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라슈에뜨 La Chouette Jan 10. 2022

핸드폰 분실 소동

요새 하루하루가 참 바쁘다. 남편은 방학중이었고, 딸이 와서 함께 지내는 중이기도 하고, 크리스마스, 연말에 이어서 신년 식사, 결혼기념일이 줄줄이 있고, 또 며칠 후가 내 생일이다 보니 놀기도 바빴다. 그리고 신년이 되니 영어수업도 새로 시작해야 해서 새로 교재를 만드느라 부산했다. 브런치 글은 지지부진 진도가 나가지 않는 중이었다.


크리스마스 글은 쓰다가 말았고, 송년 글은 시작도 못 했는데, 어느덧 새해가 시작되어버렸으니 나는 그야말로 마음만 바쁜 하루하루였다. 그래도 크리스마스 글이라도 좀 마무리를 하자고 사진을 찾아 정리하고 싶었지만, 그 글을 미뤄두고, 얼마 전 친 어이없는 사고 이야기를 먼저 써야겠다.


딸아이가 늘 앉아서 일을 하다 보니 몸이 아픈 데가 많아서, 여기 온 김에 한의원에서 침을 맞고 마사지를 받고 있었다. 일주일에 한 번 가는 치료의 마지막 날이었기에, 아이를 데려다 놓고 남편과 간단히 장을 본 후 다시 가서 아이를 데리고 나왔다.


요새 날이 추워서 긴 패딩 코트를 입었더니 몸이 둔하고 둥싯 한 게 영 불편했다. 영하 15도를 찍을 때에는 전혀 그런 생각이 들지 않았는데, 날이 그래도 풀려서 그게 더 불편하게 느껴졌나 보다. 특히나 차에 오르내릴 때 아주 버겁다 생각이 들었다.


집에 오는 길에 잠시 마이클스라는 공작용품 파는 가게에 들렀는데, 덜 춥다고 패딩 지퍼를 안 잠갔더니 차에서 내리면서 옷을 한가득 끌어안은 기분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원하는 물건은 가게에 없었고, 우리는 금세 다시 집으로 돌아가는 길이었다. 


딸아이는 차 뒷좌석에서 퀸의 노래를 흥얼거렸고, 나는 딸의 흥을 돋워주기 위해 그 노래를 틀어주려고 생각하고 핸드백을 뒤지는데 핸드폰이 보이지 않았다. 보통은 그럴 때 깜짝 놀라서 뒤지면 그 안에서 나오곤 했는데, 진짜로 거기에 없었다. 내가 놀라니 딸이 전화를 걸었는데 신호가 가지 않는다고 했다. 꺼져있는 것 같다고... 다시 남편의 전화기로 시도했더니 신호는 가되 받지는 않았다.


나는 급히 기억을 더듬었다. 딸아이를 데리러 한의원에 갔을 때, 나는 대기실에서 새로 수강할 분과 카톡을 나누고 있었기에 폰은 내 손에 들려있었던 것이 확실하게 기억이 났다. 그리고 그 이후에는 기억이 없었다. 운이 좋다면 차를 타다가 한의원 주차장에 떨궜을 것이다. 그곳은 사택에 있는 한의원이었기에 거기에 떨궜다면 그 자리에 그대로 있을 확률이 높았다. 하지만 전화기가 없으니 한의원 전화번호도 알 길이 없었다.


다른 확률이라면 마이클스 주차장에서 번잡스러운 코트를 끌어안고 내릴 때, 아마도 무릎 위에 놓았던 폰을 주차장에 떨어뜨렸을 수 있을 것이다. 사실 나는 이 방면에 전과가 여러 번 있었다. 특히 겨울철, 두꺼운 코트 위에 올려놓았던 장갑이나 지갑을 떨어뜨려 잃어버린 일, 그리고 잃어버릴 뻔했던 일들이 여러 차례 있었던 터라, 정말 웬만하면 무릎 위에 뭐를 올리지 않는데, 이번엔 가방 안에 넣은 기억이 전혀 없었다.


