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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라슈에뜨 La Chouette Jan 17. 2020

흔들리지 말라 한다

손을 잡아줄 것인가?

요새 신조어로 '충조평판' 이라는 말이 있다. 충고, 조언, 평가, 판단을 뭉뚱그려 묶은 말이다. “충조평판만 안 할 수 있어도 공감의 절반은 시작된 것이다.” 심리 치유서 <당신이 옳다>에서 정신과 전문의 정혜신 씨가 한 말이라고 한다. 나는 기사를 읽었다. 정말 너무나 적절한 네 단어의 묶음이다.


우리는 주변에서 어려움을 겪는 사람들을 참으로 많이 만난다. 특히나 보이지 않는 갑질이 만연화 된 사회에서 우울증을 겪는 사람들은 계속 넘쳐난다. 주변 친구들을 돌아보아도, 본인이거나 자식이거나 가족 중에 우울증이 한 명씩 있는데 말을 안 하고 있을 뿐이라는 사실을 얼마 전에 깨닫고 정말 놀랐다. 남 보기에 전혀 문제가 없어 보이는 가정에서도 왜 이런 일이 생겨야 할까? 


안타까운 상황에 처해있는 사람들에게 뭔가 도움을 주고 싶어서 애를 쓰고 있지만 의외로 부작용을 겪게 되거나 상대방의 마음 문을 아주 닫게 만들어버리는 일이 너무 흔하다. 그러면 흔히, "내가 도와주려고 하는데 저 사람이 말을 안 들어."라고 그 사람 탓을 하면서, "그러니까 맨날 저러고 살지." 같은 꼰대스러운 말로 비난을 해버리고 끝을 내곤 한다. 




어떤 사람이 외줄 위에 서 있다. 바람이 불어 그 외줄이 흔들리고 있다. 그럴 때 우리는 혹시라도 옆에 서서 팔짱을 낀 채, "흔들리지 않게 중심을 잘 잡아."라고 말만 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그게 조언이라고, 충고라고 생각하면서 말이다. 한 술 더 떠서, "너만 중심을 잘 잡으면, 바람 따위가 너를 쓰러뜨리지는 못할 거야." 이렇게 말해주기도 한다. 하지만 줄 위에 서 있는 사람은 중심을 잘 잡고 싶지 않아서 그러고 있는 것이 아니다. 다만 중심이 안 잡히는 것이다. "심호흡을 해봐"라든지, "운동을 해봐" 같은 조언이 유용할 때도 있다. 하지만 대부분은 많은 방법을 이미 시도해봤지만 되지 않는 경우에 속한다. 


흔들리는 사람은, 계속 흔들리는 자신이 원망스럽기도 하고, 나는 뭐가 문제일까 하는 생각도 많이 한다. 그런데 거기에 대고, "멘탈이 그렇게 약해서 어떻게 살아가려고 해?"라는 말은 비수와 마찬가지다. 입 밖으로 그렇게 말하지 않아도 그런 눈으로 쳐다본다면 자신감은 더욱 떨어져서 더욱 흔들리다가 정말로 줄 밖으로 떨어질지도 모른다. 



이럴 때 우리는 어떻게 도와줘야 할지 잘 모른다. 열심히 머리를 굴려서 하나라도 더 유용한 조언을 해주려고 고민할 뿐, 막상 흔들리는 그 사람의 손을 따뜻하게 잡아주며, 흔들림을 완화시켜주려고 하는 경우는 정말 드물다. 고통받고 있는 사람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그 사람에 대한 이해이다. 아니, 이해하려는 마음이다. 그 사람이 왜 그렇게 되었는지를 분석하기에 앞서서 그 사람이 얼마나 힘든지를 공감하고 이해하려는 노력이 먼저이다. 


줄 밖으로 떨어져도 잡아줄 테니 안심하고 걸어보라고 말해줄 수 있을까? 몸으로 바람을 막아주려고 노력해볼 수 있을까? 손을 잡고 바람이 잦아들 때까지 기다려줄 수 있을까? 물론, 외줄 위를 걸어가야 하는 사람은 본인이다. 스스로 이 모든 것들을 이기고 극복해내야 한다. 남이 대신 줄을 타 줄 수는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바람이 불어서 똑바로 서기 힘든 상황에서도 왜 서야 하는지, 왜 서고 싶은지를 스스로 깨닫게 된다면, 그리고 자신이 혼자가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면 그것은 분명히 큰 첫걸음이 될 것이다.


너의 힘듦에 귀 기울여주고, 너를 있는 그대로 존중한다고 보여주는 것. 그것이 시작이다. 흔들림을 잡아줄 수 없을지언정, 더 흔들리는 원인을 제공하지는 않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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