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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라슈에뜨 La Chouette Dec 22. 2022

산타가 되고 싶다

크리스마스를 기쁘게 보내는 또 하나의 방법

크리스마스가 코 앞으로 다가왔다. 평소 밴쿠버처럼 맨날 비가 추적추적 내린다면 별 기분이 안 나겠지만, 이번 겨울에는 눈이 듬뿍 와서 벌써 크리스마스가 된 기분이다.


캐나다에서는 크리스마스가 한국의 추석만큼 중요한 날이다. 가장 큰 명절인 셈이다. 사람들은 정말이지 크리스마스에 진심이다. 집 안팎을 아름답게 장식하고 트리도 예쁘게 꾸민다. 우리 동네도 사방이 아름답게 장식되어있다.


그리고 크리스마스에는 무엇보다도 선물이다. 가족들과 친구들, 사랑하는 사람들의 선물을 사느라 길거리는 교통 지옥이 된다. 쇼핑하러 다니는 사람들로 추운 날씨에도 거리는 무척이나 붐빈다.


이렇게 크리스마스의 열기가 뜨거울수록, 오히려 크리스마스가 더 춥게 느껴지는 사람들이 있다. 눈이 모두에게 따스하고 포근하게 느껴지는 것은 아닐 것이다. 그 사람들은 우리에게 가까이 닿는 사람일 수도 있고, 멀리 있는 사람일 수도 있다.


어제 눈 다 치웠는데, 오늘 새롭게 이만큼이 싸였다.


남편은 은퇴하기 전까지 학교에 있는 아이들 중에 도움이 필요한 아이들을 챙기는 일을 잊지 않았다. 일 년 동안 모은 슈퍼마켓 포인트를 기프트 카드로 바꿔서 주기도 하고, 여기저기의 손길을 모아서 나누기도 했다. 남편이 일하던 대안학교에는 형편이 어려운 아이들이 많았기 때문에 남편이 더 신경을 썼던 것이다.


올해는 이미 은퇴를 했지만, 남편은 여전히 마음이 그곳에 가 있었다. 그래서 여러 가지 상품권과 돈을 옛 동료에게 보냈고, 그 동료는 그것을 어떻게 사용했는지 이메일을 보내왔다. 그것으로 여러 명의 아이들을 도울 수 있었다는 기쁜 소식이었다.


또한 동네 커뮤니티에서도 도움 요청의 글이 올라왔다. 초등학교 교직원이라는 그녀는, 크리스마스 바구니 행사에 참여할 사람들을 찾고 있었다. 우리가 신청의 덧글을 달자, 우리에게 두 명의 아이들이 배정되었다. 그 아이들이 뭘 좋아하는지, 선물로 뭘 주면 좋을지에 관한 목록이었다.


남편은 정말 정성껏 선물을 준비했다. 목록에 있는 것들 중 일부만 준비하면 되는 것 같았는데, 전부 꼼꼼히 챙겼다. 바비 인형이라는 목록에서는 아류 바비가 아닌 바비 정품을 꼭 사야 한다고 주장했다.


옷가지와 장난감, 가족용 보드게임 등을 포장지와 함께 전달하였다




우리는 종종 도움의 손길을 내주면서, 선심 쓰기 내지는 생색내기를 하게 되는 경우가 많다. 돕기 위해 돕는 행위 같은 것을 말한다. 형편도 어려운데 뭐라도 주면 고마운 것 아니겠느냐 생각하는 마음에는 위선과 자만심이 들어가기 쉽다.


예전에 퀼트 모임을 운영하면서, 그룹단위로 불우청소년 돕기 일을 오래 했었다. 그러면 반갑지 않은 초대의 자리가 종종 생기는데, 장학 증서를 직접 주라는 종류의 행사이다. 어쩐지 생색내는 것 같아서 반기지 않는 자리였다. 그리고 그런 곳에가면, 함께 참여하는 기부자들 중에서, 혜택을 받는 아이들을 상대로 그런 티를 내는 사람들이 종종 있어서 마음이 상하곤 했다.


이를테면, "네가 지금 이렇게 도움을 받으니, 나중에 너도 훌륭한 사람이 되어서 꼭 다른 어려운 사람들을 도와라." 하는 종류의 충고이다. 좋은 의도로 하는 말이겠지만, 나는 솔직히 그 말이 너무 끔찍하게 들렸다. 그 말을 듣는 순간 아이들은, 그 장학금이 선물이 아니라 빚이 되는 것이었다.


가난은 그 아이들의 잘못이 아니다. 다른 아이들이 누리는 것을 누리지 못하고 있기에 그런 도움이 필요한 것인데, 원래부터 넉넉한 아이들은 듣지 않을 충고를 왜 그 아이들은 들어야 하는 것일까? 우리가 그 아이들을 돕는 이유는, 비록 너희가 잘못한 것이 없이 이렇게 어려운 상황에 있지만, 사회가 너희들을 저버리지 않으려고 노력하고 있으니 꿋꿋이 이겨내서 행복한 사람으로 자랐으면 좋겠다는 것이 내 솔직한 마음이었다.