우리는 차를 돌려 마이클스로 갔다. 하지만 그곳은 작은 쇼핑몰이었고, 주차장은 넓었으며, 인적이 많은 곳이었다. 차를 세웠던 곳 근처를 둘러봤으니 폰은 찾을 길이 없었다. 마이클스 매장 안에서 흘렸을까 싶어서 그곳에 들어가서 물어봤으나 분실물은 전혀 들어오지 않았다고 말했다. 우리는 주차장 앞을 서성이다가 하는 수 없이 발길을 돌렸다.


우리가 차를 세웠던 앞쪽에는 화덕피자집과 대마초를 판매하는 가게가 있었다. 캐나다에서는 대마초 판매가 합법인지라 버젓이 가게가 열려있는데, 나는 어쨌든 마약을 판매하는 곳이니 정이 간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하필이면 그 근처에서 흘리다니!


우리는 하는 수 없이 차를 돌려서 집으로 돌아왔다. 집에 와서 한의원 번호를 찾아 여쭤봤더니, 원장님이 나가서 둘러보시고는 없다고 미안해하셨다. 사실 이런 것을 떨굴 때에는 차를 탈 때가 아니고 내릴 때일 확률이 높으니 거기는 아닐 것이다.


나는 컴퓨터로 로긴을 해서 "나의 아이폰 찾기"를 실행했다. 거기에는 내 폰이 꺼져있다고 나왔다. 누군가가 내 폰을 주운 후 돌려줄 생각이 있었다면, 남편과 아이가 전화를 걸었을 때 받았을 것이다. 그러나 대부분의 경우는 판매하면 비싸게 받을 수 있기 때문에 폰을 끄고 판매한다고 들었다. 실제로 딸아이 폰을 이탈리아에서 소매치기당했을 때 그 폰은 계속 꺼져있었고, 몇 달 후에 모로코에서 위치 추적이 떴다. 


나도 달리 뭔가를 할 방도가 없겠다 싶었지만, 일단 폰이 켜지거든 위치 추적을 하고 알림을 하도록 설정을 해놓고, 분실 모드로 전환을 시켰다. 혹시 개인정보가 누출될까 봐 iPhone 지우기까지 해야 하나를 살짝 고민했지만, 아직은 그렇게까지는 하고 싶지 않았다.




마음이 참으로 착잡했다. 왜 정초부터 이런 어처구니없는 실수를 하는 것인지... 이제는 뇌의 일부가 되었다고 농담할 정도로 핸드폰은 삶의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는데, 어쩌자고 이런 실수를 했는지! 그래도 딸은 큰 액땜을 했다고 생각하라며 나를 위로했다. "그래, 뭔가 더 소중한 것을 잃을 액땜을 한 거야."라고 나 스스로에게도 이야기했지만 참으로 속이 쓰렸다. 안 그래도 요새 연말연시로 인해 주머니 사정이 빠듯한데, 엉뚱한 곳에서 돈이 크게 깨질 생각 하니 그럴 수밖에 없었다.


내가 정말 흘린 걸까? 아니면 어리바리한 사이에 누군가가 내 열린 핸드백에서 빼간 것일까? 그래, 내가 핸드백 지퍼를 잠그지 않았었던 것 같아. 폰이 삐죽하게 나와있었을 수도 있었어... 견물생심을 일으켰을지도 몰라.... 다양한 상상을 했다. 그러자 언제나 잃은 사람이 죄인이라 하시던 어머니 말씀이 생각 났다. 내가 잃어버림으로 인해서 타인에게 의심이 가기 쉽기 때문이었다. 


나는 이내 다시 마음을 다잡고, 호쾌하게 말했다. "그래, 뭐 폰 바꿀 때도 되었지! 그까이꺼 낼모레가 생일인데 나 스스로에게 주는 생일 선물이라고 생각하지 뭐!" 하며 하하 웃었고, 저녁 식사를 준비하기 시작했다. 딸 더러는 엄마의 다음 폰이 뭐가 좋을지 좀 찾아보라고 말했다. 사실 나는 폰이 고장나기 전에 바꾸는 성격의 소유자가 못 되지만 그냥 그런 척 하기로 했다.


그래도 내 마음속에서는 어쩐지 잃어버리지 않은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그러나 뭐든 소중한 것을 잃고 나면 실감이 안 나는 것은 당연한 일일 것이다. 무슨 감 같은 게 있을 리 만무하다.


