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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라슈에뜨 La Chouette Jan 31. 2020

선을 넘어서...

상처를 입힌다는 것

영화 기생충이 황금종려상 작품상을 거머쥔 데 이어서, 골든글로브에서 외국어 영화상을 받았고, 급기야 아카데미에 노미네이트 되면서 다시금 주목받고 있다. 미국에서 외국 제작 영화에게 정말로 아카데미 작품상을 주기야 하겠느냐 싶지만서도, 이렇게 노미네이트 되었다는 사실 만으로서도 우리에겐 의미가 있는 일이다. 더불어 세월호를 다룬 부재의 기억까지 단편 다큐멘터리에 후보로 올랐다니 아프고 부끄럽지만 더욱 반가운 소식이다.

기생충은 코믹하게 스토리를 끌고 가면서 사회의 무거운 이야기를 다루었기에 영화가 끝나면 가슴이 내려앉은 듯한, 그리고 한 대 맞은듯한 기분을 지울 수가 없다. 이 영화를 한마디로 요약한다는 것은 당연히 불가능하다. 오늘은 그중에 한 가지 "선을 넘는다"는 표현을 이야기하고 싶다. 부잣집 주인인 박사장이 강조하면서 그의 입에서만 나온 표현이지만, 이 "선"이라는 것이 영화 전체를 지배하고 있다.


차 안에서 여자 속옷이 발견되면서, 주인의 차에서 성관계를 한 것이 선을 넘은 행위이기에 운전기사는 해고된다. 그럴 수 있다는 납득이 간다. 기사는 주인의 차에서 그런 행위를 하면 안 된다는 것에는 다들 동의를 할 것이다. 그러나 박사장이 기택을 묘사하면서, "근데 냄새가 선을 넘지."라는 대사를 들으며 관객은 함께 기분 상하기 시작하고, 그 냄새가 지하철 타는 사람들의 냄새라는 점을 명확히 하면서, 보통사람들인 우리 모두 함께 불쾌감을 겪는다. 갑들이 말하는 선. 선긋기. 그래서 선을 넘으면 안 되는 것이라는 것을 못 박는 것이 기분이 나쁘지만, 다시 보면, 선은 갑만을 지키기 위한 것이 아니다. 결국, 선을 넘지 말기를 그렇게 강조했던 박사장 자신이 반대로 을에게 지켜야 할 기본적인 선을 지키지 못함으로 인해 기택을 도발하게 만든다. 


선을 지킨다는 것은 무엇일까? 관계 유지에 있어서 꼭 필요한 기초적 매너이자 자기의 영역을 보존하는 데에도 필요한 것이 선이다. 우리 인간관계는 좋을 때이든 나쁠 때이든 기본적으로 지켜야 할 선이 있는 것이다. 사람들마다 그 선은 각자 다르고, 대부분의 경우는 어디까지 지켜야 하는지 알지만, 그것을 모르고 넘을 때 회복하기 힘든 상처를 입거나 입힐 수 있다. 도로를 주행할 때, 차선을 넘으면 사고의 위험이 있고, 지하철 역에서도 열차가 다가올 때에는 노란 선 밖으로 나가라는 안내방송을 해준다. 하지만, 사회생활에서의 선은 이렇게 명확하지 않다.




직원 1명이 있는 회사에 신입으로 들어간 이 씨는 입사 초기부터 하나뿐인 직장 상사에게 인격모독의 비난을 받아왔다. 시간이 지나고 좀 친해지면 괜찮아질까 했지만, 관계는 별로 나아지지 않았다. 그는 사장 앞에서는 상냥했고 말투도 달랐다. 그러다가 새로 남자 직원이 한 명 들어왔다. 직원이 늘었으니 자신의 원래 업무에 좀 몰두할 수 있으리라 기대했지만 상황은 생각지 못한 쪽으로 돌아갔다. 상사는 자신이 신입사원 교육을 시킬 군번이냐며 이 씨에게 신입사원을 교육시키라고 종용했다. 하는 수 없이 그 일을 맡은 이 씨는, 그래도 자신의 처음 순간을 생각해서 나름 친절하게 그를 교육시켰다. 그러나 문제는 흔히 직장에서 그렇듯이, 그 신입이 더 나이도 많고 남자라는 이유로 어느 순간 직위가 뒤바뀌더니 둘이 함께 이 씨를 구박하기 시작했다. 내가 교육시킨, 나보다 일도 더 모르는 직원이 한 달만에 내 직장상사가 되어버린 시점에 이 씨의 스트레스는 극에 달했다. 


