으며, 열어보고 재미있어할 아이를 상상하며 국제 택배로 발송하였다. 도착까지는 일주일이 걸린다고 했으니, 날짜를 딱 맞출 것이라고 기대했다.



그리고 나는 요새 유행한다는 악기 칼림바를 한국에서 구입해서 배송을 시켰다. 악기는 생일보다 일찍 도착했는데, "생일 전에 열지 마세요"라는 문구를 붙여달라고 부탁을 했더니, 정말 그렇게 인쇄해서 붙여서 도착했다.


아이는 생일날 자가격리가 끝나기로 되어있었다. "자가격리 기간 동안 심심하니 먼저 열어서 가지고 놀을래?"라고 말했더니, 생일 전 선물은 이미 받았으니, 생일 때까지 기다리겠다고 했다. 자가격리 기간에는 이걸 만들며 마음을 가라앉히고 있다고 사진을 보여왔다! 




생일 아침이 되자, 악기를 먼저 열었다. 소리가 예쁘다고 좋아했다. 아이는 피아노도 치고, 우쿨렐레도 연주하지만, 그보다 휴대가 간편한 작은 악기를 주고 싶었는데, 아이도 그 점이 마음에 든다고 했다. 소리도 녹음해서 보내왔다. 생각했던 것보다 더 예쁜 물건이 온 것 같아서 나도 기분이 좋았다.



우리가 보낸 소포는 생일에 맞춰서 도착하게 되어있었다. 아이의 격리 해제 기념 첫 외출을 해야 하는데, 나가기 직전에 도착 예정이었다. 그런데 생일 약속에 급히 나가느라 답을 못 받았다. 할머니랑 점심을 먹고, 사촌언니랑 저녁을 먹었다. 


그리고 다음 날 아침에 이 사진이 도착했다. 맛있게 잘 먹겠다는 인사였다.


토스트 한 빵에 버터를 얹어서...


선물이 무엇인가는 그렇게 중요하지 않다. 아이는 우리가 자기를 사랑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으니까. 이렇게 농담처럼 보내는 선물에 들어있는 따뜻함을 읽을 줄 아는 아이. 그리고 아이가 이걸 보며 어떤 생각을 했을지 느낄 수 있음으로 기쁜 우리 부부...


그렇게 생일이 지나고 나서 비자 인터뷰 준비를 본격적으로 시작했다. 사실 대학원에서 진작에 입학 허가를 받아놓은 상태이고, 장학금도 받고 가는 것이고, 필요한 서류도 다 받았으니 비자가 거절될 걱정 같은 것은 하지 않아야 정상이지만, 세상은 원래 꼭 그렇게 정상대로만 돌아가지는 않는 법이다.


게다가 어리기만 했던 딸이 어느덧 나이를 먹어 더 이상 어린이가 아니고, 독립할 나이의 미혼 여성이 되었으니, 미국 대사관에서 제일 경계하는 무직 미혼 여성의 범주에 들어가기 때문이다. 거기다가 부모님은 이혼해서 엄마는 심지어 한국에 살지 않고 있으니 이 또한 부정정 영향을 미칠까 걱정이 되기도 하였다. 


비자 인터뷰의 목적은 정말 공부하러 가는 것이 맞는지를 가리는 것이겠지만, 그들이 중요시 여기는 포인트는 학습 후 미국에 눌러앉지 않겠다는 것을 알고 싶다는 것에 있다. 즉, 한국으로 돌아와야 할 뚜렷한 이유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사실 그런 이유가 딱히 있지는 않다. 요즘처럼 국제화 시대에, 나중에 어디서 살게 될지 누가 어떻게 알겠는가! 나도 캐나다에서 살게 될 줄 몰랐는데 말이다. 하지만 이유를 묻는다면 대답해야 하는 현실. 그래서 그런 대답도 미리 준비해야 당황하지 않는다.


내 생각에는 그냥 무난히 잘 될 거 같았지만, 사람 일은 모르는 것이지 않은가! 그리고 원래 이런 것은, 잘 준비하면 하나도 묻거나 캐지 않고 쉽게 넘어가지만, 만일 준비를 별로 안 하고 가볍게 가면 엉뚱한 질문에 진땀을 빼기 쉬운 법이다. 그리고 이 대사관 인터뷰는 전적으로 영사에게 달려있다. 어떤 영사를 만나느냐가 그날의 운인 것이다.


아이는 준비를 열심히 하였다. 그리고 인터뷰하러 가는 날, 긴장되는데 비까지 왔다. 긴바지 정장을 입고 가는데, 샌들을 신기에 추울 거 같다고 하더니, 뭐 어차피 상반신만 보니까 아래는 운동화를 신겠다고 했다. 그리고 광화문 역에 도착해서 들어가겠다고 연락이 왔다. 


시간이 흘렀다. 머릿속으로 계속 기도를 하면서 마당에서 달래를 심고 있었는데, 전화가 왔다. 기다리던 엄마 마음을 아는지라, 전혀 뜸 들이지 않고, "됐어요!"라고 바로 용건부터 말했다. 운이 좋아서, 막 따지는 면접관 옆에 있는 사람에게 연결되었는데, 서류는 대충 쓱 보더니, 무슨 영화 좋아하느냐고 묻더란다. 아이 전공이 애니메이션이니 전공에 관련된 질문으로 한 것 같다. 그래서 딸아이는 인사이드 아웃을 좋아한다며, 자기는 원래 2D를 할 건데, 3D를 좋다 하는 것이 좀 그렇지만, 그래도 픽사의 작품을 쭉 좋아해 왔다고 너스레를 떨었단다. 




뭔가 결정되지 않은 채로 시간이 흘러간다는 것은 참 많은 스트레스를 준다. 하나가 결정이 나야 그다음이 준비되는 것 같은 그런 상황이 반복되면 사람은 참 쉽게 지친다. 잘 될 거라 믿으면서도 항상 함께 존재하는 약간의 불안감과 긴장감이 때로는 반갑지 않지만, 그런 것들이 쌓여서 또 어른으로 만들어 가는 것이겠지. 이제 다음 단계를 준비할 때가 되었다. 아직 우리는 아무것도 정하지 않았다. 다시 캐나다에 왔다가 미국으로 갈 것인지, 아니면 곧장 미국으로 갈 것인지도... 그것 역시 우리 마음대로 되는 것은 아니겠지.


다시 하루가 지났다. 면접 다음 날, 5월 5일. 한국의 아침 시간에, "긴장 풀고 푹 쉬었어? 어린이날 축하해! 선물 준비 못 해서 미안! 아직 멀은 줄 알았네!"라고 보냈더니, "어린이도 아닌데요, 무슨!" 하면서, "사랑해요!"라고 답이 왔다. 그래, 어린이가 아니지. 하지만 그래도 너는 엄마의 영원한 어린이란다!


딸아이의 빈 방에는, 아이 떠나기 전에 발아시킨 나팔꽃이 많이 자라서 늘어졌는데, 아이는 이보다 빨리 자라는 것 같구나. 다음에 만날 때에는 또 한 뼘 자라 있겠지?

매거진의 이전글 작아도 따뜻한 손길이 되고 싶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