규칙이 없다는 규칙
캐나다 비씨 주의 한 도시인 메이플 리지에는 리커넥스(Reconnex)라는 대안학교가 있다. 이 학교는 한 명의 교사와 한 명의 교직원이 이끌고 있는, 교육청 산하의 기관이다. 큼직한 하나의 교실과 그에 딸린 사무실이 전부인 이 학교는 일반 학교와는 완전히 다르게 운영되고 있다.
원래는 일반 학교 안에 들어있던 특별 프로그램이었는데, 여러 가지 문제에 부딪히게 되면서 교실을 학교 밖으로 끌고 나와버렸다. 처음에는 여섯 명 남짓의 학생으로 시작했던 이 학교는, 날이 거듭할수록 그 명성이 알려져, 지금은 70명이 넘는 학생이 이곳에 다니고 있다. 그리고 물론 그 사이에 많은 학생들이 매년 졸업해서 나가고 새로 들어오는 중이다.
이 학교에 오는 아이들은, 대부분 다른 기관에서 포기한 아이들이다. 가정이나 학교나 어떤 이유에서든 트라우마가 있는 아이들이 대다수를 차지한다. 정신적 장애가 있기도 하고, 육체적, 정신적, 성적 학대를 당했던 아이들도 있으며, 왕따를 겪은 아이들, 마약, 성매매 경험을 겪은 아이들도 있다. 너무 가난해서 제대로 학교에 다닐 수 없는 아이들, 집이 없는 아이들까지 다양하다.
아이들은, 적게는 일주일에 한 시간에서 시작해서 열두 시간까지 학교 수업에 참여한다. 정해진 수업 시간표가 따로 있지 않으며, 아이들은 각자 가능한 시간에 와서 가능한 시간만큼 공부를 하고 간다.
이 학교를 방문하는 사람들이 가장 놀라는 것은, 이 학교에는 규칙이 없다는 것이다. 상도 없고, 벌도 없다. 잘하면 스티커를 받는 일도 없다. 잘못했다고 쫓아버리겠다거나, 교실 한쪽 구석에 세울 일도 없다. 이 학교를 이끌고 있는 이들이 추구하는 것은 '조건 없는 사랑'이다. 그것이, "~하면 ~할 거야"라는 규칙이 있을 수 없는 이유이다. 그렇다고 해서 과장된 사랑의 표현도 없다. 혀 짧은 소리로 오냐오냐 해주지도 않는다.
학생들이 오면 교사와 교직원은 반갑게 인사를 해주는 것 이외에는 별달리 해주는 것이 있어 보이지도 않는다. 아이들은 스스로 공부하고, 모르는 것이 있으면 묻는다. 도움이 필요할 때에도 교사나 교직원에게 도움을 요청한다.
아이들은 스스로를 위해서 공부한다. 상을 받기 위해서도 아니고, 칭찬을 받기 위해서도 아니다. 많은 학교에서 수업 참가 불가능이라는 딱지를 받은 아이들이, 신기하게도 이곳에 오면 알아서 책을 펴고 공부한다. 다른 대안학교에서 온 보조교사는 이 분위기를 보고 깜짝 놀랐다. 이런 광경은 처음 본다고 했다.
새로운 아이를 받을 때에는 상담을 하는데, 이미 이때 아이들은 이곳의 분위기를 파악한다. 선택은 아이에게 있다. 여기 와서 공부하고 싶다고 결정하는 것은 오롯이 아이의 몫이다. 이 학교에 오기 전에, 다른 학교나 기관에서, 또는 어른들에게 부당한 대우를 받아 심리적 트라우마가 있는 것을 보면 교사인 티모시는 불같이 화가 난다. 그러나 학교에서는 그런 내색을 하지 않는다.
교직원 로리는 늘 말한다. "저 아이도 누군가의 자식이다." 세상에 자기 자식 귀하지 않은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그러나 많은 사람들이 남의 자식은 소홀히 대한다. 적응하지 못하는 아이, 장애가 있는 아이, 이런 아이들을 대하는 데에는 인내가 필요하기도 하지만, 내 자식이다 생각하면 못 할 것이 뭐가 있겠는가 하는 마음이다.
새로운 아이가 오면, 먼저 와 있던 아이가 자연스럽게 도와준다. 교사는 도와주라고 시키지 않는다. 그냥 너무 당연하다는 듯이 이런 일들이 일어난다. 선택적 함구증인 아이가 이곳에 오면 아무렇지 않게 질문에 답하기도 한다. 자폐증을 앓는 아이는 불안하면 짐볼 위에 앉아서 몸을 흔들어야 뭔가에 집중할 수 있다고 해서, 미리부터 공을 사다 놓기도 했는데 막상 그 아이는 이 학교에 온 이후로 그 공을 이용한 적이 한 번도 없다. 불안을 가라앉힐 필요가 아예 없기 때문이다.