그리고 결국 자신들의 업무를 이 씨가 알아서 챙기지 않는다는 이유로 심한 비난을 받으면서 그들의 갑질이 선을 넘어왔다. 왜 네 일, 내 일을 따지냐며 빈정거리는 그들을 보며, 그동안 참으려고 했고, 이해하려고 했던 자신이 바보처럼 느껴지면서 이 씨도 5개월 만에 처음으로 반박을 했다. 내가 출근하자마자 그쪽 일들을 반이나 해놓았는데, 그럼 내 일이 많으면 누가 알아서 해주냐고 조용히 따져 물었다. 어차피 이 씨가 맡은 일을 그들은 알지도 못하고 할 수도 없는 일들이었다. 그리고는 이 씨는 체념한 듯 다시 시키는 일을 묵묵히 했다. 그러나 그 결과는 별로 좋지 못했다. 상사가 사장에게 뭐라 전했는지 모르지만 이 씨가 난동을 부린 것으로 전해졌다.


갑의 위치인 상사의 입장에서는 이 씨가 선을 넘었다고 생각할 것이다. 감히 나에게 말대답을 하다니! 한 번도 하지 않았던 말대답 그 자체가 이미 선을 넘은 것으로 간주되기 때문에 그것은 분명 그의 눈에 난동을 부린 것으로 보였으리라. 하지만 자신이 이미 선을 넘었기 때문에 이 씨가 그런 반응을 보였다는 것은 인식하지 못할 확률이 높다. 박사장은 왜 기택에게 그렇게 당해야 했는지 마지막 순간까지 영원히 몰랐을 테니까. 갑은 영원히 모르는 행위로밖에는 해석할 수 없다.


직장을 그만둘 수 없는 입장인 이 씨는 여전히 회사에 다닌다. 중간에 조정이 약간 이루어지긴 했지만, 그들의 관계는 영원히 회복되지 못하리라. 깨진 항아리를 다시 붙여놓아도 물이 새는 것처럼, 둘은 이미 서로 선을 넘어선 관계이고, 현재 겉으로 보기에 조용하더라도 없었던 일로 돌아가지는 못한다. 다만 또다시 선을 넘지 않도록 이 씨는 무던히 노력을 하고 있다. 결론이 서글프지만, 그게 을의 삶이니까. 그래도 이 씨는 씩씩하게 대답한다. 자신은 갑이 되어서도 저런 선 넘는 갑질은 하지 않을 것이라고, 그게 얼마나 사람의 삶을 갉아먹는지 아니까.




선을 넘는 일들은 우리 주변에서 계속 벌어지고 있다. 비단 회사의 이 씨 문제뿐만 아니라 많은 가정에서도 이런 일들이 발생하고 있다. 부모 자식 간에도 지켜야 할 선이 있고, 부부 간에도 지켜야 할 선이 있다. 넘지 말아야 할 선이 있다는 말이 어쩌면 서글프게 들릴 수도 있다. 가까운 사이에 어떻게 선을 지키냐고 반문할 수도 있지만, 가까운 사이에서 상처를 더 심하게 받은 경험은 누구나 있을 것이다. 상처를 주는 입장이 아닌 받는 입장을 먼저 헤아려본다면 대인관계에서 선을 지키는 것이 조금은 더 쉬워지리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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