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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라슈에뜨 La Chouette Jan 09. 2023

하루 늦게 찾아온 크리스마스

산타도 기다려주었다

우리 집은 크리스마스에 진심이다. 내가 원래부터 그랬던 것은 아니었고, 남편은 원래부터 그랬다. 그런 사람과 만나서 살다 보니 나 역시 점점 진심이 되어갔다.


일 년 내내 크리스마스 양말에 넣을 선물을 조금씩 모으기도 하고, 겨울이 다가오면 이런저런 크리스마스 준비로 분주해진다. 음식과 선물 계획을 세우고, 마당에 크리스마스 장식을 고민한다. 생나무 트리를 어디서 얼마 주고 언제 살 것인가를 고민하며 마트를 기웃거리기도 한다.


날짜가 다가올수록 분주하다. 가까운 곳에 하는 기부도 있지만,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표현하는 선물도 만만치 않다. 지인들에게 보내는 선물은 대부분 직접 만든 것들로 구성되기에 더 바쁠 수밖에 없다. 


너무 정신없는 기간이어서, 선물을 준비하는 사진을 제대로 찍어본 적이 없다. 올해도 결국 깜빡 잊고 다 나눠준 다음에 생각이 났다. 그야말로 혼이 빠지는 기간이다.


이번에 구웠던 것 중 하나인 시나몬 롤 사진이 한 장 찍혔다


올해는 크리스마스 전, 일찍부터 날씨가 나빠지기 시작했다. 폭설이 여러 차례 내리면서 길이 마비 되고 혹한이 찾아왔다. 그래서 준비가 더 힘들기도 했다. 우리가 선물을 배달하기로 했던 23일은 얼음비가 내려 땅이 그야말로 빙판 그 자체였다. 비가 오는데 날씨가 영하인 이상한 상황이었다.


결국 선물을 모든 곳에 배달하지 못하고, 두 번에 나눠서 가기로 했다. 사실 나는 이 난리통을 좀 정리하고, 크리스마스이브에 만큼은 집에서 좀 여유롭게 크리스마스 맞이 준비를 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올해에는 피칸파이도 굽고 싶었고, 진저브레드 쿠키도 굽고 싶었다. 그게 내가 옛날에 크리스마스 때 하던 것이었기에, 나도 나의 크리스마스 전통을 찾고 싶었다. 그래서 남편이 24일로 모든 배달을 미루자고 했지만, 굳이 23일에 하고 싶다고 우겼다. 


이웃집에 매달린 고드름


문제는 그렇게 나갔던 23일, 그 이상한 얼음비를 조금 머리에 맞았을 뿐이었는데, 머릿속으로 이상하게 한기가 드는 기분이 들더니, 그날 저녁부터 갑자기 앓아누워버렸다는 것이다. 내 욕심이 벌을 받은 것일까? 나는 정말 일어나지도 못하고 크리스마스이브 내내 누워서 지내야 했다. 남편은 혼자 나머지 배달을 다녀왔고, 필요한 장도 다 혼자 봐왔는데, 나는 내다보지도 못하고 누워서 앓았다.


초저녁쯤 일어난 나는 크리스마스 어떻게 하느냐고 걱정하는데, 남편은 그냥 며칠 기다려도 된다고 말을 했다. 우리는 아직 크리스마스 트리에 장식도 달지도 못한 상태였다. 남편은 내가 끓여놨던 사골국을 데워서 나를 줬고, 나는 이걸 먹은 후에 트리 장식을 달자고 했다. 


"그래, 그러면 좀 더 자고 이따가 한 9시쯤 하자."


남편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고 방으로 들어가 누웠지만, 다시 눈을 떴을 때는 이미 열두 시가 다 된 시각이었고, 딸아이는 잠자리에 이미 들고 난 다음이었다. 황당해하는 나에게 남편은 이렇게 말했다. 


"우리가 장식을 반쯤 달았어, 그리고 나머지는 내일 함께 달기로 했어."


나는 이렇게 망쳐버린 크리스마스가 너무 속상했다. 남편과 딸과 오손도손 재미난 준비를 하고 싶었던 꿈은 다 날아갔고, 내 몸은 여전히 천근만근이었다. 과연 다음 날은 몸을 일으킬 수 있을까? 나는 또 밤새 앓으면서 자다 깨다 했다.


새벽 네시쯤 깨어나서 화장실에 들렀다가 거실로 갔더니 트리 장식이 달려있었다. 박스에는 크리스마스 양말이 얌전히 누워있었다. 정말 오늘 밤에는 산타가 오지 못하겠구나 하는 마음이 들었다. 나는 박스에서 양말을 꺼내서 벽에 걸었다. 그리고 다시 잠자리에 들었다. 


눈을 뜨니 크리스마스 아침이었다. 옆에서 "메리 크리스마스"라고 속삭이는 남편을 보며, 나는 오늘은 꼭 일어나야겠다 싶었다. 남편은 여전히 핫팩을 데워다 주고, 대구 간유를 갖다 먹여주고, 점심으로는 사골국을 데워주었다. 