도대체 이 학교에서는 무슨 기적이 일어나는 것일까? 왜 아이들은 반항하지 않고 스스로 자신의 일을 할까? 사회의 곳곳에서 아이들이 사실 제대로 된 대접을 받지 못하는 경우가 놀랄 만큼 많다. 우리네 학교에서도 아이들은 늘 스티커를 받기 위해 경쟁하고, 심지어는 일부 가정에서도 이런 당근과 채찍을 이용해서 자식들을 훈련시키기도 하는데, 이곳에서는 아무런 훈련도 일어나지 않는 것이다.
교사인 티모시가 존경하는 교육자는 알피 콘(Alfie Kohn)이다. 한국에도 이 교육자의 저서가 꽤 번역되어 나와있는데, 그의 교육법은 굉장히 파격적이다. 교실 안에는 자유가 있다. 누가 해야 하는 일이 정해져 있지 않다. 그 일을 할 수 있는 사람이면 누구나 참여할 수 있다. 무슨 일이 벌어져도 누군가의 책임으로 돌리지 않는다. 무슨 일로 인한 비난이 돌아오지 않는다. 이 학교의 방식은, 아이들을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아이들이 스스로 배우도록 돕는다는데에 포인트가 있다.
이 교실의 운영방침은 아주 자연스럽고 인간적이다. 아이들을 존중하고, 사랑하고, 하나의 인격체로 대할 때, 아이들은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스스로 배운다는 것이다. 공평하다는 것은, 모두에게 똑같을 것을 준다는 것이 아니다. 더 못하는 것이 부끄럽지 않고, 더 잘하는 것이 자랑스럽지 않다. 그냥 자신의 일을 하는 것이다. 그야말로 사람 구실을 하는 것이다.
아이들은 너무나 쉽게 자신들이 사랑을 받고 있다는 것을 인식한다. 교직원은 원칙상 서류 업무만 해야 하지만, 로리는 아이들과 대화를 나누며 그 아이들의 정서적인 면을 기꺼이 돕는다. 교사가 권위를 가지고 교직원을 대하지 않는다. 그들은 서로 의논하고, 서로가 필요한 부분을 채운다.
물론 그들의 교육방식이 처음부터 순조로웠던 것은 아니었다. 반대와 질시의 시선이 있었고, 통제를 하고자 하는 손길도 있었다. 그럴 때마다 교사인 티모시는 강경하게 대처했다. 이 방식이 싫으면 언제든 해고하라는 자세였고, 꿋꿋하게 밀고 나갔다. 아이들의 변모를 보며 주변의 시선은 바뀌어갔고, 사람들은 감동하기 시작했다.
담당교사인 티모시는 며칠 전 은퇴를 했다. 어느덧 나이 70이 되어서, 매년 미루던 은퇴를 올해는 꼭 하기로 결심했지만, 아이들을 떠나는 일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는 자식을 두고 떠나는 마음을 느꼈기에 그 작별이 너무 아파서 은퇴를 앞두고 심지어 공황장애까지 겪었다.
그의 소원대로 은퇴는 은퇴식 없이 아주 조용히 이루어졌지만, 그래도 같은 건물의 많은 교사 및 직원들이 교실로 찾아와 그를 향해 경건한 축하의 말을 건넸다. 눈물의 시간이었다.
당신으로 인해 많은 것을 배웠고, 더 나은 사람이 되었다. 너무나 감사한다.
새로 오는 교사가 어떤 사람이 될지에 대해서 모두들 엄청나게 고민을 했다. 지금까지 쌓아온 이 공동체의 분위기를 잘 유지할 사람이 필요한 것이다. 갑자기 나타나서 규율을 세우고 아이들을 통제하기 시작한다면 모든 것이 무너질 것이기 때문이다.
몇 사람의 면접을 봤는데, 그중 한 사람인 신디는 이 학교에 왔을 때의 첫인상을 "놀랍도록 평화롭고 조용하다."라고 말했다. 예전에 다른 문제아들이 있는 대안학교에서 일한 경험이 있는 그의 입장에서는, 이런 학교가 이렇게 평화롭게 유지될 수 있다는 것이 무척 놀라웠다. 그리고 궁금해했다.
티모시는 그에게 알피 콘의 책을 두권 내밀었고, 그는 그것을 가지고 가서 읽었다. 그리고 다음번 교사로 그가 선정되었다. 앞으로 그 학교가 어떻게 흘러갈지 모르겠지만, 이미 구축된 이 분위기를 잘 이끌고 나아가서 더 많은 아이들이 희망을 가지고 어둠에서 나와 자기의 길을 찾아가길 기원한다.
쓰다가 오래 미뤄 둔 글을 마무리해서 오마이뉴스에 실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