저녁은 딸이 먹고 싶다던 부대찌개를 푸짐하게 끓여서 세 식구가 배를 두드리며 넉넉히 먹었다. 먹고 나서는 영어수업 교재 녹음을 하자며 두 사람을 괴롭혔다. 셋이 깔깔 웃으며 녹음을 했다. 원어민 녹음 자료가 필요할 때면 늘 기꺼이 응해주는 식구들은, 그렇지만 녹음 중에 NG를 진짜 많이 낸다. 왜냐고? 웃느라고. 그냥 저절로 웃음보따리가 터진다. 


웃음이 터지면 녹음 화면이 터져나갈 것 같은 그래프가 생긴다!


그렇게 웃으며 녹음을 끝낸 후에 편집을 하고 있는데, 저녁 9시경, 집에 있던 또 하나의 아이폰에서 알림 소리가 떴다. 몇 년 전 떨어뜨려 액정이 깨져 실질적 사용은 못 하고, 한국 전화번호의 문자만 확인하는 용도였는데, 내 폰을 찾았다고 알림이 뜬 것이다.


나는 화들짝 놀라 컴퓨터로 확인을 해보니, 폰은 그새 다시 꺼져있다고 나왔지만, 위치는 내가 잃어버렸다고 생각한 그 주차장에 그대로 있는 것처럼 나왔다.



우리는 결국 밤 9시가 넘은 시각에 다시 그 주차장을 찾았다. 함박눈이 내리는 그곳에서 우리는 주차장을 맴맴 돌았다. 하지만 폰의 흔적은 아무 곳에도 없었다.


나는 체념하는 마음이 되었다. 누군가 폰을 주운 사람이, 퇴근을 하면서 주차장에서 잠시 켜봤다가 다시 끄고 집으로 가져갔나 보다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지 않고서야 주차장 한 복판에서 떴다가 사라질 수 있을까... 이렇게 여기서 헤매는 것은 의미가 없을 것 같았다. 


그냥 집으로 돌아가자고 다시 차에 올라타는 순간, 눈앞에 그 대마초 판매 가게가 다시 들어왔다. 어쩐지 그곳에 가서 한 번 물어보고 싶었다. 선뜻 내 손으로 그 집 문을 열고 싶지 않았지만, 그래도 한 번 물어본다고 무슨 큰일이 나겠는가 싶었다. 


나는 딸과 함께 조심스럽게 그곳의 문을 열었다. 잠겨있으려나 했는데, 아직 영업 중인 것 같았다. 우리는 잠시 망설이다가, 우리가 이 근처에서 폰을 잃어버렸는데, 혹시 누가 본 적 있느냐고 물었다. 그러자 두 명의 직원 중 한 사람이 친절하게 나오더니, 가게 밖으로 우리를 데리고 나갔다. 그리고는, 누군가가 전화기를 주워서 옆집인 피자집에 맡겼다고 말을 해줬다.


우리는 순간적으로 감사하고 당황하고 놀란 얼굴이 되었다. 피자집은 이미 영업이 끝나고 문이 닫혀있었다. 그는 문 닫힌 것을 직접 확인하고는, 지금은 닫혀있지만, 당신의 폰은 저 안에 안전하게 보관되어있으니 걱정 말고 내일 와서 찾아가라고 말해줬다. 세상에! 정말 그런 일이!!


집으로 돌아오면서 우리는 웃음이 터졌다. 너무 기쁘고 실감이 안 나서 실없이 웃었다. 그런데 왜 폰은 계속 꺼져있다고 나올까? 날씨가 추워서 꺼졌던 것일까? 우리의 전화 소리는 왜 그들에게 안 들렸을까? 여러 가지 상상은 계속 이어졌고, 폰이 내 손에 들어올 때까지 뱃속의 간질간질하고 아슬아슬한 기분은 사라지지 않았지만, 어딘가에 보관되어있다는 사실을 상기하며 나를 진정시켰다.


폰은 그렇게 밤새도록 켜졌다 꺼졌다 하며 내 마음을 확인하려 들었지만, 그렇게 불 꺼진 피자 집안에 남아있다는 생각을 하며 나는 잠자리에 들었다.