크리스마스날 점심 식사도 그렇게 건너갔다. 딸은 달걀 샐러드를 간단히 만들어서 아빠와 나눠 먹었다. 나는 안 되겠다 싶어서, 오늘은 꼭 크리스마스를 하겠다고 말했다. 그리고 앓고 난 찌뿌드 한 몸에 일단 샤워를 해서 문화인이 된 기분을 먼저 느꼈다. 준비해뒀던 선물을 포장하고 카드를 썼다. 그래서 우리는 하루 늦게 크리스마스이브가 시작되었다. 


이브에 먹기로 했던 차우더 수프를 끓인 남편을 보면서, 이번엔 나도 같은 식사를 하겠다고 말하고, 적은 양을 함께 먹었다. 저녁 식사 후에는, 남편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드는데도 다음 날 아침식사로 먹을 스콘을 미리 반죽해서 냉장고에 넣었다. 나는 거의 계량만 하고, 딸이 모든 일을 다 해줘서 어렵지 않게 끝났다.

트리 장식을 완성하고 나니 너무 좋았다

밤이 더 깊어지기 전에 우리는 셋이서 함께 트리 장식을 시작했다. 트리는 반짝이는 불빛을 매달은 채, 우리의 추억들을 하나씩 하나씩 더 받아들였다. 


내가 아이 키우며 함께 만들고 걸었던 장식들, 남편이 자기 자식들과 함께 했던 장식들 뿐만 아니라, 우리가 함께 하면서 추가된 장식들까지 가득 찬 전나무는 아주 빼곡하게 아름다웠다. 내 눈에, 트리는 모름지기 이래야 예쁘다. 똑같은 구슬이 똑같은 간격으로 달린 트리는 백화점 장식품처럼 보이지 않겠는가. 하나씩 걸면서 농담도 하고, 추억도 떠올리는 순간이 참으로 소중했다. 


장식을 마친 우리는 소파에 앉아서 한참 동안 나무를 쳐다봤다. 그리고, 크리스마스이브 선물을 풀었다. 노바스코샤 시누이에게서 온 크리스마스트리 장식, 그리고 내가 우리 가족을 위해서 구입한 트리 장식을 꺼내서 추가로 나무에 걸었다. 


마지막으로 크리스마스 양말까지 모두 채우고 우리는 잠자리에 들었다. 평소 같았으면 이 대목에서 뭔가 술을 한 잔 하며 더 노닥거렸을 텐데, 그럴 기운은 없었다. 어서 자지 않으면 내일 크리스마스 놀이를 못할지도 모르니까...




자면서 기침을 하느라 힘들었지만, 그래도 아침에는 눈이 떠졌다. 남편이 나를 걱정스러운 듯 바라보더니 "메리 크리스마스!"라고 말했다. 그렇게 몸을 일으키고 우리는 우리만의 크리스마스를 시작했다. 어린아이들이 있다면 달려들어서 선물부터 풀어야겠지만, 성인 세 명이 있는 집 크리스마스에는 아침 식사가 먼저였다.



갓 구운 스콘과 시누이 댁에서 날아온 잼들과 버터로 전형적 크리스마스 아침식사를 시작했다. 따뜻하고 정겨운 크리스마스의 시작이었다. 하루가 늦었다는 티는 아무 데도 나지 않았다.


든든히 배를 채우고 나서 우리는 선물을 열기 시작했다. 서로가 서로를 위해 준비한 선물들은 나무 밑에 있었고, 산타가 가져온 선물들은 양말과 그 옆의 상자에 차곡차곡 들어있었다.



산타의 선물은 개인별 선물보다 소소하지만 재미나다. 개인 선물은 좀 더 묵직하고 가격대가 나가는 것이라면, 산타의 선물은 정말 몇 푼 안 하지만, 평소에 스스로를 위해서 선뜻 사지 않을 만한 것들로 구성된다. 


산타의 양말 안에는, 과거에 겨울이면 귀했던 과일을 상징하는 귤이 하나 들어가고, 그다음 소품들이 차곡차곡 들어간 뒤, 맨 마지막에 산타 지팡이 모양의 사탕을 꽂아서 산타의 흔적을 남겨주는 것이다. 아이들은 입에 사탕을 물고 선물을 하나씩 꺼낸 후, 마지막에 귤로 입가심을 하는 셈이다.


내가 올해 받은 산타의 선물들

올해 내가 받은 것들은 이런 것들이다. 식구들이 일 년 내내 서로를 생각하며 모은 것들.


수프를 마실 수 있는 큰 컵, 마당에서 식물들을 고정해서 타고 올라가게 만들 수 있는 노끈, 마늘 다지는 도구, 젖은 머리를 빗을 때 사용하는 브러시, 작은 손거울, 정어리통조림, 부엉이 카드, 부엉이 장식품, 귀여운 스티커, 작은 주걱, 제빵용 밀대, 컵케익 종이틀, 스티커, 후추 소금 세트, 마시멜로... 등등


크리스마스 양말 뒤지기가 끝나면 본격적으로 선물을 나눈다. 나는 남편에게서 마당용 화로를 선물 받았고, 딸에게는 작은 손가방을 받았다. 내가 전부터 마당에서 불을 지피고 싶어 했는데, 이 동네는 규정상 모닥불을 피울 수 없다. 반드시 안전한 곳에 가둬서 불을 지펴야 한다. 나의 그런 한 맺힌 마음을 알고 남편이 정말 고민해서 골라서 구매한 화로였다. 


