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게 어떤 방식이 될지 몰라도, 좀 더 너그럽게, 좀 더 따뜻하게...
북클럽으로 영어수업을 진행한 지 좀 되었다. 완전 초보자들 대상이어서 보통 아주 쉬운 동화책으로 진행을 해왔는데, 대부분이 40~50대 성인이다 보니 너무 재미가 없는 거다. 그래서 최근 들어서는 영화를 가지고 수업하는 것으로 바꿨다. 수강생들은 주부이거나 직장인이거나 다들 바쁜 사람들이고, 그래서 각자 자신이 편한 시간에 참석할 수 있는 시스템으로 흘러간다. 수업은 온전히 온라인으로 이루어진다. 자료는 이메일로 발송하고, 수업은 게시판에서 한다.
매일의 진도에 맞춰서 게시판에 필요한 설명을 적어두면, 수강생들은 각자 먼저 예습을 한 후에 게시판에 와서 설명글을 읽고 나서 덧글로 출석을 한다. 모르는 것이 있으면 질문을 하고, 책이나 내용이 관해서 감상을 적기도 한다. 암기하고 싶은 표현이나 문장을 나누고, 내가 숙제로 내주는 작문도 풀어본다. 다른 이들의 질문도 같이 볼 수 있기 때문에, 미처 자신이 질문하지 못한 것들의 대한 답도 얻으니 수업은 교실에서 이루어지는 것이나 마찬가지로 유익하다.
그리고 단체 수업이지만 활용하기에 따라서 일대일 수업만큼 효과적이다. 원래 공부라는 것은 학원에 가서 한다고 해서 되는 것이 아니다. 반드시 혼자 학습을 해야 는다. 하지만 독학으로만 하다 보면 모르는 것이 나와도 혼자 해결이 안 된다. 그래서 이렇게 같이 읽고, 설명 듣고, 질문도 하고, 때론 자신의 목소리를 녹음해서 올리기도 하면서, 마치 개인 과외받는 것 같다는 이야기도 나온다. 그래서 꾸준히 하는 분들은 정말 열심히 꾸준히 하고, 성장 모습도 보인다.
그런데 간혹, 처음에 의욕 있게 신청하고, 아니면 뒤늦게 꼭 넣어달라고 애원하는 사람들 중에서, 자료 이메일 발송 후 잠수 타는 분들이 꼭 있다. 단 한 번의 출석도 안 한다. 나는 이게 돈 받고 하는 일이다 보니, 그렇게 사라지면 마음이 편치 않다. 그래서 연락해서 무슨 일인지 묻기도 하고, 며칠 결석했지만 지금부터라도 오라고 따뜻하게 다독여주기도 하는데, 물론, 그렇게 닿아서 용기를 내서 시작하는 경우도 있지만, 심한 경우에는 전화도 카톡도 다 안 받고 사라져 버린다.
오늘 딸과 통화를 하면서, "이렇게 잠적하는 사람들의 심리는 뭘까? 그토록 꼭 하고 싶다고 하고, 기대된다고 하고, 돈까지 지불했는데..."라고 말했더니 딸이 잠시 가만히 있다가 이렇게 대답했다.
마음이 아픈 게 아닐까요?
딸의 그 한마디에 가슴속이 찌르르 해왔다. 아프다면... 마음이 아프다면... 그래도 살아보려고 애쓰고 있다면, 그래도 뭔가 해보고 싶다고 하고 있다면.... 그래서 수업도 신청했겠지. 하지만 사람이 아프면, 그냥 거기까지 손을 뻗칠 힘이 없을 수도 있다. 딸이 말했다. 처음엔 자신도 그 심리가 뭘까 궁금했는데, 살면서 아픔을 겪다 보니 알 것 같다고... 아프다면, 힘들다면, 자신이 해야 할 것들 중에서 가장 덜 중요한 것부터 놓게 된다고.
아픔을 겪고 나면 남들에게 더 모질어지는 사람이 있고, 반대로 더 너그러워지는 사람이 있다. 지난 일 년간 마음고생 많이 한 딸, 아픈 만큼 성숙해져 줘서 정말 고맙다. 잘 못하는 이들을 다그치는 마음이 아니라, 어려울 수 있다는 것을 이해하고 품을 수 있는 마음을 가질 수 있어서...
이번에 수업하는 영화는 산드라 블럭 주연의 While you were sleeping (당신이 잠든 사이에)이다. 로맨틱 코미디에 해당되지만, 밝고 명랑한 웃음 속에 쓸쓸함이 있다. 주인공 루씨는 혼자 외롭게 살아가는 아가씨이다. 직장에서도, 가족이 없다는 이유로 크리스마스 당직은 당연히 자신의 차지다. 설명을 위해서 대본을 읽으면서 그녀의 외로움이 때론 내 가슴을 쿵 하고 때린다.
오늘 내가 수업준비한 분량에서, 그녀는 혼수상태로 병원에 누워있는 피터를 한 밤중에 혼자 찾아간다. 말 한마디 알아듣지 못하고 누워있는 그를 향해 자신의 이야기를 털어놓는다.
... not that I'm complaining or anything because I,... I have a cat, have an apartment, um, sole possession of the remote control... that's very important... It's just I never met anybody that I could laugh with.
불평을 하고 싶은 것은 아니에요... 나는 머무를 수 있는 아파트가 있고, 고양이도 있고, 내 전용 리모컨도 있어요. 하지만, 단지... 함께 웃을 수 있는 사람을 아무도 만나지 못했다는 것이죠
요즘 같은 코비드19 시대에, 그래도 가족이 함께 서로 용기를 주며 한 집에서 지낼 수 있다면, 그리고 따뜻한 음식을 지어먹을 수 있다면 그것은 큰 축복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렇지 못하고, 안 그래도 외롭고 힘든 상황에 있던 사람들은 요즘이 얼마나 힘들까 생각해본다. 최근에, 돌봄을 제대로 받지 못한 아이가 자살을 기도했다는 기사를 읽었다. "그냥 따뜻한 말 한마디... 나는 언제나 배고프다"라고 적힌 유서는 정말 가슴을 무겁게 했다.
남 보기에 정말 어려워 보이는 사람들도 있지만, 보기에 멀쩡해 보이는 사람들도 사실은 많이들 가슴앓이를 하고 있을 것이다. 때로는 이해하지 못할 행동을 하더라도, 그래서 털어놓지 못한다 하더라도, 그렇게도 못하느냐고 다그치지 말고 따스하게 품어줄 수 있는 사람이고 싶다.
그리고 어려움을 겪고 있는 모든 이들에게, 용기와 따스함이 깃들기를 기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