그 가게는 낮 12시에 문을 열고 저녁 8시에 문을 닫는 곳이었다. 우리는 12시가 살짝 넘은 시간에 그곳에 다시 도착했다. 남편이 내게 차를 주고 출근하려고 했지만 눈이 많이 와서 사륜구동 차를 가져가야 했기에, 직장 점심시간에 잠시 와서 우리를 그곳에 데리고 갔다.


가는 길에 생각해보니, 혹시 폰이 떨어지면서 고장이 나서 켜졌다 꺼졌다 상태가 안 좋았을 수 있을 수도 있겠다 싶었다. 그러고 나니 또다시 마음이 조마조마했다. 아니야, 괜찮아. 고장 나도 괜찮아. 사람이 다치지 않았고, 폰이 도용되지 않으면 다 괜찮은 거야... 그렇게 스스로를 위로하면서...


피자가게 안에는 두 명의 직원이 주문을 받고 있었다. 피자의 토핑을 직접 담는 스타일의 화덕피자 집이었고, 우리는 줄을 서서 기다렸다. 이윽고 우리 차례가 되자, 우리는 폰을 물어봤지만 직원들은 어리둥절한 표정이었다. 아마 저녁 알바와 낮 알바가 다른 사람들이어서 영문을 모르는 듯했다. 폰을 잃어버렸고, 옆 가게 사람이 그러는데 여기 맡겨놨다고 하더라고 말을 했더니, 한 명이 계산대 금전함을 열어보았다. 그리고 그 안에 내 폰이 있었다! 


기적 같은 일이었다. 길에서 흘린 폰을 되찾다니! 감사하다고 연신 인사를 꾸벅거리고는 가게를 나왔다. 피자라도 팔아줄까 싶었는데, 남편은 밀가루를 못 먹고, 딸은 유제품을 못 먹으니... 그리고 피자를 팔아준다고 그들에게 의미가 있는 것도 아니고, 게다가 그 직원들은 아예 폰의 존재 자체를 모르는 상황이었다. 그리고 폰을 주워준 사람이 누구인지는 더더욱 알 수 없었다.


남편은 급히 직장으로 돌아가야 했고, 우리는 그렇게 집으로 돌아왔다. 내 손의 폰은 너무나 얌전한 상태로 있어줬다. 왜 밤새 꺼졌다 켜졌다 했는지는 알 수 없었다. 아마 와이파이 없는 상태에서 인터넷 연결이 좋지 않았나 보다. 피자집은 시끄러워서 전화 벨소리가 들리지도 않았을지도 모른다. 어디선가에서 로그인하려고 했던 기록은 왜 떴는지 모르겠지만 그것도 그냥 우연이었던 것 같다. 




이렇게 연초의 사건은 에피소드로 마무리되었다. 물건을 잃은 사람이 죄인이라는 어머니 말씀은 역시 정답이었다. 나는 실제 존재하지도 않는 나의 핸드폰 도둑을 만들어서 의심하였으니 죄를 지은 것이 맞았다. 부끄러운 마음에 얼굴이 붉어졌다. 세상엔 물론 좀도둑도 있고 소매치기도 있다. 하지만 선량한 사람들도 참 많음을 다시 실감했다. 


주차장에서 발견하자마자 주인을 찾아주려고 근처 가게를 기웃거렸을 사람을 생각하니 따뜻한 마음이 가슴속으로 올라왔다. 나는 폰을 찾아준 사람들을 찾아서 감사를 전하고 싶었지만, 남편은 꼭 그렇게 갚기를 원하는 것 같지 않았다. 흘린 것을 찾아주는 것은 당연한 사람의 도리이니까. 그리도 우리도 또 그렇게 할 테니까.


그래서 뭔가 물질적인 감사를 표하기보다는 글을 남겼다. 피자집 홈페이지에 가서 감사 인사 메일을 보냈고, 대마초 판매점은, 구글 평점을 남기면서 좋은 사람들이라고 사연을 적으며 감사인사를 남겼다. 그리고 그 밑에 그들의 답변이 달렸다. 연락 줘서 고맙다고, 폰 찾아서 다행이라고...


그래, 아직도 세상은 따뜻한 사람들이 더 많다. 조만간 친구랑 같이 그 피자를 한 번 사먹어야겠다. 


매거진의 이전글 주는 기쁨을 만끽하는 순간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