딸에게는 머리에 바르는 오일을 사달라 했는데, 그것은 별도로 구입하고는, 작은 핸드백을 추가로 얹었다. 내가 10년 전부터 들고 다니는 낡은 가방이 마음에 걸렸는데, 마음에 드는 크기를 쉽게 찾지 못해서 그냥 세월만 흘리고 있었다. 그런데 딱 맞는 사이즈의 가방을 찾았다고 신이 나서 들고 왔다. 나는 끈이 긴 백이 싫은데, 정말 옆구리에 착 안기는 짧은 끈의 가방이었다. 공부하랴 돈 벌랴 힘든 딸에게 생활비를 보태주기는 커녕 이런 선물을 받으니 미안하고 당황스러웠건만, 자기는 내 가방을 볼 때마다 마음이 너무 안 좋았다며 너무나 즐거워했다.



딸애가 가져온  아빠 선물은 다람쥐가 열 수 없는 새 모이통이었다. 엄마 아빠의 선물이 너무 커서 아이의 캐리어가 꽉 찼던 것이 이해가 갔다. 정말 옷을 하나도 못 들고 왔더라. 자기가 일 해야 할 노트북과 전자 기기, 그리고 선물을 넣고 나니 짐을 한 톨도 더 넣을 수 없었다고 말했다. 갈아입을 옷도 없이 왔으니 아이의 마음이 어떠했는지 알 수 있었다. 


남편은 딸애에게, 집안에서 물려 내려오는 은 명함케이스를 줬다. 나는 남편에게 보트 제작할 때 사용할 연장을 선물했다. (제 날짜에 못 올 줄 알았는데, 다행히 잘 도착했다!) 나는 우리 모두에게 같은 작가의 책을 각자 한 권씩 나눠갖도록 준비했다. 그 밖에도 여기저기서 온 선물들을 확인하며, 웃고 즐거운 시간을 가졌다. 


그렇게 선물을 서로 다 확인하고 났지만, 우리는 여전히 배가 고프지 않았다. 그래서 점심은 건너뛰고 이른 저녁을 먹기로 했다. 내 컨디션은 여전히 그리 좋지 않았기 때문에 일찍 먹고 일찍 자는 쪽으로 이야기가 흘러갔기 때문이다.


저녁은 매년처럼 거위 구이와 햄이었다. 올해도 크리스마스를 우리 셋이서 보내기 때문에, 다른 음식을 간소화해도 이미 이 자체로 너무나 풍성했다. 


어째 이렇게 심하게 모음만 모였을수가!


저녁 먹고 나서는 내가 좋아하는 스크래블 게임도 했다. 이 집에서 영어 제일 못하는 나는 왜 이걸 이렇게 재미있어 하는지! 



그리고 건너뛰었던 점심은 그다음 날인 27일에, 여전히 26일 인척 하며, 박싱데이 점심을 즐겼다. 우리가 계획했던 것은 치즈퐁듀였기 때문이었다. 정성껏 준비한 3가지 치즈와 와인이 어우러져 완벽한 식사가 되었다. 





하마터면 전혀 축하하지 못하고 지나갔을 뻔했던 크리스마스가, 가족들의 배려로 이렇게 하루 늦게 고스란히 가능해졌다. 산타도 눈치채고 하루 늦게 찾아온 우리 집 크리스마스는, 그 어느 해보다 따뜻했다. 무엇보다도 내가 식구들에게 너무나 미안했는데, 그 미안함을 아무렇지 않게 감싸주었고, 우리는 그냥 그렇게 연말의 날짜를 하루씩 뒤로 미뤄가면서 아무렇지 않게 넘겼다. 


크리스마스를 늘 가장 큰 행사로 치르는 남편은, 올해도 결국 똑같이 잘 치렀다며 나를 위로했다. 나는 연말 내내 기침하고 앓았지만, 그만큼 더 고맙고 소중했던 시간들이었다. 선물이 무엇인지, 무엇을 먹었는지는 사실 그리 중요하지 않다. 다만, 가족들이 서로 사랑하고 있다는 것, 그리고 서로가 할 수 있는 한도 내에서 최대한 사랑을 표현하고자 했다는 것이 너무나 감사하고 행복하다. 


이렇게 한 해를 마무리 하고, 새해에는 웃을 일이 더욱 많기를 기원해본다.





밀린 글들이 많아서 부지런히 달려야 할 것 같아요. 결국 가족 전체의 신년모임까지 미룰 만큼 고생한 연휴기간이었지만, 그래도 건강은 이제 거의 회복되어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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