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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라슈에뜨 La Chouette Dec 05. 2022

기꺼이 고슴도치가 되고 말았다

백개가 넘는 침을 온몸에 꽂다니!

얼마 전부터 수시로 허리가 아팠다. 아마 주된 원인은 스트레스가 아니었을까 싶다. 계속 무리하고, 계속 잠 못 자고... 그래도 긴장 상태일 때에는 그럭저럭 잘 넘어갔는데, 일이 얼추 해결이 되기 시작하면서 몸에 탈이 나기 시작했다.


한국에 돌아와서 마당일을 하다가 급기야 탈이 났다. 삽질을  때에는 괜찮았는데, 막상 그다음 날부터 아프기 시작했다. 보통은 그래도  이틀 쉬면 괜찮아지는데 낫기는커녕 오히려 점점  심해졌다.


한국 다니러 가기 전에도 아팠었는데, 그때는 침술 하는 친한 후배가 침을 놔줘서 금방 나았었다. 그런데 또 이지경이 되고 나니 바쁜 그 후배에게 또 부탁하기도 염치가 없었다.


사실 한국에서는 허리 삐끗해서  맞으러 가는 것은 일도 아니다. 동네에 한의원이 넘쳐나고, 가격도 얼마나 저렴한가. 그러나 여기 캐나다에서는 침이 보험이  되기 때문에 한번 맞는데 평균 100불이 든다.


하지만 점점 더 아파져서 결국 며칠 버티다가 예전에 알던 한의원에 가서 침을 맞았다. 그렇게 맞고 오면 이삼일 지나면 괜찮아져야 하는데 여전히 상태는 미궁 속이었다.


앉아있으면 힘든데, 아침저녁으로 온라인 수업을 진행하니 그러고 나면  나빠졌다. 이걸 이대로 둬도 될까 하는 불안감이 들다가, 이게 혹시 디스크일까 하는 생각까지 드니 참으로 답답했다. 눈앞에는  일이 태산인데 말이다.


그렇다고 침을 맞으러  가기엔 너무 부담스러웠다.    맞는 것으로 해결이 되지도 않을  같으니 말이다. 전에 침을 놔줬던 후배에게 투덜댔더니, 그러면 학교에 가서 맞아보면 어떻겠느냐는 말을 해줬다.


맞다! 그런 게 있었지! 여기는 한의사라기보다는 침술사 면허를 따서 침을 놓는다. 정식 대학과정을 오래 밟는 것이 아니라 자격증을 따는 학교가 있는 것이다. 그러면 학교에서는 실습을 해야 하는데, 대학병원 같은 개념이 아니니 환자를 볼 수 없다. 그래서 자원자를 찾는다.


옛날 옛적 프랑스에 있을 때, 미용학원 광고를 종종 봤었다. 미용실이 비싼 그곳에서 엄청나게 싼 가격으로 머리를 해준다는 광고였다. 들리는 소문에 의하면, 원하는 스타일로 자를 수 없으며, 그들의 실습과제를 내 머리에 적용하는 것이라고 했다. 어떤 머리를 해놓을지 모르니 막상 무서워서 가보지 못했다.


하물며 헤어스타일도 그런데, 건강과 직결되는 침을, 이렇게 가서 학생들에게 맞아도 될까? 예전의 나라면 절대  갔을 것이다. 그런데 거기 다녔던 후배가, 교수  만나면 진짜 좋다는 말을 전에도 했었고, 믿는 그녀였기에 나도 신뢰가 갔다.  코가 석자이니 한번  보자 싶었다.


사실 건강과 안전이 직결된 문제이고, 환자잘못되면 학교가  닫아야  수도 있기 때문에 그럴수록 학교 측도  신경을  것이라는 것이  생각이었다. 학생들이 침을 놓기는 하지만, 교수가 와서 침놓을 곳을 알려주고, 지켜봐 주며, 중요한 곳은 교수가 시범으로 직접 놓아준다고 들었다.




전화로 예약하고 학교를 방문했다. 도착해서 간단히 정보를 써넣고 나서 진료실로 안내를 받았다. 그곳에는 두 명의 학생이 앉아있었다. 학생이라고 했지만, 박사과정이라고 들었고, 그렇다면 이미 한의사 자격증을 딴 사람들일 것이었다. 이런 한의학 학교는 전부 중국인이 운영하는 것 같다. 그들도 중국인들이었고, 자기들끼리는 중국말로 했다.


