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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라슈에뜨 La Chouette Aug 15. 2022

매해 빗물이 차오르던 마포

나를 업고 물을 건넜던 분이 생각 나는 날

이번 비 피해 소식은 정말 놀랍고 무서웠다. 어느 날 자고 일어났더니, 카톡에 친구 모친상 소식이 떠 있었다. 동창 모임 게시판에도 올라왔는지 보려고 앱을 띄웠는데, 타 모임에서 올린 이수역 비 피해 사진이 제일 위에 떠 있었다. 지하철 지붕이 내려앉는 짧은 동영상 사진이었다.


깜짝 놀라서 찾아보니 여기저기서 물난리 사진이 하나 가득이었다. 그것도 서울 강남 한 복판에서 이렇게 물이 넘쳐 오르다니, 이런 일이 어찌 가능할까 싶었다. 공포스럽게 잠긴 사진들을 보며 이러다가 지하철이 붕괴되면서 도시가 다 무너질 것 같은 모습이었다.



그렇다면 대책 없는 다른 작은 동네들은 어떨까 싶었다. 개천가에 사시는 어머니가 제일 먼저 떠올랐다. 그런데 시각을 보니 한창 주무실 시간이었다. 주무시는데 궁금하다고 깨울 수도 없고... 안 자고 일하고 있을 남동생에게 카톡을 했는데 괜찮을 거라는 짧은 답이 돌아왔다.


유튜브에서 뉴스를 띄우고, 기사도 검색을 했는데 일단 어머니가 사시는 동네에 관한 소식은 없었다. 왜 그 동네는 안 알려주는가를 애태우다 생각하니, 피해가 없으면 소식도 없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중에 여동생에게 들었는데, 개천이 가득 차긴 했지만 넘치지는 않았다고 했다. 그리고 마침 며칠 전에 지붕에 비가 새길래 수선을 했다는 것이다. 얼마나 다행이던지.


처음에는 비의 힘을 보여주는 소식들로 가득 찼던 뉴스가 피해자 소식을 전해오기 시작했다. 정말 눈물 없이는 못 읽는 소식들이 이어졌다. 반지하에 사는 사람들의 평소 안타깝던 사연에 얹어서 이런 불운이 닥쳤다는 사실이 속상하다 못해 분노하는 마음이 들었다. 정부의 손길보다는 자원봉사자들이 더욱 아름다운 손길을 내민다는 소식을 들으니 고마우면서도 또한 마음이 쓰렸다.


한국에서는 이런 심각한 피해는 이제 피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던 것은 그저 나의 착각이었다. 작년에 캐나다가 빗물에 휩쓸려 마을 전체가 다 물속에 완전히 잠기는 모습을 보면서, 우리는 이 정도 비에 이렇게 까지 되지는 않을 텐데...라고만 안일하게 생각했었구나 싶었다. 


내 기억 속에서는 그 옛날 매년 물에 잠기던 마포가 어느 해부터 더 이상 침수되지 않던 일만 남아있었던 것 같다. 그건 아마 내가 그 동네에서 자랐기 때문이겠지.


우리 동네는 여름마다 물에 잠겼다. 그리고 우리는 여름마다 그 꼴을 그냥 당했다. 우리 집은 지대가 높아서 잠기지는 않았지만, 집으로 가는 길목이 다 잠기곤 했다. 반지하도 아닌 집들이 물에 잠기고, 누구네는 겨울 연탄을 미리 장만해뒀는데 다 녹아내렸다는 안타까운 소식도 늘 이어졌다. 


한 번은 학교에 다녀왔더니 집으로 연결되는 골목길의 일부가 잠겨있었다. 망연자실한 순간이었다. 중3이었던 나는 교복차림이었기에 감히 그 안으로 들어서지 못했다. 다시 큰길로 나가서 한 정거장을 더 걸어가서 반대쪽 산길로 올라가야 하나, 그쪽은 과연 괜찮을까를 고민하고 있었는데, 바로 그 앞에 있던 가게 아주머니가 나를 보고 뛰어나오셨다. 단골이던 그곳은 심부름으로 가서 돈 없이 두부며 찬거리를 급히 사 오곤 하던 곳이었다. 당시에는 신뢰를 바탕으로 한 외상 결제가 가능했던 때문이었다. 


아주머니는 날더러 업히라고 하셨다. 나는 민망하여, 어찌 그러느냐고 사양하는데, 무조건 나를 들쳐 업고 침수된 곳을 지나 우리 집 올라가는 어귀에 내려주셨다. 물론 마주칠 때마다 인사를 드리곤 했지만, 평소에 나에게 특별히 말을 걸거나 친하게 지낸 적도 없었는데 정말 망설임 없이 베풀어주신 마음은 나를 크게 감동시켰다. 그 이후로도 공치사 같은 것은 전혀 없이 한결같은 그분이 나는 비 올 때마다 생각난다. 


비 피해를 입은 분들을 생각하면, 그까짓 교복 때문에 망설이던 내 모습은 언급하기도 죄송한 일이지만, 각각 다 어려운 살림 속에서 서로를 조용히 아끼던 모습을 떠올리며, 지금은 살아계신지 조차도 알 수 없는 그분께 감사를 드린다. 


이번 비 피해로 고통받는 분들이 너무 많아서 사실 나는 비 관련 글을 쓰지 않으려고 했다. 이 짧은 글솜씨로 어찌 감히 다룰까 싶어서였다. 어떻게 써도 가늠할 수 없는 고통에 그저 미안하고 안타까울 뿐이었다. 그래도 이 자리를 빌려, 비 피해로 돌아가신 분들의 명복을 빌고, 피해 지역들이 어서 복구되고, 고통받는 분들이 제대로 보상을 받고 새 삶을 다시 시작하실 수 있기를 염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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