그 아이들이 고마워야 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 사회가 그 아이들에게 미안해야 한다고 나는 생각하기 때문이다. 은혜를 갚는 마음은 스스로의 가슴에서 나와서 해야 진짜 은혜 갚음인 것이지, 시켜서 하는 것은 그저 빚을 갚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나보다 한참 선배인 그 장학금 수여자의 심기를 잘못 거슬려서, 추후로 장학금을 안 주겠다고 할까 봐 나는 그저 아무 말도 안 하고 있었지만, 그 이후에 있었던 점심식사 시간에 나왔던 이야기는 더욱 슬펐다. 이런 자리를 통해서 아이들에게 감사하는 법을 가르쳐야 한다고 자랑스럽게 이야기를 하면서, 그렇지 않으면 그 아이들이 도움받는 것을 당연하게 여기게 될 것이라는 것이었다.


실 예로, 어느 학교의 어려운 형편에 있는 아이들에게 방과 후에 초코파이 같은 간식들을 주곤 했는데, 어느 날 한 아이가 이렇게 말을 했단다.


"그 초코파이 값 아껴서 피자 한 번 사주시면 안 돼요?"


그 말을 한 아이가 어째서 분수를 모르는 아이가 되어야 했는지 나는 모르겠다. 없이 사는 형편에, 주는 대로 감지덕지 먹어야 하는 것이라는 논리가 적용되는 것이었다. 나는 그 말을 들으며 너무나 가슴이 아팠다. 왜 가난한 아이는 피자를 먹고 싶으면 안 될까? 딴에는 돈을 더 달라고 하기 미안하니, 초코파이 안 먹고 아껴서 피자를 먹고 싶다는 그 소망이 왜 배은망덕함으로 둔갑되는지 너무 안타까웠다.


우리가 누구를 돕고 싶다면, 정말 순수하게 상대방을 위해서 도울 수 있기를 바란다. 내가 그에게 선심을 베풀고 있으니 더 우월하다는 생각을 하는 것은 정말 오만한 태도라고 생각한다. 상대는 나보다 못한 존재이고, 내 통제하에 고분고분하며 그 혜택을 누리라고 말한다면 그것은 선행이 아니라고 말하고 싶다.


그리고, 상대에게 감사 인사를 듣기 위해서라든지, 나를 멋진 사람으로 봐줬으면 좋겠다는 마음 같은 것이 없기를 바란다. 나아가 언젠가 상대가 나에게 보답을 해줄 거라는 기대도 역시 없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우리가 정성 가득 모아 담은 선물 박스는 무사히 초등학교로 인계되었다. 선물을 받는 아이는 누가 주는지 모르고 받을 것이다. 준비된 선물을 자원 봉사자들이 포장할 것이다. 우리는 그 아이들이 선물을 받고, 이번 크리스마스를 따뜻하게 보냈으면 좋겠다. 그러면 우리가 산타가 된 것 같은 기분이 들 것 같다.


서양의 크리스마스는 아주 큰 명절이자 사랑의 시즌이라고 생각한다. 선물이 넘치는 넉넉한 인심 속에, 모두를 사랑할 수 있는 마음이 있으면 좋겠다. 산타클로스가 상업적 캐릭터라고 욕을 하는 대신, 그냥 우리가 산타가 되어줄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재정적으로 어려운 사람에게든, 마음이 아픈 사람에게든, 주변에서 묵묵히 일하는 사람에게든 말이다. 물론 사랑하는 사람들에게도 기꺼이 산타가 되어주는 날이 크리스마스면 좋겠다.



남편은 올해에도 작은 기프트 카드들을 준비했다. 쓰레기와 재활용품 등을 수거해가는 분들과 우편배달부에게 감사를 표하기 위해서이다. 우리말의 떡값이라는 단어가 뇌물이라는 뜻으로 변질되기 전의 시절, 우리 어머니도 동네 쓰레기 수거하시는 분들께 명절이면 떡값을 드리곤 했었다. 그 분들 덕에 우리가 편한 삶을 살고 있으니 고맙게 생각해야한다고 하셨던 기억이 난다.


시간 맞춰 나가서 인사하고 주는 것은 엄청 번거로운 일이니, 이렇게 큰 지퍼백에 기프트카드를 담아서 쓰레기통 앞에 미리 붙여 놓는다. 그들은 수거해가면서 경적을 두 번 울려서 감사를 표하기도 하고, 우편물에 스마일 표시를 넣어서 마음을 전하기도 한다.


우체부 아주머니의 스마일 표시에 우리 얼굴도 스마일이 되었다


많은 사람들이 행복한 크리스마스라는 명절, 보다 많은 사람들이 함께 행복해지길 기원한다. 언젠가는 정말 산타가 되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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