침 맞은 후 진료실의 모습을 찍었다

자세한 문진으로 진료가 시작되었다. 꼼꼼히 질문하고, 진맥 하고, 혀도 체크했다. 고개를 끄덕끄덕 하기도 하고, 서로 의논도 하며, 아주 진지한 시간이 이어지고 나서, 옷을 갈아입으라고 했다. 가운으로 갈아입고 엎드려 있으니 교수로 보이는 사람과 함께 들어왔다. 교수는 간단히  가지 질문을 하더니, 아픈 곳을 찾아 손으로 눌러가며 진찰을 하고는 침을 놓았다. 침을 놓는 가운데에도 계속 중국어 강의가 이어졌다.


다행히도 디스크는 아니라고 했다. 근육이 긴장으로 뭉쳐있는 것이어서 그것을 풀어주면 된다고 하니 나도 좀 마음이 놓였다. 꽤 여러 군데 침을 놓은 그는, 학생들에게 뭔가 지시를 하고 나갔다. 진료는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남은 학생들은 내 어깨를 만져보더니 어깨도 뭉쳐있다며, 그곳에 부항을 떠주고, 침을 놓았다. 그리고 미미하게 다리도 부어있다고 다리에도 침을 놓았다. 어깨와 허리 지압도 해주고...


시간은 빨리 갔고, 진료는 자그마치 한 시간 반이 넘게 걸렸다. 우리가 보통 한의원에 가서 받는 서비스보다 훨씬 집중적이고 길었기에, 집에서 좀 멀리 갔어도 아주 흡족한 진료였다. 게다가 가격은 한의원의 1/5 밖에 안 되었으니, 뭔가 몹시 호강하고 나온 기분이 들었다.




정말 일어나 앉기도 어려웠던 허리는, 그 이후 사흘에 쳐서 서서히 나아졌다. 당시에 너무 아팠기 때문에, 일주일 후에도 진료를 예약해놓았는데, 굳이 다시 진료받으러 가지 않아도  만큼 호전되었다. 일상생활에 무리가 없었으나, 완전한 치료를 위해서 일주일 다시 방문했다.


같은 팀에게 진료받게 해달라고 했으나, 다른 학생들이 들어왔다. 모두 같은 그룹이라고 했는데, 서너 명의 학생이 한꺼번에 나를 진료했다. 위장도 좀 안 좋은 것 같고, 어깨도 많이 뭉쳤으며 어쩌고 저쩌고 하는데, 나는 그냥 맡겨둔 채 엎드려 있었다. 그랬더니 정말 적극적으로 치료에 임했다. 머리에서부터 발끝까지 수많은 침이 꽂혔다. 100개가 넘는 침을 한 번에 맞아 본 적이 있던가? 고슴도치가 된 기분이었다.


 뒤로 뒤집어 가면서 역시  시간 반 동안 진료받았다. 이번엔 배에 쑥뜸도  줬다. 그들은 나를 통해 실습을 하는 것이지만, 단순히 해보는 것이 아니라, 진심으로  몸이 좋아지게 하고 싶은 것이 보였다. 정성을 다해 진료하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내가 그날의 진료상황을 그 후배에게 말했더니 깔깔 웃더니 이렇게 말했다.


"언니! 운이 좋은 거야. 그렇게 침 많이 사용하면 그 사람들 나중에 혼날 텐데!"


그 말을 듣고 보니 그럴 수 있겠다 싶었다. 학교이고, 그게 실습비에 들어가니 그것에 관한 규정이 있겠구나! 그러고 보면, 한의원에서도 그런 생각을 하며 침을 놓을 수도 있겠다 싶기도 했다. 실력이 좋으면 최소한으로 효과적인 곳에만 놓을 수도 있을 테니, 유능한 한의사들에게는 고민할 필요가 없는 영역일 수도 있겠지만 말이다.




이런 장소가 모두에게 잘 맞을지는 모르겠다. 내가 원하는 것을 확실하게 주장하기 어려운 부분도 있고, 내가 원하는 의사를 꼭 집어서 선정할 수도 없다. 누가 진료를 해줄지 모르니 약간의 도박 같은 면도 있다.  생각보다 많은 곳에 침을 맞게 될 수도 있고, 또 반대로 더 적은 치료를 받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비교가 안 되는 저렴한 진료비에, 정성껏 장시간 이어지는 진료는 나 같은 사람을 감동시키기에 충분했다. 게다가 10회권을 구매하면 거기서 25%를 더 깎아주니, 나는 덜컥 구매를 하고 말았다. 가족도 함께 사용할 수 있다고 하니, 크리스마스 때 딸이 오면 함께 가서, 혹사시킨 딸의 목과 어깨를 부탁할 참이다.




* 표지 사진출처 (진료 중 직접 찍을 수 없는 관계로) : https://www.pexels.com/ko-kr/@thirdm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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